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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Mar 16. 2020

나의 목련이 되었네  

나의 사랑 목련


점심을 대충 먹고 사무실 주변을 좀 걸었다. 차가운 공기 틈새로 부옇게 번진 연두와 눈 닿는 곳마다 부풀어 오른 꽃망울 때문에, 아무리 마음이 무딘 사람도 다가온 계절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 나의 봄.



목련아파트 1동 202호

봄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하는 일이 있다. 목련 나무 아래를 서성이는 것.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봄이 올 때마다 내가 하는 행동들을 모아보니 하나같이 목련을 둘러싼 것들이었다. 봄마다 내가 기웃거리는 장소를 '목련 스팟'이라고 부른다.


마당에 목련이 활짝 핀 카페를 찾아 통유리 너머로 하염없이 목련을 바라본다거나, 회사에 하루짜리 휴가를 내고 네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목련이 아름답다는 수목원을 찾아가거나(휴가 사유를 제출해야 했는데, 차마 목련꽃 보러 간다고는 못 썼다), 자전거로 바람을 슬며시 가르며 자목련이 예쁜 집 담장 앞을 기웃기웃하는 것.


지난해 봄에는 회사도 안 다니고 글만 썼기 때문에, 자주 공원에 나가 봄이 오는 장면을 지켜볼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원을 혼자 가만히 걷다가, 목련이 있을 거라곤 기대도 안 하다가, 발끝만 보며 걷다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는데 나무 가득 그렇게 활짝 핀 목련을 보고는 달리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살아있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아, 참 살아있는 게 좋구나. 운이 좋았던 해라고 생각한다.


지난 주말엔 공원의 목련 스팟에 들러 목련의 안부를 확인하러 갔더니,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며칠만 더 있으면 눈부시게 필 것 같다. 휴가를 하루 내고는 종일 목련 곁을 서성이면서 꽃이 필 때까지 기다리고 싶다. 여름휴가보다 목련 휴가가 내겐 훨씬 더 소중하니까.


아직 피지 않은 목련을 뒤로하고 집으로 걷다가 문득 '목련아파트 1동 202호'가 떠올랐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평생을 살았던 작고 낡은 아파트다. 갓난쟁이 때는 엄마나 아빠의 등에 업혀서, 좀 커서는 외할아버지가 태워주는 차를 타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가끔 용돈이나 받으러 점찍듯 드나들던 곳인데, 왜 그동안 한 번도 목련이라는 이름을 인식 못했는지. 목련의 꽃말은 고귀함이지만, 눈부신 우아함이나 고귀함과는 전혀 상관없는 목련아파트의 풍경이 떠올랐다. 목련아파트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앙상한 목련 나무가 하나 있긴 했다. 꽃송이도 기껏해야 두세 송이 달리는 데다, 땅에 떨어진 꽃잎은 금세 누렇게 시들어 보기 흉하다는 인상이 강했던 그 목련.


아주 작은 창으로 나를 내다보 외할머니가 나와 눈을 마주치면 손짓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게 잘 가라는 인사인지, 다시 와보라는 신호인지 늘 헷갈려서 대충 "할머니! 나 갈게!"하고 크게 외치고는 눈을 먼저 거뒀다. 창이 작아서 내 모습이 금방 사라졌을 테지만, 안 봐도 알지. 할머니가 그 작은 창문 앞에서 오래도록 서 있었을 거란 걸. 어두컴컴하고 좁은, 감옥 같던 그곳. 그러고 보니  그 작은 창으로 간신히 보이던 목련이 내 인생 최초의 목련인 셈인데, 목련에 대한 내 첫 인생은 그렇게 좋진 않았던 것 같다. 아무런 감흥도 없는 조악한 목련꽃이 채 피기도 전에 봄이 먼저 지던 곳. 목련아파트.

 


좋아하는, 좋아지는

외할머니는 삼 년 전, 벚꽃이 환한 봄밤에 돌아가셨다. 화장터 벚꽃이 만발해 벚꽃을 볼 때마다 그녀가 떠올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녀와 벚꽃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벚꽃은 단박에 좋아하게 되는 꽃이다. 보는 순간, 바로 fall in love. 벚꽃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겠지만) 벚꽃 앞에서는 '좋아지는' 이란 말은 성립이 안 된다. 벚꽃은 처음부터 최고다. 피기만 하면 너도나도 뛰어나가 그 아래를 서성거린다. 나는 외할머니를 좋아하 않았다. 할머니는 좋아할 구석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삶을 딱 반대로 살면 썩 괜찮은 인생을 살 수 있겠다 싶을 정도의 서글픈 지침이 되는 사람. 내가 그녀에게 가진 애정은, 내가 받은 애정에 대한 메아리일 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슬펐지만, 앞으로 그리워질 일은 없겠지 했다. 한 살 터울인 남동생은 "좀 더 자주 뵜어야 하는데..."하고 안타까워했지만, 나는 그런 후회도 안 했다. 다들 굴려야 할 일상이 있고,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런데 그 뒤로 문득문득 외할머니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적으려니 기억이 나지 않는, 참 시시한 순간에 외할머니가 생각났다가 사라졌다. 작은 순간으로 내게 왔다가 갔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가득 사 오시던 동원참치나 하드 만원 어치, 맛있게 드시던 파리바게트 600원짜리 슈크림 볼 같은 걸로. 해가 갈수록 외할머니를 떠올리는 순간이 많아졌고, 그녀가 차츰차츰 좋아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피지 않은 목련을 뒤로하고 걷는 오늘에야 아, 이 사람 내게 목련 같은 사람이었구나 했다. 처음엔 별로인데 나중이면 혼자 오래도록 그리워하는, 좋아지는 사람.


고귀함이나 우아함과는 하나도 상관없는 어둡고 침침한 감옥 같 목련아파트도 이젠 사라지고 없다. 누렇게 뜬 목련꽃잎처럼, 있던 자리에 흉한 흔적만이 남았다. 그곳에서 예쁘게 핀 목련 한번 보지 못하고 평생을 살다 간 사람이 나의 목련이었구나. 내게 목련으로 핀 사람을 비로소 가진, 봄.


보고 싶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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