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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Oct 23. 2020

눈을 감고 봅니다

<그냥, 사람> 중

"과장님, 어제 연예인 ㅇㅇㅇ집 보셨어요?"

"아뇨. 왜요?"

"진짜 장난 아니에요. 17억인가 18억 하는 집이래요. 에휴, 전 이사도 못 가고 이러고 있는데..."

"좋은 거만 보려고 하면 끝도 없어요."


명쾌한 솔루션 

퇴근 후 간간이 집을 보러 다니면서, 때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에서 날을 넘기기도 하면서, 무조건 "넌 알아서 잘할 거야"라는 무책임-사실 내가 살 집인데 부모가 책임질 이유는 없지만-에 가까운 부모의 한마디를 듣는 요즘엔 힘이 쪽 빠진다. 대체 왜 이러고 사나. '이렇게' 안 살려고 이사하려는 건데 이사를 하는 과정 자체가 지난해서 뭘 위한 이사 인지도 잊을 지경이다. 날마다 맞이하는 출퇴근의 지옥에서 꼬박 두 시간 이상을 보내는 일상에서 벗어나, 이사를 통해 한걸음 더 행복에 다가가 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품었지만 그 사이에 부동산법이 바뀌고 눌러앉을만한 집들이 씨가 마를 줄이야. 집 없는, 회사가 멀고도 먼, 출퇴근에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1인 가구는 웁니다.


유튜브로 개인의 삶을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내가 자연히 날을 곤두세우고 들여다보는 것은 남의 (좋은) 집이다. 대출 없이 일시불로 구매했다는 모 대기업 딸의 고오급 아파트, 통유리로 햇살이 차르릉 들어오고 한쪽 벽면엔 책이 빼곡한, 내가 꿈꿔보지도 못한 연예인의 집. 멀금멀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현실에 '초라함'이라는 필터가 덧씌워진다. 밀려오는 건 '상대적 박탈'이 아니라 그냥 박탈감이다. 잠깐 유튜브를 들여다본 시간이 내 평생을 앗아간 기분. 그동안 난 뭐했지? 손에 쥔 것도 없는데. 나 헛살았나?


직장인들 대화가 고만고만하다. 고만고만하다고 늘 생각했고 그런 얘기는 안 해야지 싶었다. 지금? 누구보다 열렬하게 집값 얘기, 부동산 얘기를 꺼내는 사람이 나다. 제가 어제 티비를 봤는데요... 아니, 집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더라고요... 거기  시세가... 아아, 가련한  나여. 틈만 나면 이런 얘기를 꺼내는 옆자리 직원을 과장님은 묵묵히 받아준다. 과장님의 한마디는 언제나 "좋은 거만 보려고 하면 끝도 없어요." 평소라면 과장님의 한마디를 마침표 삼아 입을 다물고 다시 묵묵히 모니터를 들여다보겠지만, 그날은 17,8억 한다는 연예인 집이 내게 꽤 여운이 컸는지 "그럼 어떡해요?"하고 되물었다. 아! 하고 할 말 없게 만드는 과장님의 묵직한 한방.

"그럴 땐 눈을 감아요."


안 그래야지, 안 그래야지 하면서 내 눈은 자꾸만 높은 곳만 바라보느라 목이 빠질 지경이다. 기다리는 버스가 언제 오나만 바라보고 있다가 곁에 핀 꽃 한 송이 못 보는 게 인생이라는 시처럼, 어리석게 살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발밑에 흐드러지게 핀 꽃을 놓친다. 버스에 타고 나서야 내가 줄곧 서있었던 그 자리를 내다보며 "꽃이 저렇게 피어 있었네!"하고 아쉬워한다. 이럴 땐 차라리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것도 방법일 테다. 눈을 감는 것은 때로는 현실도피이지만, 때로는 발디딘 현실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니까. "눈을 감으라"는 과장님의 말을 듣고 난 뒤에도 내 마음은 여전히 높은 곳을 향해 수시로 고개를 치들었다. 고된 출퇴근 길마다, 소개받은 부동산에서 "그 가격에 1억은 더 얹어야 집을 구할 수 있어요"라는 들었을 때, 그럴 때는 눈을 감아야 한다.


감은 눈으로 봐야 할 것

눈을 감으면 될 줄 알았다. 자꾸만 가닿을 수 없는 것들을 갈망하는 그 마음의 시야를 가리면, 내가 가진 무엇 하나라도 트집 잡아 불평하고 불만하는 내 마음이 조금 잠잠해지지 않을까. 그렇지만 감은 눈으로 봐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걸 몰랐다. 최근에 <그냥, 사람>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저자에 대한 배경이나 책의 내용은 아무것도 모른 채, 제목에 끌려서 구입했다. 사람이면 사람이지, '그냥' 사람은 뭘까.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이 아닌가.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당연하게 우리 모두 '그냥'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나의 사고도 '선물 받은 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나도 사람임'을 부르짖어야 하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무수히 많이 살고 있었다. 시설, 야학, 노동자,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그간 아프고 어렵고 불편한 일들은 교묘하게 외면해왔다. 나도 살기 힘드니까, 1인분의 삶을 이고 한 발짝 나아가기에도 버거우니까. 출근길 전철에서 책을 펼치는 아침이 불편했다. 이게 진짜 우리의 사회, 그러니까 내가 몸담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인가 싶어 어느 날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한 달 수입이 30만 원이 넘으면 정부에서 지원이 안된다는 이야기는 무엇이며, 생활이 힘들어 자기 심장에 칼을 꽂았다는 남자의 이야기는 무엇이며, 장애등급 판정 조정이 되지 않아 불난 집에서 혼자 타 죽은 어느 이의 이야기는 또 무엇인가.


으레 지금의 나보다 나아져야 한다고 믿었다. 어제의 나보다 1mm라도 높은 곳으로 발 디딜 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날 친구가 "예쁜 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어."라고 이야기한 것처럼(메이크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야기였지만),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더 보기 좋은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쁜 것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욱 예뻐지려고 기를 쓴다. 예쁘지 않은 것들, 정돈되지 않은 것들, 흐트러진 것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밀리고 밀리고 밀리다 결국엔 테두리 바깥으로 밀려나는 걸까. 테두리 안의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 속으로. 몰랐다고 말하면 그만일 '그들만의' 세상.


그냥 사람을 꿈꿉니다 

회사가 멀어서 그만두고 싶어요, 글 쓸 시간이 없어서 힘들어요. 체력이 너무 달려요, 집도 없고 이게 뭐예요... 툭하면 불평하는 내게, 평소 존경하는 선생님이 다정하게 웃으며 "복에 겨웠네요"라고 말씀하셨다. 뭐야, 선생님은 알지도 못하면서 라고 투덜거렸지만 이미 나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뜨끔 했을 것이다. 다닐 회사가 있고, 마음만 낸다면 핸드폰 붙들고 연예인 집을 염탐하는 그 시간에 글을 한편 쓸 수 있을 것이고, 마음을 나눌 가족과 친구들이 있고, 배우고자 하면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걷고 싶으면 걷고, 말하고 싶으면 말하고, 사고 싶은 것들을 내가 번 돈으로 살 수 있는 삶. 이 모든 것들이 사람이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난 공기처럼 주어지는 당연한 권리 말고 좀 더 특별하고 근사한 권리를 갖고 싶다고, 나는 왜 그걸 지금 가지지 못했느냐고 불행해하는 나에게 문장은 고요히 말을 건넨다.

"어떤 사람은 당연히 받는 선물을 어떤 사람은 평생 싸워서 얻는다. 자기 자신에게 권리를 선물한다는 일,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인가, 남의 삶을 부러워만 하다 앓다 끝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나는.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 때, 눈을 감아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 때, 감은 눈으로 봐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 때, 나는 비로소 '그냥'사람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최근에 또 다른 어떤 책을 읽고 문장이 맑아 한참을 서성이다 수첩에 조그맣게 끄적거린 감상평으로 글을 맺을까 한다.

"어떤 문장은 마음을 닦는다."  

맑은 문장을 빌어 흐릿한 마음을 겨우 닦고, 세상 속의 나를 보는 오늘. 내가 발디딘 이 곳은 어디일까. 테두리를 향해 내다볼 용기가 없어 그저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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