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식당, 망원동
몇 년 전에 압구정로데오에 갔다가 수많은 젊은이들이 오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잊혀진 상권의 쓸쓸한 거리였는데, 조용히 놀고 싶을 때 가는 동네였는데, 이제는 거리 전체가 반짝반짝했다. 심지어 입구에 <안전지대> 가게도 있었다. 21세기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지난 세기를 사는 것이 유행이라지만 압구정까지 살아날 일인가? 방배동 까페골목도 좀더 힘내서 살아났으면, 하고 속으로 응원했다.
소위 말하는 '힙한 동네'는 어찌나 자주 바뀌는 것인지, 슬슬 따라가기 버거워지더니, 언젠가부터는 유행하는 동네를 따라가지 못하고 멈춰서게 됐다. 조용한 맛에 자주 다니던 강북의 몇몇 동네에서까지 밀려나고, 이제는 밥 한끼 먹으러 다른 동네까지 넘어가는 것이 귀찮아지기 시작할 무렵이다. 아내와 나는 '힙한 동네'를 구경가는 일을 그만뒀다. 시기적으로는 처음으로 '망리단길'에 간 뒤다.
서교동에서 시작한 소음이 상수동, 연남동도 모자라서 망원동까지 시끄럽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듣기만 했었다. 기어코 그 동네가 '망리단길'로 불리게 된 뒤로는 아예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전자음악단의 '꿈이라도 좋을까'를 듣다가, 가사 쓰고 노래 하시는 이분이 <도마뱀식당>의 사장님이라는 것을 알고는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윤철 아저씨도 가끔 오신다니 그 쪽 기대도 조금 했다.
지방에 살던 중학생 때, 클럽 공연을 보고 싶어서 무궁화호 입석 표를 끊어 종종 서울에 올라오곤 했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도착한 홍대 일대는 신기한 사람들과 신기한 가게로 가득했다. 기차를 타고서까지 유명한 동네를 방문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젊은이의 수는 점점 줄어드는데 왜 젊은이들에게 SNS 소스를 파는 동네는 점점 늘어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와서? K-POP/K-DRAMA 팬들 때문에 그런 것인가?
카레는 맛있었고 음악도 좋았다. 가게도 귀엽고 흠잡을 곳이 없다. <도마뱀식당>은 망원동이 뜨기 시작하기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강남에 있었다면 오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토요일 망원동 거리에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내와 나는 조금 걷다 말고 너무 지쳐서 합정동으로 도망갔다.
합정동에 도착한 우리는 아내가 예전에 자주 다니던 카페에 앉아 숨을 돌렸다. 거리에 사람이 좀 적어지고, 눈에 익은 거리가 들어오니까 좀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늙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주로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나 똑같은 것을 느끼며 함께 늙어가는 것은 꽤 할만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30년쯤 뒤에도 지팡이를 짚고 둘이 서울 어딘가를 걸어다니며 이 동네 많이 변했네,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 그때도 나는 여기 예전에는 사람도 적고 참 좋았는데 지금은 아주 못쓰게 됐다고 툴툴댈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