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잔을 앞에 두고 우리는 마주 앉았다. 일흔의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저녁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해요. 바쁜 사람 시간을 뺏은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내 눈엔 일한 사람의 손을 가진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삶이 궁금했다. "처음엔 남편을 돌보기 위해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지만, 남편은 오래 못 돌봤어요. 남편을 암으로 잃은지 15년 되었어요." "그럼 쭉 혼자 사신거예요." "예." 선생님은 자주 온다는 식당에서 아귀찜을 시키고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일어서셨다. 나는 카운터로 가서 먼저 계산을 끝내시는 선생님이 보이는데도 말리지 못하고 그대로 자리에 있었다. 잠시 후 계산을 끝내고 돌아오신 선생님과 동시에 반찬을 가지고 가게 직원이 왔다. 나는 비상금으로 넣어둔 만 원을 꺼내어 식당 직원의 앞치마에 넣어주며 이렇게 말한다. "여기 선생님께서 오시면 잘해주세요." 정신없이 바쁜 저녁시간 땀을 흘리며 빈자리를 치우기 바쁜 직원에게 커피 한두 잔 값의 팁을 주며 나는 기분이 좋았다. 맛있는 요리가 나오고 혼자 살면 시키기 어려운 요리를 우리는 서로 기뻐하며 접시에 덜어 먹었다. 선생님께서는 입주변에 양념이 묻을까봐 얌전히 음식을 입에 가져갔다. "사촌언니가 치매래요. 그래서 얼마 전에 다녀왔어요. 형부가 언니를 돌본다고 하는데 쉽지 않을 거예요. 집이 가까워야 내가 자주 가볼 수 있을텐데.." 선생님은 돌봄으로 다져진 마음밭에 모든 사람들의 돌봄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였다. 지금 요양보호사로 돌보고 있는 어르신은 94살로 오빠가 결혼을 반대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혼자 살게 된 분이라고 했다. "난 그분이 집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돌봐드리고 싶어." 이어서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인권센터에서 강의가 있다고 해서 신청한 거예요. 이렇게 저녁에 혼자 있지 않고 강의 듣는거 정말 좋아요. 오늘 선생님 강의도 정말 좋았어요. 아까 책읽어 주시는데 마음이 위로받는 기분이었어요. 저는 그 책을 사촌언니 돌보는 형부에게 한 권, 미국에 사는 친구에게도 한 권, 자식들에게도 선물할 거예요." 손가락을 꼽으며 책 선물할 대상을 떠올리는 동안 선생님의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새로운 즐거움으로 빛이 났다. "제 책을 그렇게 나누신다고 하니 저도 선생님께 선물하고 싶어요." 우리는 전화번호를 주고 받고 서로 수줍어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역까지 배웅해 주신 선생님을 내가 가볍게 끌어 안았다. 그리고 가슴에 달린 흑진주 브로치를 얼른 떼어 선생님의 가슴에 달아드리고 엘스컬레이터를 탔다. 내 손에는 그녀가 집에 가서 먹으라며 포장해준 아귀찜이 들려있었다. 나는 오래간만에 이모가 좋아하는 아귀찜을 가져다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범계역에서 공덕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일흔의 요양보호사를 안다. 그녀를 만나서 내가 앞으로 어떤 미래를 살지도 알게 되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