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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Sep 23. 2020

 리추얼


오늘 출근을 하려는데 몸에 너무 힘이 없었다. 외출의 최대 관문인 머리 감기 퀘스트까지 무사히 완료했건만! (머리 감았는데 안 나가는 건, 마치 팬에 기름을 두른 다음에 아무것도 볶지 않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망설이다가 평소 같으면 지하철 역에 도착했어야 하는 시각이 되어서야 회사에 전화를 했다. "저 몸에 너무 힘이 없습니다."라고 구체적으로 말하진 못했고 "몸이 좀 안 좋아서요..."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데크레센도. 점점 약하게. 외국에는 기분이 안 좋으면 출근을 안 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고 들은 적 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부럽고 내가 왜 그 나라 국민이 아닌지 땅을 치면서 서러워했는데, 전화를 끊고 나니 문득 그게 허울뿐인 복지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자기 계발비 지원'이라는 항목은 어느 회사마다 있지만, 어느 누구도 자기 계발을 위해 용감하게 손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정확히 말하면 회사원은 자기 계발을 할 시간이 없거나 체력이 부족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거나 둘 다이다. 대부분 후자다).


올해의 연차가 딱 두 개밖에 남지 않아서 하나는 달력이 온통 까만색인 11월에, 또 다른 하나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쓰려고 진즉부터 계획하고 있었지만 어쩌겠나. 몸에 힘이 없다는 이유로 연차를 훌렁 쓰고 이불 위에 도로 누웠더니 막상 몸에 힘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당연한 수순이다만). 잠은 충분히 잤는데... 다시 출근한다고 말하는 게 맞을까... 머리를 감고 나서 출근을 망설였던 시간만큼 다시 망설이다가 발가락을 이불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발끝에 닿는 이불의 촉감이 선득했다. 이제 정말 가을이 되었어, 춥네... 중얼거리다가 다시 슬그머니 잠에 빠졌다.


대학교 1학년 때, 경영학과 4학년 전공을 덥석 들었던 적이 있다. 내 전공인 중국어에는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데다 심지어 영어 원서로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첫 수업을 듣자마자 깜짝 놀라서 정신이 아득해졌는데, 아득한 가운데 두근거렸다. 같은 조에 이상형이 있었다. 이성은 당장 수강취소를 하라고 했지만 감성은 같은 조인 4학년 오빠가 운명이라고 부르짖었다. 게다가 그날 조원들끼리 전화번호를 교환할 건 또 뭐람! 아무런 수고 없이 이상형의 전화번호를 획득한 기쁨에 취해, 끝내 수강취소를 하지 않았다. 조 안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주로 영어 원서 번역이었는데-경영의 기역도 모르는 타과 신입생에게 달리 뭘 시키겠나-, 취업 준비에 불을 켠 4학년 들 사이에 맹숭한 얼굴로 앉아있는 1학년인 나를 교수님이 일으켜 세워 번역한 문장을 읽어보게 하곤 칭찬해주신 기억이 난다. "다들 번역본을 베끼는데 자네는 직접 했구먼. 앞으로도 수업 빠지지 말고 열심히 듣게나." 교수님의 칭찬도 있고, 이상형도 있고, 이상형 연락처도 있고... 성적 따기는 힘들었지만 어느 때보다 열심히 임한 수업이었다.


잠깐 이상형 이야기로 샜지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이상형이 아니라 교수님이다. 교수님이 참 멋있었다. 하루는 "전공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라, 전공은 그저 세상을 보는 대롱(관) 같은 거다."라는 말씀도 해주셨고, 또 하루는 "살면서 꼭 하루에 한 시간씩 아무것도 안 하고 멍청히 누워있는 시간을 가지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전공수업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저 말씀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잊히질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가 내 안에서 구체화된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유학까지 해가며 어렵게 쌓아 올린 전공 지식을 죄다 버리고, 또 저때의 수업을 계기로 땄던 경영학 학위며 마케팅 자격증도 죄다 버리고,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는 지금에야 스무 살 무렵 때 전공이라며 택했던 것들은 그저 내가 그 시기에 세상을 어떤 각도에서 바라볼 건가 하는 입지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살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멍청히 누워있는 시간을 가지는 게 참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늘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멍청히 누워있으려니, 아까운 연차를 괜히 썼다는 후회와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경영학 교수님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힘껏 달리다가 별안간 멈추면 속도가 몸 안에 남아 앞으로 왈칵 몸이 쏠리는 것처럼, 아무것도 안 하는 내 안에 남아있는 속도가 몸 안에 남아 어쩔 줄 모르면서 누워있었다. 뭘 해야 하지? 그런데 꼭 뭘 해야 할까? 안 아픈데 애꿎 휴가를 낭비했어! 그럼 안되는 거야? 잠에서 깨서도 무거운 머리로 한참을 누워있다가 일어나 계피 스틱을 꺼냈다. 사두고 얼마나 오래 묵혔는지 뜯자마자 역한 비린내가 올라왔다. 티팟에 물을 올리니 다라라라락...속도와 소리, 열기를 더하며 티팟이 존재의 최대치로 부풀었다가 다시 사그라드는 순간을 가만히 감각했다. 비린내 때문에 한 모금 삼키기 어려운 차를 한잔 마시면서, 사람들은 이 순간을 돈 주고 사려고 안달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엔가, 회사에서 '리추얼'관련 상품을 팔았다. 뭘 팔았더라? 향초랑 노트랑 또 뭐가 있었던 것 같은데... 리추얼을 우리말로 풀면 '(종교적) 의식'이다. 정해진 시간에 명상하고 차 마시고 운동하고... 그래서 일상을 좀 더 탄탄하고 촘촘하게 지켜주는 행위. 상품을 팔기 위해 읽었던 <리추얼>이란 책 소개 글의 첫 문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매일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때 삶은 가장 빛난다!" 쩐내가 날 때까지 계피 스틱을 방치해놓고는 계획에도 없던 연차를 쓴 지금에야 한 모금 겨우 차를 들이켤 수 있는 게, 비단 내가 게으르기 때문일까?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싶어하)고 글을 쓰(려고 폼만 잡다가 노트북을 켜놓은 채로 잠이 들거나 잠깐만 보겠다며 핸드폰으로 웹툰을 한 시간씩 보)다 잠이 든다. 주말에도 늦잠을 자지 않고 여간해선 새벽 여섯 시 전에 일어난다(일어난 뒤에 아무것도 하지 않긴 하지만). 그런데도 왜 리추얼을 못했나. 3주 전부터 먹고 싶었던 미역국은 아직도 못 먹었고, 역시나 구워 먹겠다며 사다 놓은 가지는 결국 비닐도 뜯지 못하고 쓰레기가 되었다. "매일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때 삶은 가장 빛난다!"라고 책에서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 문장 위에 깨끗한 연필로 선을 주욱 긋고 이렇게 쓰고 싶다. "매일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할 때 삶은 더욱 빛난다!" 매일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내려고 하다 보면 나를 위한 시간 자꾸만 뒤로 밀려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하루를 벽돌 쌓듯 켜켜이 반듯하게 쌓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매일을 너무 노력하려고 노력하진 않아야지.


오늘 나의 리추얼은 계획에 없는 연차, 쩐내 나는 계피차, 쉬는 동안 더욱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죄책감 정도.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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