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의 속껍질에는 펙틴과 비타민p

by 이은주

양손이 마비인 뮤즈의 병명은 척추경추신경마비라고 한다.
오늘도 우린 둘이 걸었다.
양손이 불편한 뮤즈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고서..
나직히 노래를 흥얼거리는 뮤즈. 3주 만에 듣는 노래여서 반가웠다. 뮤즈는 여러 날 침묵했다. 원래 말이 없던 그녀지만 아픈 사람의 미소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만큼 환했던 미소가 사라지자 걱정이 되었다.
첫 방문하던 날 현관에 줄지어 있던 빈 소주병. 아내의 병 수발로 지칠 때 드시는 술을 탓할 수야 없지만, 뮤즈에게서 사라진 미소가 자꾸만 술이 원인이 아닌가고 추측하게 했다.
그래서 목욕을 씻겨드리는 동안 여쭸다.

여기 이 멍은 어디에서 생겼어요?
몰라.

그녀의 '몰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비누거품을 씻겨드리며 뮤즈의 '몰라'를 그대로 받아드리기로 했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양손 마비인 뮤즈가 다시 노래하기까지 3주가 걸렸다. 자신의 우주 안에서 버릴 건 버리고, 끌어 안을 건 끌어 안고, 잊을 건 잊는데 3주가 걸렸을 것이다.
노래를 되찾고 미소를 되찾자 뮤즈의 주문이 늘어났다.

대일밴드를 사러 약국에 가자.
눈썹 위가 간지러워, 긁어줘.
콧물, 콧물 좀 닦게 휴지 좀.
30여 년 동안 마비되었던 손이 나으면 뭐부터 하고 싶으신가고 여쭈었더니 살림을 하고 싶다고 하신다. 속으로 걱정만 하고 관찰만 하던 나는 그제서야 수수께끼가 풀린 듯 하여 안심한다.

그렇군요. 당신은 그렇게까지 자신의 손으로 살림이 하고 싶었던 거군요. 가슴 부위 상처, 손목에 있던 데인 상처 말이에요. 그 상처는 아직 식지 않은 냄비를 안아서 옮기려다 데이셨는지도 모르겠네요.
다음부터는 할아버지께서 외출하고 돌아오실 때까지 꼭 기다리셔야 해요.

약국을 다녀오고 방청소를 해드리고 목욕을 씻겨드리고 점심식사 수발을 마치자
약속했던 3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더 시키실 일은 없나요? 내가 묻자 웃으며 귤을 가리킨다.
나는 귤껍질을 까서 두알씩 짝을 지어 갈라놓는다.

2019.1.30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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