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제면소, 회현동
전혀 관계없는 둘이 우연히 기억 속에 같이 저장되어, 한 묶음으로 다니는 일이 있다. 내 머릿속에는 장만옥과 마라도나가 한 묶음이 되어, 언제나 둘이 함께 돌아다니곤 한다. <폴리스 스토리>에서 장만옥이 스쿠터를 타는 장면을 떠올리면, 갑자기 옆 차선에서 마라도나가 손으로 드리블을 하며 달려오는 식이다.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다.
사카모토 류이치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 나의 비공식 음악 선생님이었던 유희열의 라디오 <올댓뮤직>(공식 선생님은 배철수 아저씨)을 열심히 들었던 덕분이다.(팻 매스니와 이병우도 함께 배웠다) 성인이 된 뒤에는 남대문 지하상가를 돌아다니며 YMO부터 줄줄이 LP를 사 모으고, 피아노 악보를 사서 어설프게 ‘koko’ 같은 곡을 뚱땅대곤 했다. 그래서 2018년, 남대문 '피크닉'에서 사카모토 류이치의 전시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방문했던 것이다.
전시 내용은 생각보다 그냥 그랬다. 이 아저씨 많이 아프시다고 그랬지, 대지진 이후로 사회운동을 많이 하시네, 하는 정도. 굳이 한 장면을 꼽자면 오래전 백남준의 비디오 속에서 환하게 웃는 젊은 그의 얼굴. 사실 그날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옥상 공간의 벤치에 앉아 바라봤던 파란 하늘과, 전시를 보고 나와서 먹은 탄탄면이다.
탄탄면을 먹어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가끔 명동 딘타이펑을 방문해도 딤섬이나 볶음밥을 먹는 정도였다. 전시관에서 가까운 골목에,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유명해진 요리사가 낸 탄탄면 가게가 있는데 사람들이 줄을 선다고 했다. 아, 그 비니 쓴 요리사? 한번 먹어 보지 뭐.
특이한 음식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맛(마라,고추기름,흑식초…)이 다 들어 있는데, 이상하게 자꾸 끌린다. 온천달걀과 양파 튀김을 추가해서 밥도 비벼 먹었다. 나는 TV 나오는 그 유명한 요리사가 오픈 주방 어딘가에 있을까 힐끔대며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웠고,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다음에 또 오겠군, 하고 생각했다. 내 입맛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라,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것 같아 기분도 좋았다.
그날 이후로 사카모토 류이치와 탄탄면은 내 머릿속에서 한 묶음이 되어 버렸다. 병마와 싸우는 거장의 모습을 보며 탄탄면 소스에 비빈, 윤기가 흐르는 그 맛있는 쌀밥을 떠올리고, <금산제면소> 바 테이블에 앉아 온천 달걀을 추가할 때는 YMO의 <Behind the Mask> 앨범을 떠올렸다. 근처에 갈 때마다 일부러 그 가게를 들렀으니 꽤 자주 먹고, 자주 들었다.
언제부터 그 가게를 가지 않게 되었나? 아마 사카모토 류이치가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삶에 대해 담담히 말하는, 인생의 마지막에 달한 인터뷰를 한 것을 보고 나서인 것 같다. 아닌가, 유희열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스케치북>이 종영한 다음인가? 비니 쓴 요리사가 사회면 뉴스에 등장한 다음이었나? 글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한쪽을 떠올리면 다른 한쪽도 저절로 떠오르기 때문에, 아예 전부 멀리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담배를 끊으려면 짜장면도 끊어야 하는 것처럼.
<금산제면소>에 다시 방문한 것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을 보고 난 다음이다. 아내와 나는 연애 때부터 그의 영화는 꼭 개봉 첫 주에 극장에서 보는데, 그때도 늘 그렇듯이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예매도 없이 일요일 오전 용산CGV에 방문했던 것이다. 그리고 극장 좌석에 앉아 오랜만에 사카모토 류이치를 들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한 대 얻어맞은 나는 조금 놀라서 멍했다.
영화가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기 때문에 더 놀랐다. 상영관 밖으로 나오니 영화의 배경으로 꾸며진, ‘aqua’를 헤드폰으로 들을 수 있는 부스가 있었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자리에 앉아 헤드폰을 썼다. 영화 속 아이들의 얼굴 대신, 백남준의 비디오 속에서 환하게 웃던 젊은 그의 얼굴이 스쳐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탄탄면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이소라는 언제나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