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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Feb 17. 2020

저마다의 저마다



뭘 그렇게까지 싶어도

잠들려던 찰나였다. 몸담고 있는-그러나 한 번도 얼굴 내비친 적이 없어 몸담고 있다 하기에도 머쓱한-모임의 단체 채팅방에, 누군가 장문의 글과 사진을 마구 올리기 시작했다. 뭐지?(약간의 호기심과 흥분을 자극하는 시간!)


모임장과의 트러블로 모임에서 강퇴당했다는 한 회원의 글이었다. 모임장과 나눈 카톡 내용까지 알뜰히 캡처해 구구절절 설명을 덧붙인 그는 '모임장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 너희들도 이런 꼴 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로 긴 글을 마무리했고, 채팅방의 누군가가 '마녀사냥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식으로 질타를 하자 채팅방을 나가는 것으로 자취를 감췄다. 모임에 나간 적이 없으니 당연히 모임장을 만난 적은 없지만, 얼마 전 개인적인 일로 모임장의 사근사근한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냥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잠결에 하는 행동은 대부분 별로던데, 지금 맨 정신에 생각해보니 괜한 짓이었나 싶기도 하다. 필요도 없으면서 세일한다는 이유로 결재 버튼을 누른다던가, 구남친이 보고 싶다던가 하는 것들).


모임장에게 연락해 채팅방에 이러저러한 글이 올라왔다,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모임장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들어서 알고 있고, 소란을 일으켜서 미안하다는 답을 했다. 모임장은 내 연락이 얼마나 피곤했을까. 단지 회원 1과의 다툼인데, 여러 사람이 그 다툼을 알게 된 데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회원-이라기보다는 행인이 맞겠다-까지 가세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보탰으니. 그것도 일요일에서 곧 월요일로 넘어가는, 몇 시간 뒤면 출근을 앞두고 있는 직장인에게 말이다.


어쨌거나 구구절절한 강퇴 회원의 글과 모임장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대개의 싸움이 그렇듯 제삼자가 보기엔 별 일 아닌 일이었다. 서른 살도 넘었는데 남자 친구가 다이소에서 인형 하나를 안 사줘서 대판 싸우고 헤어짐을 결심하는 경우가 이 세상엔 정말로 있는 것처럼(내 얘기다). 전말이랄 것도 없지만, 의도와 관계없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내가 처음에 했던 생각은 '뭘 그렇게까지'였다. 두 사람 모두에게 든 생각이다. 모임장에게 든 생각은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했어도 굳이 강퇴까지 시킬 필요가 있었나'하는 거였고, 강퇴 회원에게 든 생각은 '둘이서 잘 해결하면 되지, 여기다 이런 식으로 터트린다고 뭐가 나아지나' 하는 거였다. 그리고 뒤이어 드는 생각은 '사람은 정말 정말 다르구나'하는 거였다. 저마다 너무 다르니까 뒤틀리는 지점이 다른 거고, 그 뒤틀리는 지점을 서로가 간파하지 못하니까 있는 힘껏 서로를 비틀다 결국에는 뚝 하고 부러지고 마는 거다. 모임장의 불편함도, 강퇴 회원의 억울함도 그로부터 백 발짝쯤 떨어져 서있는 내게는 그저 '뭘 그렇게까지'로 뭉뚱그릴 수 있는 사소함이지만, 가까이 다가간다면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겠지.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나와 같은 사람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저마다의 생김이 다른 것처럼 각자의 성격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다르고, 관심사가 다르다. 이걸 알면서도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다 보면 어쩜 이렇게 다르지? 하고 몰래 놀라곤 한다. 식습관만 봐도 내 기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곱게 간 팥은 좋아하지만 통팥은 싫어하는 걸 이해할 수 없고, 다된 밥에 재를 빠트리는 것처럼 다된 카레에 왜 느끼한-본인은 상큼하다고 주장하지만- 요구르트를 들이붓는지 이해할 수 없고, 떡볶이에 왜 소주가 빠져선 안되는지 이해할 수 없고, 아삭한 맛에 먹는 양상추를 왜 물에다 데치는지 도무지 이해 불가능이다. 정신이 전혀 개입하지 않은 가장 동물적인 부분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관심사니 가치관이니 신념이니 하는 영역으로 넘어가면 어떻겠나. 내친김에 나의 '이해할 수 없는'면으로 인해 생긴 트러블을 살짝 고백해본다.


#1.

나는 신분증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편인데-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고, 필요할 때마다 꼭 없다- 네이버 본사에 들어가려다가 신분증이 없어 입장을 제한당한 적이 있다. 같이 갔던 팀원 중 한 사람이 소리를 높였다.

"신분증을 안 가지고 다녀요?"

내가 옷을 안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마치 중범죄를 저지른 변태처럼 나를 몰아세우는 게 황당했다. 왜 빤쓰를 안 입고 다녀요? 하는 것처럼.

"신분증을 꼭 가지고 다녀야 해요? 내가 뭘 증명해야 하는 사람도 아닌데."

"길가다가 어떤 사람들이 신분증 좀 보자면 어떡할 겁니까?"

"살면서 무슨 죄를 그렇게 저지르셨어요? 전 살면서 그런 적 한 번도 없었는데, 참 피곤하시겠네요."(대화가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다. 화나면 사람 비꼬는 게 내 특기다).

"... 신분증이나 가지고 다녀요!"


대화가 이상하게 끝났지만, 어쨌든 그 뒤로는 신분증을 잘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364일 잘 가지고 다니다가 하필 안 챙긴 하루,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술집 입장을 거부당해 등본까지 떼와서 갖다 바친 뒤로는 아예 등본도 챙겨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 뭐하나. 또 하필 안 챙긴 어느 날, 회식이 있었으나 내가 신분증이 없어 회식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불과 지난 금요일의 일이다(미안합니다, 다들)


#2.

버스 환승에 집착한다. 대한민국 버스는 환승제도라는 것이 있다. 하차 후 30분 내 재 탑승하면 추가 운임이 발생하지 않는데, 인구도 많고 교통도 복잡한 서울에서는 사람들의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려는 목적으로 무려 4 환승까지 가능하다. 버스를 탈 때마다 이 무슨 그랜드슬램도 아니고, 4 환승을 달성하겠다는 이상한 욕망에 사로잡히는데 사실 이게 되게 몸도 마음도 피곤한 일이다. 4 환승을 달성하려면 뭐든 제대로 할 수 없다. 첫 버스에 올라타 4 환승을 달성하기 위한 원대하고도 촘촘한 계획을 짠다. 일단 서점에 가서 책을 산 다음에 마트로 가. 마트에서 초코칩을 사고, 그다음엔 여기로 갔다가...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혼자 미션 임파서블 촬영에 임하는 것처럼, 줄곧 시간을 확인하면서 30분 내에 그다음 버스를 못 탈까 봐 초조해한다.


지난주에는 퇴근 후 잠깐 서점에 들렀다가 당연히 환승해서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두 번째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환승입니다'라는 경쾌한 목소리 대신 '삑-'하고 요금 결재를 알리는 그야말로 건조하고 삭막한 기계음이 울렸다. 환승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너무 서두른 나머지 똑같은 번호의 버스를 두 번 탔다는 걸 깨달았다. 맙소사. (똑같은 번호의 버스를 내리고 타는 것은 환승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4 환승 중 지하철역을 빠져나왔다가 다시 지하철을 타는 것도 인정되지 않는다.) 환승 전문가라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는데,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그날 집으로 향하는 370번 버스 안에서 내내 침울해있었다. 왜 이러는 거야 진짜.



혼자 살지 않는 이상,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이해되지 않는 영역을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꾸역꾸역 삼킬 수밖에 없다. 어차피 우리는 너무 다르고 각자의 기준으론 이해할 수 없는 부분 투성이니, 웬만하면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이토록 다른 세상에서 우리는 기술이 필요할 뿐이다. 누군가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아차 하는 순간 나를 뒤틀지 않도록 방어하는 기술이. 뒤틀림을 방지하는 최선의 기술은 상대방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지거나 혹은 무관심해지는 것인데, 아직까지의 내 수준으론 무한한 애정도 철저한 무관심도 퍽이나 어렵다. 무관심하던 이에게 애정을 가지는 것도 어렵고, 애정을 가지고 있던 이에게 무관심해지는 것은 더 어렵겠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여 모임장이 이 글을 읽는다면 '뭘 이렇게까지' 싶어 언짢을 수도 있겠다. 미리 사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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