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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Aug 16. 2020

빗속에서


1. 지난 토요일

빗소리에 잠이 다 깼다. 새벽 세시. 끄응. 다시 잠을 청해 보지만 빗소리는 점점 더 요란해진다. 마침내는 이 집이 떠내려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매년 여름마다 '내년에는 이사갈건데...'하고 구입을 미루다 보니 삼 년째 에어컨 없이 살고 있어 창을 닫을 수도 없고, 창을 뚫고 들어오는 거센 빗소리를 피해 어떻게든 잠에 가닿으려 애써보지만 그럴수록 잠은 점점 더 달아날 뿐. 대개 토요일 아침에는 사찰요리 수업이 있는데, 아침이면 비가 잦아들기를 기대했건만 나갈 시간이 다 되어도 거센 비가 계속 돼 차마 한발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과연 내가 무엇을 위해 이 비를 뚫고 사찰요리를 배워야 하는가. 이 비를 뚫을만한 배움이 있는 건가. 이건 나를 위하는 길인가 해하는 길인가. 고민 끝에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는, 오로지 빗소리만이 가득한 세상 밖으로 겨우 한발 내디뎠다. 비를 뚫느라 수업에 좀 늦었다. 으레 그런 것처럼 본격적인 시작 전에 사찰요리특징에 대해서 스님이 설명하고 계셨는데, 무슨 말을 하다가 스님이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내가 왜 이러지." 하는 말을 타고 울음이 새어 나왔다. 시던 큰 스님이 몸이 아파 고기를 좀 먹어야 했는데, 남들 보기 부끄러우니 창고에 숨어서 드시더라는 한 문장 짜리 말이었다. "그냥 드셔도 되는데..." 하면서 스님이 쉽게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2. 평일의 옥상

사무실에 마땅한 휴게 공간이 없어 종종 옥상으로 간다. 암묵적으로 흡연인들을 위한 공간이라 흡연 중인 직원들을 자주 마주치는데, 흡연하지 않는 내가 그곳에 서 있노라면 무리에 끼지 못하는 외로운 낙오자 같아서 겸연쩍을 때가 많지만 어쩔 수 있나. 내가 옥상에서 하는 건 하릴없이 건물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눈앞의 풍경을 무심히 바라본다. 저 먼 오르막에서 달려내려 오는 마을버스를 눈으로 좇거나, 이 동네 원룸 시세라던가 전셋값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한다. 시선을 조금만 낮추면 높이가 낮은 다른 건물의 옥상이 훤히 내려다보여 나처럼 옥상에 올라와 멀금멀금 하늘을 보거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보인다. 그날도 옥상에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 스위치를 탁 켠 것처럼 비가 확 쏟아졌다. 피할 겨를도 없었지만, 내리는 비를 다 맞고 서있었다. 아, 시원하다. 내리는 빗물로 청소를 할 요량이었는지 낮은 건물의 어딘가에서 누군가 빗자루를 들고 나와 부지런히 옥상을 쓸었다. 석석-싹싹- 빗소리에 하나도 들리지 않았는데, 빗자루를 든 동작이 명쾌해서 비질하는 소리가 다 들리는 것만 같았다. 석석-싹싹. 비를 한참 맞으면서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3. 달랏에서

몇 년 전에 베트남 달랏으로 혼자 여행을 갔었다. 어쩌저쩌다 한국인 현지 가이드와 동행하게 되었는데(혼자 있고 싶어 선택한 여행이라 썩 마뜩찮았다), 그곳 기후의 특성인지 곧잘 비가 내리다 그치길 반복했다. 불필요한 동행에다 무시로 마주하는 비 때문에 내 표정이 썩 좋진 않았는데, 가이드  분이 그런 나를 보고 말했다.

"달랏에서 비 언제 또 맞아보겠어요. 비 맞으러 또 올 거예요 여기?"

"아뇨!"

"그럼 그냥  맞아봐요. 마지막이잖아요."

그때 속으로 뭔 소리야, 하며 궁싯거렸지만 이상하게 그 뒤로 종종 그 말이 생각났다. 좋든 싫든 어떤 경험을 할 때마다 그래, 언제 또 이걸 해보겠어. 하는 마음으로 좀 덜 투덜거릴 수 있게 된 것도 같고.


나약하고 덧없는 찰나가 한평생에 묻어 따라다닌다. 그 얼룩을 들여다보며 사는 게 인생인가 싶기도 하고. 비를 보니 생각나는 순간들을 글로 옮겨보았다. 의미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가끔 꺼내 오래 들여다볼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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