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카츠, 연남동
가끔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이땐 이랬지 하며 사진 앨범을 쭉 넘기다 보면, 뭔가 기묘한 날이 하나씩 끼어 있다. 내가 정말 이때 이곳에 갔었나? 싶은 그런 곳들이다. 기억으로도 기록으로도 남아 있지만 왠지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닌 것 같은 그런 날들.
연남동 <독립카츠>에 방문한 것은 2018년 초겨울. 다양한 부위로 ‘까스’를 튀겨준다기에 큰맘 먹고 연남동까지 갔던 것이다. 아하, 그 돈까스집은 유명한 기사식당 바로 옆 큰 길가에 있었는데 웬걸, 사람들이 길을 따라 쭉 줄을 서 있었다.
‘식당 앞에 줄 서기’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아침에 지하철 타러 줄 서고, 점심에 회사 구내식당 가는데도 줄 서고, 커피 한잔 테이크아웃하려 해도 줄 서고, 퇴근 버스 탈 때 줄 서고, 주말에 어딜 가도 줄 서는 게 나는 너무나 지긋지긋해서 줄 서는 식당을 가는 것이 정말 싫다. 뭐 대단하고 특이한 산해진미도 아닌데 그까짓 거 하나 먹는다고 뻘쭘하게 줄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모처럼 시간을 맞춘 주말 데이트였고, 그런 상황에서 보통 내게 선택권은 없다.
한참 줄을 서 있다가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모처럼의 주말 데이트였음에도 각자의 스마트폰을 꺼내 보다가 우리는 알게 됐다. 통신이 끊겼다는 것을.
온라인 접속을 못 하니까 왜 통신이 안되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줄 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슬쩍 들어보니 KT 건물에 불이 나서 일대 통신이 끊겼다고 한다. 별 일이야 있을까 했는데, 계산대 앞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했다.
카드 결제도 안 되고, 휴대폰으로 송금도 못하게 되니까 계산을 못 하고 다들 줄을 서 있는 것이다. 마침 그곳에 다른 통신사를 쓰고, 현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복잡한 시선을 받으며 현금 결제를 하고 걸어 나오니 이미 깜깜해서, 우리는 가게 옆에 있던 오래돼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현금으로 결제를 하고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카페 사장님은 현금 정산에 서툴렀다.
지금은 독립카츠도 그 카페도 사라지고 없다. 그래서 문득 사진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이게 진짜로 있었던 일인지, 정말로 내가 그 까스를 먹은 것이 맞는지 좀 헷갈릴 때가 있는 것이다. 그저 반나절 인터넷이 안 되었던 것만으로도, 나는 6년이 지난 뒤에도 현실인지 아닌지 의아해하는 것을 보니 남은 생 내내 거북목으로 스마트 기기를 들여다보며 살아가게 생겼다. 그날의 돈까스 맛과 커피 맛은 인터넷 통신과 아무 관련 없이, 80년대에나 지금에나 같은 맛이었겠지만, 인터넷이 안 되었다는 이유로 나는 그날의 맛까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