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 장호원
작년에는 드라마 <무빙>에 빠져 지냈다. <내 이름은 김삼순> 보려고 서둘러 집에 가던 때처럼, 수요일마다 약속도 잡지 않고 퇴근도 서둘러서, 아내와 거실에 마주 앉아 저녁을 먹으며 드라마를 봤다.
<무빙>은 결국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이야기. 주인공 봉석이 엄마가 만드는 남산 왕돈까스는 특별한 아이에게 특별한 엄마가 베푸는 사랑이라, 부모 얼굴도 모르는 입양아 출신 프랭크가 먹어도 wow, 감탄하는 맛이다. 봉석이가 신나게 돈까스를 먹을 때마다 나도 어릴 적 우리 동네 돈까스집을 생각했다.
내 또래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마음속에 유년기의 돈까스집 하나씩 품고 산다. 남산에 올라 먹었던 왕돈까스일수도 있고, 신사동 한성돈까스 같은 유명한 맛집일 수도 있으며, 동네마다 있었던 경양식 돈까스일수도 있겠다.
내 마음속에는 버스를 타고 장호원 읍내에 나가 먹었던 <달라스> 돈까스다.
유년기를 읍, 리 단위에서 지낸 사람들은 외식의 소중함을 마음 깊이 알고 있다. 한번 나가기도 쉽지 않은데 나갈 껀수도 만들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오일장에 나갈 때나, 읍내에 볼일이 있어 나갈 때 늘 짐꾼을 자청하곤 했다. 운이 좋으면 엄마가 버스터미널 옆 달라스에 데려가줄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달라스는 동네 아이들에게 맥도날드와 미소야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곳이었다. 햄버거를 주문하면 포장지로 감싼 수제 버거가 둥그런 접시에 담겨 나왔다. 종이를 벗기고 한 입 물면, 계란후라이와 피클, 양상추가 한꺼번에 느껴지는 그런 평택이나 송내 쪽 미군부대 인근 스타일의 수제버거.
나는 아무래도 돈까스가 좋았다. 읍내에 하나 있던 경양식 레스토랑(그때는 그렇게도 불렀다)은 누나 생일 파티할 때나 갈 수 있었으니, 평소 돈까스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던 셈이다. 마카로니며 콘샐러드를 먼저 훑어 먹고, 돈까스를 하나씩 잘라먹으면 프랭크처럼 wow,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 자주 궁금했다. 왜 서울의 돈까스 집이나 분식집에서는 그 맛이 나지 않는 것인지.
그래서 십여 년 전, 장롱 면허 탈출을 위한 운전 연습 주행의 목적지로 나는 달라스를 택했던 것이다. 친구의 차에 정성껏 쓴 대자보(죄송합니다. 주행 연습 중입니다. 출발:광화문 / 도착:잠실)를 붙이고 강남에서 장호원으로 신나게 출발했다. 어쩐지 차들이 양보를 잘해주고, 날씨도 좋아서 나는 추억 여행에 아주 들떴다.
그러나 다시 찾은 장호원은 굉장히 달라져 있었다. 그대로인 것은 터미널(잔해뿐인)과 성당뿐이었고, 기억 속의 거리 모습은 전혀 없었다. 어찌저찌 더듬더듬 찾아간 달라스는 글쎄, 위치가 여기였나? 리모델링을 한 것 같기도 하고…돈까스집은 여기뿐이네 하며 쭈뼛쭈뼛 문을 열고 들어가서 어쨌든 평일의 달라스 테이블에 다시 앉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찾아왔어요, 했더니 사장님은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지난주엔 강원도에서도 왔어요, 대답하셨다. 나는 왠지 기가 죽어 돈까스를 주문했다.
20년 만에 다시 먹은 달라스의 돈까스 맛은,
아주 평범했지 뭐. 왜 그렇게 좋아했었나 싶기도 하고. 강원도에서 온 사람도 나랑 같은 기분이었을까?
그리고 나는 난생처음으로 늙는다는 것은 뭘까, 하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