치매 어머니로부터 도둑 의심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죠? 글 : 이은주 / 요양보호사, 작가, 일본문학번역가 2023-10-10
From 부산 거주 L씨 저는 엄마를 돌보고 있는 요양보호사입니다. 어머니는 치매 5등급이시고 오빠 집에서 모시고 있어요. 오빠와 올케 모두 직장생활을 해서 어머니를 모시기 여의치 않자 제가 나서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매일 오빠 집에 가서 엄마를 돌본지 2년째 되어가네요. 지난주 어머니를 은행에 모셔다 드렸더니 통장에서 200만 원을 찾으셨어요. 어머니는 눈이 어두워서 한꺼번에 큰 돈을 찾아 놓고 필요할 때 쓰시거든요. 주로 손주들 오면 용돈을 주는 용도이지요. 그런데 집에 와서 그 돈이 없어졌다며 딸인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 '니가 훔친 거 아니냐'고 딸인 저를 의심하는데 그동안 쌓인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 폭풍처럼 밀려 들더라고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To. 엄마로부터 도둑 의심을 받는 L씨에게
치매라는 병을 저는 ‘눈물이 흐르는 병’이라고 부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디선가 돈이 나오겠지요? 그리고 그 돈을 찾은 자식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흐를 거예요. 엄마와 잃어버린 돈을 찾고 또 찾았던 기억이 나겠지요? 애초에 돈 같은 건 잃어버리지도 않았는데도 ‘누군가에게 준 것은 아니었냐’며 엄마를 추궁했었다면, 그 눈물은 한동안 마르지 않을 겁니다.
뇌가 망가지면서 생기는 변화를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요? 엄마가 고의적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죠. 그러나 막상 의심을 받는 당사자가 딸이라면 오빠나 올케와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무척 곤란한 상황일 것임이 분명합니다.
치매 환자를 많이 접해 본 의사들은 말합니다. 칭찬을 많이 하라고요. 치매환자와 살아가는 방법 중 첫 번째가 칭찬을 많이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L씨의 경우는 어떠신가요? ‘그래도 어머님이 통장 비밀번호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칭찬해야 할까요? 그렇게 기뻐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특히나 이번처럼 돈을 잃어버렸다느니 니가 숨겼냐느니 의심하는 소동이 계속 발생한다면 고민은 커져만 갈 것입니다.
치매 환자에게 화를 내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그래도 엄마가 통장 비밀번호를 제대로 기억하다니 얼마나 다행이야’ 하고 생각하기까지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거에요. 시간도 걸릴거구요. 그래서 저는 치매라는 병이 ‘눈물이 흐르는 병’이라 생각합니다. 엄마와 이별을 앞두거나 이별한 후에야 진실이 밝혀지는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 그때 그래서 수시로 일하는 나에게 전화를 하셨구나. 잘 받아드릴걸.. 바쁘다고만 했네..’라는 생각이 들 때는 작별한 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망상 중에서도 부정 망상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치매환자가 집에 오는 요양보호사를 의심하는 거에요. 마늘이나 고춧가루를 훔쳐갔다고 하면서요. 그럴 때는 그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다른 요양보호사 선생님으로 대체해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부정적인 요인을 제거함으로써 치매 환자의 안정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요. 엄마의 돌봄을 한동안 다른 요양보호사 선생님께 부탁하고 L씨는 잠시 엄마의 돌봄으로부터 휴식을 가지기를 제안합니다. 저는 L씨가 엄마의 돌봄에서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속가능한 가족 돌봄을 위해서라도, 자기 돌봄의 회복 탄력성을 위해서라도 잠시 쉬어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