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승원, 개봉동
간짜장은 과음한 다음날 자취방에서 배달시켜 먹어도, 담배 연기 자욱한 당구장에서 쫄리는 마음으로 허겁지겁 먹어도, 학교 동아리방에서 삼삼오오 모여 먹어도 맛있지만, 나는 가게에 방문해서 먹는 것을 참 좋아한다. 살짝 미끈한 테이블에 앉아, 면에 고춧가루를 먼저 뿌리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소스를 그 위에 부어 쇠 젓가락으로 비벼 먹는 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짜장 먹는 법이다.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거쳐온 모든 장소에서 그런 식의 간짜장을 먹어왔다. 중국집은 어딜 가나 있으니까.
그래서 가끔 인생을 돌이켜보면, 간짜장 로드가 된다. 대전에서 보낸 고3 시절을 떠올리면 일요일 자율학습을 마치고 먹던 <전가복>의 간짜장이, 대학 신입생 시절을 떠올리면 숙취로 반쯤 정신이 나간 채 송강호 흉내를 내며 먹던 한남동 <래리성>의 간짜장이, 사회 초년생 시절을 돌이켜보면 긴장한 채 각 잡고, 맛있어서 자꾸 흐트러지는 마음을 자꾸 다잡으며 먹던 논현동 <홍명>의 간짜장이 함께 떠오르는 것이다.
가장 간절하게 먹었던 간짜장은 아무래도 군 시절 평택 해군기지 앞에서 먹던 맛이다. 모든 군인이 그렇듯 나도 휴가 복귀 전에 부대 앞의 중국집에 들르곤 했는데, 해군아파트 상가의 작은 중국집에서 늘 간짜장을 시켜 먹었다. 하얀 정복에 짜장이 튈까 봐 신문지를 덕지덕지 두르고 귀대 시간을 계산하느라 연신 시계를 확인하며 먹던 평범하지만 각별한 맛. 역시 복귀 중인 동기라도 만나면 잔돈을 모아 작은 요리를 시켜 나눠 먹고, 함께 담배를 피우며 복귀하기 싫다는 한탄을 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전역하는 날에는 꼭 마지막으로 저 간짜장을 여유롭게 먹고 집에 가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정해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역하는 날 간짜장을 먹지 못했다. 전역 한 달을 남기고 우리 함대의 초계함이 침몰했기 때문이다. 그 배에는 역시 전역 한 달을 남긴 동기 다섯 명이 타고 있었다. 이미 해상근무를 마치고 육상 근무를 하며 전역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바쁜 한 달을 보냈다.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정신없는 한 달이었다. 잠시 숨을 돌릴 때면 훈련소를 마치고 실무 배치 전, 대기병 시절에 가족이 면회를 오면 동기들끼리 서로 데리고 가서 음식도 먹고 작업도 빼주던 일이 자꾸 생각났다. 나는 피자와 치킨을 얻어먹었고, 그 친구는 엄마가 삶아온 수육을 먹었던 그런 일들.
나는 전역 전날까지 영결식(대통령도 왔다)에 참석하고 떠밀리듯 전역했다. 예비군복을 입고 정문을 나서는데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들은 그 배의 우리 동기들 중 유일한 생존자의 이름을 부르며 인터뷰를 하려고 눈을 번득였다. 한 기자가 내게 달려들어 ooo병장은 언제 나오냐고 물었다. 나는 뱃속에서 뭔가 치밀어 올라,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그 기자에게 제발 비켜달라고 요청한 뒤 평택역 화장실에서 실제로 조금 토했다.
그날 이후로 촘촘히 이어지던 인생의 간짜장 로드에 조금 차질이 생겼다. 스스로 더 이상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중국음식과 배달 문화가 바뀌어버렸다. 동네마다 있던 보통의 간짜장은 이제 직접 맛있는 가게를 찾아서 방문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다. 소스를 함께 볶아서 나오는 탕수육을 먹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아아 이제 시대는 바뀌고 간짜장 로드는 끝이구나, 하고 아주 시건방진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시간은 어찌저찌 흐르고, 또 그 사이에 여기저기 간짜장을 먹다 보니 나는 결혼을 하고 개봉동에 신혼집을 얻었다. 지나가 본적도 없는 동네에서 살게 된 우리는 약간의 설렘과 공포를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광진구 토박이인 아내는 더했다. 마음에 드는 맛집도 없다며 영 동네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스트 사이드와 웨스트 사이드의 문화 차이일까? 우리는 한동안 영등포나 용산까지 나가서 아는 동네의 아는 식당을 다녔다.
<화승원>에 방문한 것은 개봉동에 오고 일 년쯤 지난 다음이다. 오래된 간짜장 맛집이 있다고, 배달은 안 하니 가게에 가서 먹어야 한다는 소문을 들은 우리는 퇴근 후 비장한 마음으로 지도 앱을 보며 가게에 방문했다. 중년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 한가운데 기름 난로가 있는 가게였다. 친숙하고 정다운 분위기네, 싶었는데 간짜장과 탕수육이 테이블에 나오자 시간여행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생 때 먹던, 그 맛있던 간짜장과 탕수육의 맛이었다. 고기가 들어간 간짜장은 따로 갓 볶은 느낌이 확실하고, 탕수육은 소스와 함께 볶아준, <홍콩반점>이 중화요리를 프랜차이즈 분식으로 만들기 전의 그리운 맛이 났다. 아내의 평도 나와 같았다.
그리고 간짜장 로드는 다시 시작됐다. 사회 초년생 때 상사 앞에 각 잡고 앉아 먹던 그 간짜장이,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한 잔만 더 하자며 새벽에 먹던 24시간 중국집의 그 간짜장이, 아내와 처음 연애할 때 지저분해 보이지 않으려 애써 조심조심 먹던 그 간짜장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멈췄다고 생각했던 인생의 회전목마가 돌고 돌아 다시 나를 90년대 초등학생으로 돌려준 것이다.
간짜장은 일상의 음식이다. 인생의 길목마다 나는 어디에선가 간짜장을 먹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내와 나는 <화승원> 이후 개봉동에 맛있는 식당을 줄줄이 찾아냈다. 앞으로는 시간이 흐르고 장소가 바뀌어도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간짜장 로드를 돌이키며 일부러 평택 해군기지 앞의 그 작은 중국집을 빼놓지 않으려 한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그곳의 맛을 잊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회전목마가 돌아가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그렇게 돌고 돌다가 언젠가 그곳의 간짜장을 다시 만나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