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냉면, 한남동
한 시절을 떠올리면 함께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것만으로, 같은 시간에 함께했다는 것만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지는 기억이다. 이것은 취향이며 완성도며 그런 것은 다 필요 없는, 같은 시간을 함께 지나쳐온 추억의 힘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무 살을 생각하면 MBC <커피프린스 1호점>과 한남동 <동아냉면>이 떠오른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까지도 신고식이니 사발식이니 하는 행사가 남아 있었다. 오리엔테이션이라고 갔더니 복학생 선배들이 군대 교관 흉내를 내며 기합을 주고 술을 어찌나 먹이던지, 어이가 없었다. 아직 단체 문화가, 폭력 문화가 남아 있던 시절이다. 강의 중간 쉬는 시간에 강의실 앞 창문을 열고 교수님이 담배를 태우고, 밤 9시쯤 되면 과방에 술 취한 복학생 선배가 들이닥쳐서 왜 요즘 애들은 인사를 안 하냐며 군대식 얼차려를 주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던, 매일같이 선배들이 신입생을 데리고 학교 근처의 술집을 순례하던 시절이다.
그때 선배들이 술을 진탕 먹이고 다음날 해장을 하자고 데리고 가던 곳이 <동아냉면>이다. 내 생각에 그건 냉면이 아니었다. 이건 분식이지, 냉면집에서 냉면이라는 이름을 걸고 만두와 함께 파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 자극적인 맛이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해장 모임에 슬슬 빠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술 마시는 자리에도 슬슬 빠지기 시작했다. 냉면 맛도 모르는 것들이 뭐 이렇게 잘난 척들을 하는 걸까? 나는 언제나 그랬듯 그곳도 내가 잠시 스쳐 지나갈 곳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서 무슨 면옥이니 무슨 당이니 하는 강북의 오래되고 비싼 면 요릿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동아냉면>을 다시 찾은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였다. 동문과 한남동을 지나다가, 순천향병원 옆으로 <동아냉면>이 이전한 것을 보고 충동적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전에는 옆 골목의 1층에 작게 있었던 가게가, 2층짜리 단독 건물로 들어서 있었다. 평일이었고 점심 때도 지난 시간이었는데 사람이 제법 있었다. 우리는 신입생 때 그랬던 것처럼 물냉면과 만두를 시켰다. 스무 살 때 먹어보고 서른 즈음에 다시 왔으니 참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굉장히 달콤하고, 왠지 그리운 맛이 났다.
서른 즈음의 나는, 스무 살 시절 그렇게 싫었던 뻔한 맛이 왜 지금은 다르게 느껴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지나가면 다 추억이 되는 것인가 보다, 했을 뿐이다. 그런데 마흔 즈음이 된 지금 돌이켜 보면, 냉면 맛도 모르면서 잘난 척했던 것은 오히려 나였다. 이건 냉면이 아니야,라고 혼자 잘난 척하던 사이 다른 사람들은 <동아냉면>을 먹으며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을 함께 보냈던 것이다. 나는 혼자 잘난척하며 오래되고 비싼 면 요릿집을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학교 사람들과 함께 <동아냉면>을 먹었어야 했다. 스스로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어깃장만 놓지 않고 지금 내 앞의 현실에 직면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흔 즈음이 된 지금, 스무 살 시절과 <동아냉면>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가 BGM으로 깔리며, 나도 모르게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하고 따라 부르게 된다. 그렇게 그때는 나오지도 않았던 그 노래가 덧입혀진다. 대부분 그렇게 흘러가고 나면 시간 순서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냉면이니 분식이니 따질 시간에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