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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Aug 10. 2019

사람들이 불같이 화를 내면 바다를 끼얹어주고 싶다

기차를 타세요


덥다. 오늘 낮 기온이 37도라고 했던가. 어쩌다 보니 늘 하루 중 가장 더울 때에 밖에 있는 바람에, 집에 돌아와서는 기진맥진이다.


어릴 때, 내가 살던 곳의 한낮 기온이 39도까지 치솟은 적이 있다. 뉴스에서는 앵커가 아스팔트 위에 계란을 던져 치이익- 익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내가 살던 곳의 이름을 대면 사람들이 꼭 한 마디씩 덧붙이곤 했다.

"더위에 강하겠네요."

"이 정도 더위는 더위도 아니죠?"

39도까지 치솟는 온도 속에 살았다고 해서 37도가 덥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실은 더운 건 더운 대로 참을 만하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따로 있다. 사람. 아무리 덥다한들 왜 그렇게 화를 낼까 싶을 정도로 별 것 아닌 일에도 사람들은 뜨거운 열기를 뿜어낸다. 정수리에 계란을 하나씩 올려두면 익을 것 같은데.


온통 화를 내는 사람들 투성이다. 티켓을 검표하는 직원에게도 화를 내고, 사고 싶은 옷을 얼마간 기다렸다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화를 내고, 차선에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클렉션을 빵빵 울리며 화를 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화를 낸다. 회사에 다닐 때도 대표며 상사는 늘 화가 나있었다. 화에 차서 회의라는 명목 하에 직원들에게 일방적인 분풀이를 했다. 인간의 모든 감정을 거세하면 최후에는 화 밖에 남지 않는 걸까. 아니면 올인원 All-IN-ONE처럼 인간의 모든 감정을 뭉뚱그리면 화가 되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화를 내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내 안에도 슬며시 화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꼭 저 상황에 저렇게 화를 내야 해? 진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네. 성격 하고는. 내 안에 화가 부글부글 거리는 것이 느껴지면 화火라는 감정의 이름에 대해 너무 잘 이해하게 된다. 그들의 화가 불처럼 내 안에 쉽게 옮겨 붙다. 이럴 때는 서둘러 인간의 숲을 빠져나온다. 혼자 있어야겠다.



1.


맑은 날, 색이 다른 두장의 종이를 잘 자른 뒤 포갠 것 같은 풍경이 창밖으로 하염없이 펼쳐진다. 뒷 좌석에 앉은 엄마가 연신 묻는다. "좋지? 좋지? 좋아?"

엄마는 좋으면 좋다고 말을 해야 하는 사람. 좋은 감정이 모두 휘발될 때까지, 밤하늘에 퍼지는 불꽃처럼 그 감정이 사그라들 때까지 남김없이 터트린다. 반면에 나는 감정을 가만히 내 안에 가두는 사람이다. 숨만 쉬어도 내 호흡을 타고 감정이 스르르 공기 중으로 흩어질 것만 같아서, 너무 좋은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가만히 숨을 참는다. 누군가가 기침처럼 뱉는 사랑한다는 말을 실은 믿지 않는다. 내 안에 사랑이 가득 찬 순간에는, 물에 푹 잠긴 것처럼 호흡조차 곤란해지니까, 그래서 눈물을 글썽일 수밖에 없으니까.


창밖에 바다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순간에도 여전히 화를 내는 자들이 있다. 언짢지만 어쩔 수 없다. 여기는 인간의 숲이고, 나는 원 오브 뎀. 커튼처럼 창에 드리운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한 시간쯤 지나자 강릉에서 올라탄 바다열차가 종착역에 도착했다. 조금 우습지만 종착역에서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할머니 집이 나온다. 역에서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에는 고모가 하는 슈퍼가 있다. 고모에 대한 기억이라곤 가끔 만날 때마다 지난한 신세한탄 끝에 엄마에게 돈봉투를 받아내곤 하던 기억밖에 없어서, 내 입에서 "여기까지 온 김에 고모나 보고 가자." 하는 말이 나올 줄 몰랐고 "무슨 소리하노, 고모 죽었잖아."라는 엄마의 대답에 머리를 긁적였다.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있다. 기껏 마음 좀 내보겠다고 한 일이 무심함의 끝을 달리게 되는 일. 딴에는 제법 내가 마음을 쓰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이럴 때 보면 어쩌면 정말로 무심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하루에 열차가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딱 두 번 운행하기 때문에 다시 강릉에 돌아가려면 시간이 얼마 없어 종종걸음으로 멀리서 할머니 집만 한번 보고는 이 집이던가, 저 집이던가 갸웃거리다 다시 열차에 올라탔다. 올 때와 똑같은 창밖의 풍경이, 카세트테이프를 반대로 감은 것처럼 다시 역순으로 흘러가고 엄마는 여전히 "좋다, 좋다, 좋다"를 반복했다.



2.


꼭 더워서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책도, 칼도, 사람도. 통장의 잔고를 케이크 자르듯 머릿속으로 몇 등분한 뒤 '최장 생존을 위한 최저 소비 모드'로 돌입하겠노라 이 연사 굳게 외쳐보지만, 세일한다고 양말을 한 번에 스무 켤레나 사는 이런 사람입니다. 제가. 이 더위에 신지도 않을 거면서.


최대한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목표조차 가지지 않는 게 요즘의 목표라면 목표. 아침에 일어나서 곧 덮어버리겠지만 책을 좀 읽다가 배고프면 요리를 하기도 하고, 아니면 대충 과자로 때우기도 하고 그렇게 뒹굴뒹굴 보낸다. 요즘의 가장 생산적이 활동이라고 하면 집에서 꼭 스무 걸음 떨어진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것. 가장 기분 좋은 일은 내키면 언제든지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것. 가장 의미 있는 고찰은 당분간 나는 사랑 같은 건 안 되겠다 하는 생각. 화를 내는 사람들만큼이나 사랑에 빠진 사람들도 쉽게 눈에 띈다. 사랑 같은 거 아무렇게나 되라지, 하고 나에게 사랑한다고 쉽게 말하는 누군가를 만나서 시간을 보낼 순 있겠지만 그 누군가가 좋은 사람이면 내가 너무 미안해지니까. 그래서 그러면 안 되겠다 싶다.


화를 내는 사람들이 싫다고 썼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야 말로 사랑에 적격인 사람들이 아닐까. 자기감정을 도무지 주체할 수도 없고 숨길 수도 없는 사람들. 예를 들면 우리 엄마 같은 사람. 좋은 것 앞에서 그 말이 다 닳아버릴 때까지 자꾸만 좋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나는 너무 좋으면 눈을 감고 숨을 참으니까, 아무 말도 없어지니까, 그래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왜 너는 나를 안 사랑해?" 하고 의심하고 낙담하게 만드는 사람이니까. 과연 기침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던 이 들중에 몇 명이나 내 눈동자에 관심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몰래 글썽이는 내 눈동자는 진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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