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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리케인봉 Aug 04. 2024

아빠와 돼지갈비, <삼원가든>

삼원가든, 대치동

혼자 오래 살다 보면, 가족 생각이 나는 음식이나 식당이 생기기 마련이다. 음식은 다양하지만 식당은 하나, 돼지갈빗집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은 ‘가든’이라는 상호를 쓰며, 마당이 있는 독채에(2층이나 3층에 살림 공간이 있다면 더욱 좋다), 물레방아가 있는 작은 연못이 있는 형태의 식당이다. 어린 시절, 토요일 저녁이면 저런 가든을 참 자주 갔다. 나는 돼지갈비를 굉장히 좋아하고, 아빠는 가족을 데리고 외식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고 혼자 상경해서 여러 동네를 떠돌며 살게 된 뒤에도, 새로운 동네에 가면 꼭 갈 만한 돼지갈빗집이 있는가 찾아보곤 했다. 인턴이며 수습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대충 수습하며 살던 스물일곱 즈음에는,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면 친구와 동네 돼지갈빗집에서 소맥을 타먹는 게 큰 즐거움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턴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수습 기간을 연장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곧장 때려치우고 부모님 몰래 단기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던 여름날, 갑자기 아빠가 내가 살던 동네에 찾아왔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네라 길도 잘 모르고, 맛있는 식당은 더더욱 모르고, 아빠는 곧 도착하니 아무 식당이나 골라서 만나자 하고, 급하게 검색을 해보려 하는데 순간 한 식당이 머릿속에서 스쳐갔다. 조금만 걸어가면 사거리에 무슨 가든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뭐더라… 아빠 이 동네에도 가든이 있어요! 그게 지금은 사라진 대치동 <삼원가든>이었다.


서울 본사에 일 보러 왔다가 저녁 먹으러 들렀다는 아빠는 평소처럼 호기롭게 메뉴판을 받아 들었다. 나는 회사 대신 아르바이트를 나가는 사실을 들킬까 봐 입을 꾹 다물고 메뉴판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돼지갈비가 없다. 아, 소갈비집이구나… 살벌한 가격에 나는 주말 이삿짐 아르바이트를 몇 번 해야 음식값을 낼 수 있을지 계산해 보았다. 내 결론은 안 먹고 말어, 였지만 아빠는 호기롭게 한우 갈비를 양껏 시켜 주었다. 당시 근무하던 지방의 정확히 두 배 가격이라며 슬픈 표정을 하긴 했지만.


사실 고기 맛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한우니까 맛있었겠지만,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기억이 안 난다. 다른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내가 서울에서 떠돌며 살았던 모든 동네에 한 번씩은 다 와서 저녁을 사줬는데, 생각해 보면 그게 비싼 소갈비였을 때도, 평범한 중국집이었을 때도 늘 똑같았다. 양껏 먹을 수 있도록 시켜주고, 다음날 용돈을 한 움큼 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것은 나도 모르는 새 내 안의 아버지상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굉장히 고전적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


그 뒤로도 몇 번인가 나는 아빠에게 돼지갈비를 사려고 시도했지만 전부 실패했다. 한남동에서 한 번, 공덕에서 한 번, 그리고 역시 지금은 사라진 대치동 <화부갈비>에서 한 번. 가장 최근의 실패는 아내와 결혼을 앞두고 부모님과 서울에서 저녁을 먹었을 때였다. 우리는 서래마을 <봉피양>에서 만났고, 아내는 이번에는 꼭 우리가 사야 한다며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아빠는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고깃집에서 무슨 냉면을 먹냐며 소갈비에 도미회까지 시키더니 화장실 가는 척하며 계산을 해버렸다.


결국 아빠에게 돼지갈비를 산 것은 최근, 이직을 앞두고 시간이 조금 떠서 본가에 내려가 며칠 지내는 동안의 일이다. 아내가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집에 내려가서 저녁을 살 테니 신나게 드시라,라고 이야기를 미리 깔아 둔 덕분이었다.


나는 조금 긴장해서 뭘 먹을 거냐 물었고, 부모님은 돼지갈비를 먹자고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가든이었다. 얼마 전에 오픈한 가게인데 괜찮다고 했다. 양념게장을 까먹고, 갈비를 구워 먹고, 냉면까지 주문하고 먼저 일어나 계산을 하려니 자꾸 오래전 대치동 <삼원가든>에서 아빠가 고기를 사줬던 날이 생각났다. 흘낏 테이블을 보니 웬일로 아빠는 계산하려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고기를 드시고 있었다. 갈빗값을 치르며 나는 아빠가 많이 늙으셨구나 할아버지랑 진짜 똑같이 생겼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제 아빠 말고 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난생처음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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