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와 ‘영원한 여름‘
내가 제목을 가져온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소설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는 야구가 사라진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서 야구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며,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쓰인 것은 1988년. 미국의 송어낚시가 사라진 것처럼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도 사라진 지 오래인데,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는 곧 우리의 일이 될 것 같다. 올여름은 정말 가혹할 만큼 덥고 습하다.
지난주, 프로야구 경기가 폭염으로 취소됐다. 더워서 야구를 못 한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잠시 멍했다. 지열이 50도가 넘어가니 관중들과 진행 요원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었겠다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덥다고 야구를 못 하다니. 이제 우리나라에서 야구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무시무시한 생각도 들었다. 야구는 누가 뭐래도 현기증 나게 더운 여름에 하는 스포츠 아닌가.
가끔 유튜브 댓글에서 어린 친구들이, 예전 학생들은 에어컨도 없이 여름을 어떻게 버텼냐고 묻는다. 확실히 90년대 교실에는 덜덜거리는 선풍기 네 대뿐이었다. 에어컨 쐬고 싶어서 괜히 교무실에 들어갔던 일도, 쉬는 시간마다 물총 싸움을 했던 일도 기억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요즘처럼 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여름에도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고 농구를 하다가도 수돗가에서 물을 뒤집어쓰고 등나무 벤치에 앉으면 그렇게 시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히 그때는 길에서 ‘여름 냄새’가 났다. 햇볕 냄새 같기도 하고 아주 옅은 담배 냄새 같기도, 플라타너스 나무 냄새 같기도 한 그런 냄새가 났다.
글쎄,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 않고 20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밤 산책은 로맨틱한 일이었다. 후끈한 열기가 식은 거리에 나서면 여름밤 특유의 느낌이 참 좋았다. 공원을 걸어 다니고,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서 길가에 앉아 마시는 그 시절의 여름밤. 그래서 나는 예전의 여름을 생각하면 낮과 밤이 함께 생각난다. 뜨거운 낮과, 열기가 식은 밤의 풍경을 대조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미 다 지나간 추억일 뿐이다. 그렇게 맑고 쨍했던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프로야구 경기가 황사로 취소되고, 폭염으로 취소되는 것을 보며 언젠가 이 땅에서 야구가 사라지겠구나, 하는 망상을 한다. 전국에 돔 구장을 지어서까지 야구를 할 것 같지는 않고, 출생률을 생각해 보면 그때는 리그를 운영할 수 있는 선수의 숫자도 부족할 것이다. 아마 꽤 시간이 지난 뒤의 8월, 나는 청소년이 된 자식과 실내 스케이트장에서 팥빙수를 먹으며 아빠 어릴 때는 운동장에 서서 하는 야구라는 스포츠가 있었어, 할지도 모르겠다. 그 애는 한여름에 운동장에 가만히 서 있다가, 뛰다가 멈추다가 공을 던지고 받고 치는 스포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마 믿지 못하겠지? 그리고 늙어버린 나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의 여름을 아마 굉장히 그리워할 것이다.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여름이다. 이현도와 김성재가 30년이 지난 지금도 청춘의 여름인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