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당신의 여름캠프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일정은 잡기 꽤 까다로웠죠. 노인 돌봄 노동은 하루도 거를 수가 없는 것이어서 막상 저를 대신할 분을 찾아 약속된 서비스 사항을 전달하는 일이 바로 어제 저녁에서야 끝이 났거든요. 다행히 서비스를 대신해주실 분이 시간 조정이 가능해서 5일간 동일한 시간에 와주신다고 마음 놓고 참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당신의 여름캠프에 초대받았을 때 저는 학생으로 되돌아가 자유롭게 4박 5일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마음대로 당신의 산을 산책하고 버섯을 구경하고 이끼를 밟으며 돌아다니다가 떠나는 날 방 열쇠와 함께 한 편의 단편소설만 내고 떠나면 된다는 메일을 받은 날은 걸레를 빨면서도 피식피식 웃고, 외출에서 돌아온 저를 반기던 강아지가 팔짝팔짝 뛰다 물그릇을 뒤엎어도 새어 나오는 웃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복한 순간도 잠시 저는 잊고 있었던 부분을 떠올렸지요. 4박 5일 동안 손자는 대체 누가 맡아줄까라는 문제 말이에요.
당신도 알다시피 저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손자가 있어요. 저를 아끼는 분들은 말합니다. 엄마가 있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이런 말을 듣고 들어가는 날은 안 그래도 나이 든 몸으로 육아를 책임지는 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벅찬데 천근만근 심상이 가라앉고는 합니다. 그리고 나와 손자가 함께 있어야 할 이유를 헤아려보고는 합니다.
손자가 태어났을 때 솔이는 열아홉이었고 아이의 아빠도 열아홉이었는데 그 둘의 상황은 영화처럼 해피엔딩이 되지 못했지요. '댁의 딸 때문에 내 아들 앞길이 막혔어요'라는 사돈 될 분의 말을 들은 날 저는 동사무소에 가서 솔이의 성을 딴 이름으로 아이의 출생신고를 마치고 돌아왔어요. 그리고 조카딸은 집을 나갔지요. 조카딸을 찾기 위해 갈 만한 곳은 다 찾아다녔어요. 헤어진 남자 친구, 손자의 아빠에게 전화해서 솔이를 찾아내라고 미친 듯이 협박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마침내 도시의 밤거리에서 솔이를 찾았을 때 솔이는 울고 있었어요. 울면서 외쳤어요.
“왜 저만 책임져야 해요? 승훈이는요?”
손가락으로 헤어진 남자 친구를 가리키며 사나운 짐승처럼 울었어요. 그 모습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어요. 집을 나가기 전 솔이는 자신의 인생은 시작도 해보지 못했다며 아이를 입양 보내겠다고 알아보았지요. 저는 믿어지지 않았어요. 제가 배워 온 바로는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 그때부터 엄마가 되는 줄만 알았거든요. 엄마 없이 자라며 외로움을 많이 타던 솔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꿈꾸었고, 아이가 생기면 책임지겠다던 동갑내기 승훈이의 말을 믿었던 거예요. 바보, 멍청이 요즘 그런 말을 다 믿는 여자가 어디 있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솔이의 입장에서 보면 못 믿을 것도 없지요.
보다 못한 저는 아이가 태어났는데도 솔이 탓만 하고 있던 승훈이 부모님 집을 찾아갔어요. 갑작스럽게 태어난 손자를 위해 젖병 소독기를 산다, 분유를 산다, 기저귀를 산다 정신없었던 저희 집에 비해 승훈이의 집은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요.
헤어진다는 아이들 앞에서 제가 더 무엇을 요구하겠어요? 아니 요구한다고 해도 책임을 못 느끼는 그들 앞에서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헤어지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럼 아기는 누가 돌보지요? 기가 막히게도 승훈이도 솔이도 자신의 미래만을 걱정하고 있었어요. 자신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냐고 묻는데 그 맑은 눈동자에 얼음처럼 차가운 자기애가 빛나고 있어서 무섭기까지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해피 엔드」에서 치매인 ‘조르주’가 단 한번 맑은 정신으로 손녀딸과 대화하는 부분이 나오는데요. 매번 처음 만나는 것처럼 손녀의 이름을 묻던 어느 날 “불쾌하고 불합리한 고통 속에 3년을 보내고 마침내 나는 그녀를 질식시켰어"라고 자신이 간병하던 아내를 죽였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는 손녀에게 네 이야기를 해보라고 청합니다.
‘여름 캠프에 갔는데 밥맛없는 아이 음식에 하루 반 알, 안정제를 넣었는데 점점 얌전’해졌다고 손녀는 말합니다.
“그다음에는? 그 일로 괴로웠니?” 조르주가 묻지요.
그때 손녀가 말합니다.
“별로요... 괴로웠어요. 네, 괴로웠어요. 훨씬 나중에.”
그 장면을 보면서 그때를 떠올렸지요. 승훈이와 솔이가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했던 순간, 누군가는 반드시 이렇게 물었어야 했다고.
“그다음에는? 자신의 인생을 산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 건데? 만약 아주아주 나중에 아이가 생각나서 괴로워지면 그땐 어떻게 할래?”라고 말이지요. 저는 수십 년 후 괴로워할 조카딸을 만나고 온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신의 미래만을 걱정하고 있는 젊은 친구들에게 말했지요.
“나는 너희들이 각자에게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행복할 때, 가장 행복할 때 이 아이가 생각났으면 좋겠어. 이 아이가 생각나서 그만 웃음을 멈추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승훈이의 머리카락 몇 개를 뽑자고 했지요. 머리카락을 뽑으면서 저는 말했어요.
“이 머리카락을 가지고 갈게. 네가 언젠가는 아빠로서 책임져야 할 때가 있을 거야.”
그리고는 저는 그 집을 나와 터벅터벅 밤길을 걸어왔지요. 밤의 도시는 젊은이들로 가득했지요. 모두 저마다의 고민을 가진 채 한편으로는 신나 보였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아주 많은 듯했어요.
저를 아끼는 분들은 말합니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라고. 저는 집을 나간 조카딸을 찾았을 때를 잊을 수 없어요. 사나운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왜 저만 책임져야 해요?’라는 말에 아직 정확한 답을 찾지 못했거든요. 손자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밤이면, 그 동화책을 마저 읽기도 전에 손자가 잠든 밤이면, 아이를 토닥토닥해주며 저는 중얼거립니다.
‘엄마가 길을 잃을 때도 있는 거야. 엄마가 길을 찾아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가 기다려주자. 그때까지는 내가 널 지켜줄게.’
단잠에 빠진 손자가 음냐음냐 입맛을 다시며 돌아누울 때면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 전원을 켭니다. 지금도 부엌에 서서 이 글을 쓰고 있어요. 당신의 여름캠프에 참가하려고 짐을 싸는 모습을 상상하지요. 고속버스에서 내려서 캠프장을 찾아가는 모습을 말이에요. 첫 번째 숲에서 이정표를 만나고 마침내 제 이름으로 된 방 열쇠를 캠프장 입구에서 받으면 저는 이것이 얼마 만에 온 휴가인가 하고 휴양지에라도 온 듯이 가슴이 박하사탕처럼 화해질 겁니다. 이윽고 방갈로 같은 개인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환기가 되지 않아서 나는 축축한 공기가 제일 먼저 저를 반길 거예요. 창문을 열고 방 안을 둘러봅니다. 1인용 침대 하나에 책상과 의자 하나씩. 그리고 등나무 둥근 탁자 위에 다기 세트와 따뜻한 물이 든 보온병이 준비되어 있지요. 옷을 걸어 둘 수 있는 옷장도 하나 있습니다. 저는 어마어마한 모험을 하고 돌아온 듯한 기분으로 침대에 털썩 걸터앉을 거예요. 이렇게 첫째 날 오후가 지나가도록 자신을 방치하겠습니다. 저녁 종소리가 들리면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고 줄을 서서 식판에 밥과 반찬을 떠 오겠지요. 저녁 식사를 마치면 여름캠프에 초대된 사람들이 곳곳에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있는 거예요. 소극장에서는 피아노 연주와 성악가 몇이 연 음악회가 있어서 발길 닿는 대로 저녁시간을 보내다 와도 좋고, 혼자 있고 싶으면 고흐의 방처럼 침대와 책상만 있는 자신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지요. 첫날부터 마지막 날에 내야 할 단편소설을 쓰지는 않겠어요. 그냥 이리저리 숲길을 걷다가 이끼를 밟아 미끄러져도 보고, 이름 모를 무덤가도 서성이다가 별을 올려다보기도 한다면 더없이 기쁠 거예요. 모닥불에는 밤이 깊도록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이들도 있고, 술잔에 술이 넘치기도 하겠지요. 마침내 새벽이 오고 모닥불이 꺼져갈 무렵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아침식사는 생략하고 자야겠다며 소곤대지요. 그들이 지나갈 때면 장작 탄 냄새가 풀풀 나기도 할 거예요. 아침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면 새들은 일제히 재재거리고 숲 속의 아침이 밝아오겠지요.
이제 4박 5일 동안 제 조카딸은 생애 처음으로 소위 독박 육아를 경험할 겁니다. 아침 7시 30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했다가 저녁 7시면 또다시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씻긴 후 잠이 들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주어야 할 거예요. 때때로 즐겁기도 하고, 때때로 귀찮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느낄지 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