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놀드 키아리 증후군(근무력증)인 나의 뮤즈는 지난 목요일 ‘희귀 및 중증난치질환 산정특례’ 적용기간 연장을 위해 여의도 성모병원에 다녀왔다. 다행히 주치의가 진단서 발급을 해주었고, 무사히 귀가했다. 오늘은 뮤즈의 목욕을 씻겨드렸다. 머리를 빗겨드리고, 옷을 입혀드리고, 로션을 발라드리고, 안약을 넣어드리는 모든 일이 타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물며 냉장고의 물도 혼자 꺼내드시지 못해서 컵에 물을 따라드리고 나온다.
김성남 선생님 번역서 <아무 일도 없는 삶>에 추천사를 썼다. 오늘 새책을 받아보면서 낮에 했던 뮤즈와의 약속을 떠올린다. 그 약속은 어제 저녁 이야기를 듣고 뮤즈와 한 약속이다. 대충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어제는 밥통에 밥이 조금밖에 남지 않아서 난 냉동실 떡을 먹었거든. 근데 밥통에 넣어둔 냉동실 떡과 밥을 한데 퍼서 떡을 떼어내려고 하니 떡에 밥이 다 붙었잖아. 그랬더니 영감이 내 말을 안 듣더니 소가지를 내서 마음이 조마조마 했어.” 그랬다. 남편의 저녁이 부족할까봐 자신은 떡을 먹으려고 했는데 그것도 몰라주고 여든 살의 남편은 짜증을 내었던 것이다.
나는 애둘러 뮤즈의 상한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미래를 꿈꿨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영화구경 말인데요? 꼭 함께 가요? 어르신 사는 아파트 문이 찍힌 영화.” 그랬다. 영화 <딸에 대하여>가 개봉하면 뮤즈의 아파트 문이 찍힌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코로나 시절 <딸에 대하여> 감독은 나와 동행하여 여러 날 뮤즈의 재가방문을 관찰하고 자료조사 했었다. 그렇게 영화는 탄생했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무대에 서는게 평생의 꿈이었던 엄마가 영화 마지막에 나와 함께 잠깐 등장함으로써 일흔여덟 엄마의 꿈을 이루게 한 영화이다. 주연 배우 오미애 님이 영화 속 어르신을 모시고 산책을 나가는 아파트 문앞 씬이 있는데 이 문이 바로 뮤즈의 아파트 문이었다.
시사회 때 엄마는 휠체어를 택시 짐칸에 매달고, 올림픽대교를 건너 강남에 있는 영화관 나들이를 했다. 가봐야 알 수 있다. 인지증을 앓는 엄마가 영화를 마지막까지 볼 수 있을지 없을지. 그리고 엄마는 장애인 석에 휠체어에 앉은 채 영화관람을 하는가 싶더니 영화 시작 후 얼마가지 않아서 “잘 봤다. 이제 가자.”라고 했고, 영화 관람객에게 폐가 될까봐 서둘러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가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엄마의 현 상황이 있었고, 영화 관람을 위해 휠체어를 탄 노인의 외출에 교통비와 식비, 시간과 인적자원이 어느 정도 필요한지 알 수 있는 경험을 했다. 내가 아는 한 뮤즈의 외출은 한달에 한 번 정도 약을 타러 병원에 갈 때 택시를 타는 것이 전부였고, 하루 정도의 외박은 작년 아파트 도배.장판을 바꿀 때 우리집에 오셔서 하루 묵으신 게 전부였다. 대중교통을 싫어하시고, 함께 간 식당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마비된 손을 힐끔힐끔 보는 것을 불편해하시던 뮤즈에게 나는 캄캄한 영화관을 선물하고 싶다. 이야기가 있고, 자신이 사는 아파트 문이 나올 때면 즐거움에 넘쳐서 혼자 킥킥 웃고 있는 뮤즈를 곁눈질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더욱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든 책이 바로 <아무 일도 없는 삶>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최중증 발달장애인’인 엘라가 야외 콘서트에 간 이야기다. 엘라를 사회적 존재로 인정하며, 그녀의 사회적 삶을 강화할 수 있는 수단을 개발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한 그룹홈의 문화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엘라가 공원에서 음악을 즐겼던 그 순간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소속감을 키우고 엘라가 새로운 활동, 환경 및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헌신하는 돌봄 제공자의 아름다운 동행이 있었기에 가능한 순간이기도 하다. 좋은 돌봄, 좋은 삶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