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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Oct 11. 2020

김은지와 UFO


"으아, 나태해. 게으른 인간..."

시계를 보니 오전 열한 시다. 출근도 안 하는 일요일인데 열한 시까지 좀 자면 어떤가 싶고, 실제로 주변의 많은 이들은 정오를 넘겨 오후 네시까지 자기도 하는 데다, 주말을 잠으로 다 날렸다며 아쉬워하는 그들에게 "평일에 그렇게 고생하는데 주말에는 몸을 좀 쉬어야지. 잔 것도 잘 보낸 거야."라고 다정하게 말해주기까지 하면서 정작 스스로에게는 이렇게나 박하다. 나란 사람.  


늦잠을 자본 적이 거의 없다. 날 가리켜 일찍 일어난다며 감탄하는 주변인들에게 일찌감치 '할매형 인간'이라고 자기소개를 마쳤다. 금요일 밤에는 출근을 안 한다는 사실에 신이 나서 새벽 한두 시쯤 잠들 때도 있는데 눈뜨면 새벽 다섯 시일 때도 있고, 여간해서는 주말에도 평일과 비슷하게 새벽 여섯 시 반쯤 일어난다. 피로가 안 풀려 더 자고 싶지만 한번 깨면 다시 잠들기도 어렵고, 하루 여섯 시간 이상을 자고 나면 밤늦도록 잠드는 게 힘들어 고생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누워서 뭉개지 않고 바로 일어나는 편이다. 오늘도 새벽 여섯 시쯤 일어났다. 다시 숙면을 취한 이유는 명상 때문이다. 매일 일어나 바로 명상을 하는 것이 목표인데, 머리 감고 도시락 싸고 옷 입느라 허둥지둥 간신히 지각을 면하는 평일의 아침엔 언감생심이다. 주말에 몰아서 해야겠다 마음먹지만, 주말에는 하기 싫어 갖은 핑계를 다 댄다. 밀린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바빠서 못 봤던 웹툰을 정독하고... 그러다가 겨우 맘먹고 각 잡고 앉아 가부좌를 틀고는 명상을 시작한 것인데, 정신 차려보니 아주 푹 자고 잠에서 깨어난 상태였다. 에휴. 이래서 무슨 명상 안내서를 낸다는 거야(차기작이 명상에 관한 책이다).


명상에 대한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내가 배웠고 소개할 명상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아주 단순해서 '이게 뭐야?' 할 정도인데 막상 해보면 어렵다. 동시에 오감을 다 느끼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다 '보고', 보는 동시에 '듣고', 몸에 닿는 촉감을 '느끼고' '호흡하고'... 뭐 이런 것이다. 이게 뭐가 어렵나 싶지만, 눈 앞의 것을 다 보려고 집중하면 나머지 감각들은 놓치게 되고, '아차차 잘 들어야겠다'싶으면 또 다른 감각들을 흘려버리게 된다. 제대로 하려면 미칠 노릇이다. 내가 자꾸만 명상을 피하는 이유도 어렵고 힘든 데다, 투자에 비해 얻는 게 미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방 안에 앉아 눈앞의 책꽂이를 째려보면서 초침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가 지금 뭘 하는 건가 싶다. 명상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진짜로 얻을 수 있는 건지 의문을 넘어 의심이 들고,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이 파도처럼 마구 일렁이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딴생각이 노련한 서퍼처럼 딴생각을 타고 들어와 결국 '에라이, 명상이고 뭐고!'싶어 뒤로 벌렁 누워버리게 된다. 오늘처럼.


꼭 명상을 가부좌 틀고 각 잡고 앉아서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순간순간 잘 '존재'하면 되는 것이다. 밥 먹을 때는 밥 먹고 잘 때는 자면 되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도 부모에 대한 미움의 마음을 많이 갖고 있는데, 내가 부모를 볼 때는 눈앞의 부모가 아닌 과거의 부모를 보기 때문이다. 부모를 볼 때 나는 현재가 아닌 과거에 산다. 특히나 내가 잘 존재하지 못할 때는 퇴근 후 집에 도착해서 거머쥘 수 있는 몇 시간 남의 일상 속에서다. 할 일이 너무 많다. 설거지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하고 싶고 글도 쓰고 싶다. 그래서 샤워를 하면서 "빨리빨리"를 되뇌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짜증이 치민다. 자꾸 뭔가에 쫓겨서 조급해하고 허둥지둥할 바에는 운동도 글쓰기도 하지 말고, 그저 샤워를 천천히 즐겁게 하는 편이 훨씬 좋을 거란 걸 알면서도 내 마음엔 욕심이 많다. 욕심 많은 마음이 열한 시에 일어난 나를 나태하고 게으른 인간이라고 책망한다. 평일에는 퇴근 후에 밤 아홉 시까지 이사할 집을 보러 낯선 동네를 헤매고 다녔는데도, 그러거나 말거나 욕심은 내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열한 시에 일어난 나는 무엇을 했나. 밥을 하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머리를 감고 몸을 씻고 욕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널고 갈만한 카페를 찾아보고 옷을 입었다. 가을볕이 좋은 계절이라 좋아하는 공간에 머물며 책을 보는 일을 즐기고 있다. 주말만큼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지 않아서 집 가까이 있는 스타벅스 3층에 머무는 걸 좋아하는데,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새로 생긴 카페 후기가 좋아서-일주일에 세 번이나 갔다는 후기가 내 몸과 마음을 움직였다-거기를 가보려고 버스 탈 엄두를 냈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공간은 좁기도 좁거니와 이미 좋고 아름다운 것을 즐기기 위해 일찌감치 집을 나선 이들로 꽉 차있어서, 잠깐 고민하다 근처에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생이 뜻대로만 된다면 좋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이유도 있겠지요. 중얼중얼 흥얼흥얼 거리면서.


통유리 너머로 숲이 보이는 매력적인 공간이라 '부자가 되면 이 공간을 사서 작업실로 쓰고 싶다'는 욕망을 갈 때마다 품는 곳이다. 루프탑은 한 번도 이용하질 않았는데 오늘은 실내가 답답하기도 하고 햇살이 강하지 않아 올라가 봤다. 숲을 향해 의자를 돌려 앉은 여자가 책을 읽고 있었다.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다가 하늘 한번 보고 나무도 보고 새소리도 듣고 주문한 차를 천천히 마시면서 그렇게 앉아있었다. 읽던 책이 너무 좋고 아름답고 또 어려워서 읽다가 같은 책을 또 주문했다. 나는 이렇게 쓸 수 없겠지, 내게로 흐르는 아름다운 문장의 틈으로 한편으론 낙담하는 마음이 일렁인다. 이럴 때 나는 온라인 서점에서 내 책을 검색하고 그 밑에 달린 후기를 꼼꼼히 읽는다. 그러면 낙담하는 마음이 차지한 자리를 용기가 조금씩 밀어낸다. 나는 이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니까, 다른 순간을 살고 감각하고 느끼는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의 지문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둥글게 둥글게, 내 지문의 깊이를 더하자고 다짐한다.


저녁이 다가올수록 바람이 세져서 카페에 마련된 담요를 둘렀다. 사람들이 자리를 뜨고 또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는 동안, 나는 줄곧 눈 앞의 풍경에 시선을 다 주면서 '이 풍경을 어떻게 떨치고 일어날까' 궁금해했는데, 나도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김은지와 UFO 때문이다. 내 옆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커플이 다정하게 "여기 좋지?" "응, 좋아"하고 속삭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김은지가 이사를 갔는데 네가 거길 왜 가느냐"며 여자 친구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면서 읽는 문장의 절반이 자꾸 도망가 내게 닿지 못했고, 뒤에 앉은 친구 둘이 "내가 UFO를 봤다는데 왜 자꾸 의심하는 건데?"라고 티격태격하면서 나머지 문장의 절반도 도망가버려서 내게 닿는 문장이 마침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침 빈자리를 찾던 사람들이 좋아하며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들이 하늘을 보며 '뉘엿뉘엿'으로 시작되는 말을 했는데, 오랜만에 듣는 말이라 좋았다. 김은지와 UFO에 아랑곳 않고 부디 좋은 시간 되시기를.


집으로 돌아올 때는 천천히 걸었다. 가을꽃이 시들어가고 있었고 집에 도착하니 어둑어둑한 밤이 되었다. 달리기를 하러 나갈까 잠깐 고민했지만, 자꾸 뭔가를 하기보다는 고요한 상태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쓰기로 했다. 글을 쓰고 빨래를 한번 더 돌리고 세수를 하고 다시 명상을 해볼 생각이다. 이러다 밤 아홉 시부터 잠에 빠져도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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