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님께
오늘은 세관 교육이 있었죠. 월드 인재 개발원 강사분의 강의는 인상적이었습니다.
국내로 오는 관광객이 늘 일본보다 앞섰는데 올해부터 일본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면서 브랜드마다 스토리를 가져야 한다. 자기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로 고객을 대해야 한다면서 송민호의 '겁'이라는 곡을 들려주었습니다. 여기 겁의 일부분을 소개할까 합니다.
뒤돌아 봤을 때
생각보다 멀리
와있었어 난 혼자였고
문득 겁이 났지
내가 날 봤을 때
지쳐있단 사실을
몰랐었어 난 외로웠고
문득 겁이 났지(중략)
너답게 해 너는 너를 알아
연습했잖아 한 수 천 번은 말야
좌절 한 두 번 이젠 시시해
원래 기회라는 건 인생의 위기에
넌 알잖아 다시 일어나는 법
천국여행 간다며 어서 싸 캐리어
멈추지 마라 아직 할 일 많아
뒷바라지하는 부모님의 사진봐
넌 동생들의 거울이자 가족들의 별
아무것도 보기 싫었을 때
억지로 눈을 부릅뜬 건
그냥 겁나서
덜컥 겁이 나서 그래
아무 말도 하기 싫었을 때
일부러 목소릴 높인 건
겁이 나 난 겁이 나
입버릇처럼 말했어
언제나 나는 나를 믿어
상대는 없다며
계속된 싸움에 이성을 잃었었나봐
내가 나를 죽였어
엄마도 내 눈치를 봐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게
CCTV 속에 사는 게
한곳만 죽어라 팠는데
그게 내 무덤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무서웠어
아버지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어른이 되기엔 난 어리고 여려
아직도 방법을 모르고
부딪히는 짓만 하기엔
너무 아프다는 걸
이제 알았어 너무 늦었나봐
무식하게 채찍질만 하기엔
아물지 않은 상처가 너무 많아
이 곡을 듣는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요?
저는 무덤이라는 단어에 울컥했습니다. 한곳만 향해 달린 자의 자조 섞인 노랫가사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겁이 난다고 솔직히 말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게도 했지요. 이런 멋진 노래를 큰조카와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유투브에서 송민호를 검색하여 '겁'을 리트윗했지요.
카톡으로 큰조카에게 대화를 시도합니다. 얼마 전에 큰조카는 샴푸를 사달라고 했다가 할머니께 야단을 맞았거든요. 큰조카는 급여로 받은 130만 원에서 30만 원을 용돈으로 쓰고 있습니다. 핸드폰 요금은 제외하고 점심은 도시락을 싸가니까 말 그대로 교통비와 용돈으로 30만 원을 쓰고 있답니다. 샴푸는 네 용돈에서 사라는 할머니의 말씀에 화를 내면서 큰조카는 다른 엄마들은 그 정도는 해준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 할머니 또한 마음이 상한 상태입니다. 그럴 때 저의 역할이 중요하지요. 중재를 하는 건 언제나 저의 몫이 거든요.
딸 이번에는 할머니께서 잘못하신 것 같다. 많이 힘들지? 고모도 할머니가 힘들 때가 있어. 그러나 어쩌겠니? 바꿀 수 없는 게 가족인데. 고모가 네 친구가 좋다고 해서 조카로 바꿀 수 없듯이 내 엄마, 내 할머니는 바꿀 수 없으니 맞추어 가는 수밖에. 네가 다른 엄마들은 샴푸 같은 건 그냥 사준다 했다며. 그래서 고모는 말하겠는데 다른 엄마들처럼 고모가 아기 칫솔 없으면 친솔 사오고 네 옷이 없으면 옷 사주는 것, 그게 다 다른 엄마들처럼 고모가 그렇게 하는거야. 이제 알겠지? 내가 칫솔 사고 아기에게 필요한 운동화 사고 내복 살 때마다 너에게 돈을 달라하면 넌 얼마나 섭섭할까. 마찬가지로 할머니께서는 한달에 30만 원을 가족과 나누지 않고 다 너한테 쓴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거란다. 고모도 한달 용돈으로 30만 원을 쓰진 못해. 늘 생활비가 부족하지. 할머니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널 키웠는지 너도 알잖니. 아기도 어리지만 이 집구석은 왜 맨날 싸움질이냐고 삐뚤게 자랄 게 뻔하고...
난 어제 너의 행복을 기원하면서 11월에는 같이 은행에 가서 1년 자유적금을 만들어서 첫달은 내줘야지 마음 먹었어. 적금타면 친구들이랑 여행가면 좋잖아?
딸 너 늦잠자라고 고모가 어제 정명이 데리고 왔어. 어제 퇴근해서 아기 목욕 안 씻기고 편했지? 그럼 되는 거야. 고모 의도대로. 네가 샴푸 건으로 다른 엄마들은 샴푸 정도는 사준다고 했을 때 고모 많이 생각했어. 나는 널 아끼고 사랑해준다고 했지만, 늘 엄마의 사랑과 비교된다는 것을... 그래서 억울했어. 다른 사람들은 엄마라는 이유로 성실하지 않게 엄마노릇을 해도 엄.마.인데 나는 고모라는 이름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너에겐 늘 부족하게 느껴지는구나 하고 슬펐지. 고모 이 노래 듣고 오늘 울었어. 사는 게 겁이 날 때도 있지. 그러니까 자꾸 없는 엄마 찾지마. 고모랑 너는 그냥 이렇게 사랑하며 살면 되는거야. 이제 서로 고맙다. 사랑한다. 감사하다 이런 말 많이 해주자.
사실 큰조카는 사춘기를 몹시 앓았어요. 잠깐 가출하기도 했지요. 어른이 되는 과정에 할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로 저를 조마조마하게 했거든요. 그렇다고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에요. 아이가 병드는 것은 모두 어른의 거울이니까. 큰조카는 물론 막내조카도 사춘기에 접어 들면서 한번씩 다른 엄마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했지요. 이 이야기를 들은 제 친구들은 많이 섭섭했겠다고들 말하죠.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아, 다행이다. 나도 사춘기 시절 일종의 상상 속에 만들어 놓은 멋진 가족을 그리며 엄마를 비교했었는데 하고. 우리 아이들도 평범하게 사춘기를 시작하는구나. 그리고 솔직하게 그 마음을 토로할 수 있구나. 오히려 건강해서 좋다. 먼훗날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게 느껴진다면 그때가 바로 성장하는 단계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사실 저도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밖에서 일하고 열중하다 보면 아이들의 존재를 잊을 때가 있거든요. 그리고 마치 그 공백을 메우려는 듯 애정을 과시했습니다. 공부를 강요했구요. 평범한 사랑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글이글 불타는 사랑에 아이들이 데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요?
한편으로는 고모라는 이름 하나 만으로 저의 엄마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편견을 발견할 때도 있었죠. 저는 같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큰조카를 잘 안다고, 오해를 해왔구요. 가족은 서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믿는 믿음 만큼이나 간격이 생기는 거라는 걸.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 것도 같은데 때로는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게 가족인가 봅니다.
오늘 저의 긴 카톡에 큰조카는 이렇게 말해 왔습니다.
저 노래 좋죠. 라구요. 노래 하나로 큰조카는 저처럼 긴 문장을 쓰지 않고도 공감의 메시지를 전하는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저의 답변은 언제나처럼 길어집니다.
응 좋아. 고모도 겁이 날 때가 있거든. 내일 아기 어린이집 9시까지 원복 입고 오래. 도시락, 과자, 음료수. 과자와 음료수는 준비했어. 잼 있는 곳에 간다니까 오늘 밤 집으로 데리고 갈게.
새벽에 일어나서 아기 볶음밥을 만들고 준비하고 나갈 큰조카는 점점 엄마가 되어 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엄마 보다, 아빠보다 더 사랑해 주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서 아기를 낳은 용감한 큰조카를 여성으로서 사랑합니다. 비록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어서 아기와 단둘이 남았지만, 이제부터가 그녀의 진짜 드라마가 시작된다는 것을 저는 알지요. 자신의 분신이 자라면서 줄 수 있는 수많은 고통과 기쁨으로 인생이 얼마나 풍요로워질 수 있을지 기대하는 게 좋을 거예요. 자신의 삶을 비극과 희극으로 만드는 것은 오직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도 말이지요. 큰 조카에게는 이런 글을 읽히고 싶습니다.
우리는 겉으로 시늉하는 그대로의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어떤 존재를 시늉할 것인지 주의해야 한다.
-커트 보네거트
그리고 이 글도!
사랑은 나에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중요해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신뢰를 가지고 운명과 거래하는 것이다(중략)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쉽게 말해서 '일상적 도덕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얼마간의 시간 동안 그리고 때로는 상당히 오랜시간 동안 어떤 사람들에게 잘해 주었고, 그러면 그 사람들은 내게 잘해 주었다. 거기 꼭 사랑이 관련되어 있었다고는 할 수 없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발췌/p96]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건 사람에게 너무 건조한 내용일지도 모르겠네요. 내일 아침 자고 일어나면 생각이 바뀌어서 위에 인용한 글은 지우고 싶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