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반지 Nov 05. 2020

내일을 기대하시나요?

버스 안에 딸린 모니터에는 멋있는 사람들이 잔뜩 살고 있다. 음악가, 가수, 만화가, 패션 디자이너, 모델, 포토그래퍼... 뭐 아무튼 '자기만의 삶'을 성공적으로 꾸려가고 있는 사람들이 잔뜩 나오는데(거칠게 줄여보자면 '개썅 마이웨이-성공 편'정도)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피곤에 쩌든 얼굴로 그들을 보고 있자면 당연히 (격렬하게) 부럽다(BGM은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네 성공이 느껴진 거야'). 그들 중에 포토그래퍼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핸드폰을 보네 책을 읽네 하며 흘끌흘끔 곁눈질로 모니터를 봤기에 정확하진 않을 수도 있지만, 내용은 대략 이렇다. 그녀가 대학 시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부만 하면서 지내던 어느 날, 집으로 가는 만원 버스 안에서 빈자리가 나서 뛸 듯이 기뻤다고 한다. 그러나 빈자리에 앉는 순간 '오늘 하루 기뻤던 순간이 고작 이건가?'라는 사실에 슬퍼져서, 그동안의 생활을 정리하고 외국으로 가서 본인이 그동안 하고 싶었던 사진 공부를 원 없이 하고 열심히 찍은 결과 오늘의 멋진 포토그래퍼가 되었다, 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하루 중에 언제 제일 기뻤나. 흔들흔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그녀의 인터뷰를 보며 아마 빈자리가 나기를 학수고대했던 것 같기도 한데.


이렇게까지 기쁠 일인가

며칠을 벼뤘. 붕어빵 세 개를 (드디어) 샀다. 며칠 전 점심시간, 사무실이 답답해 점심을 일찍 먹고 회사 근처를 어슬렁 거리다 붕어빵 파는 곳을 발견하 뛸 듯이 기뻤으나 평소에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아쉽게도 살 순 없었다. 가끔 카드산이 되는 곳도 있긴 하지만, 주머니에 천 원짜리 두어 장쯤은 넣고 다녀야 하는 계절인 것이다. 붕어빵 세 개가 든 따끈 봉지를 품에 안으니 어찌나 좋던지. 마스크 덕에 미소가 가려지니 다행이지만, 남들이 나를 보고 흡사 로또라도 당첨된 사람으로 여겨도 좋을 정도로 지나치게 들떴다. 올라간 입꼬리를 추스르며 생각했다. 이게 이렇게 까지 좋을 일인가? 문득 버스 안 그녀이야기가 떠올랐다. 삶에 좋고 재미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버스 빈자리에 뛸 듯이 기뻐했던 스스로의 모습이 측은했다는 그 이야기. 내가 딱 그 짝인가, 싶어 기쁜 한편 씁쓸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무실에 돌아와 먹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붕어빵을 나눠주었다.  


옆자리 과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하루는 "과장님, 사는 게 즐겁지도 않고 별로 새로운 자극이 없어요"라고 메신저를 보냈더니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습니다. 인생이 원래 그래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그리고 덧붙이시는 말씀이 이사를 가라, 이사를 가라, 내년 되면 더 오른다, 이사를 제발 가라... 는 말씀. 역시 현명하십니다). 친구와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는데, 친구가 했던 말은 "그러니까 개썅 마웨이로 살아야 돼. 너도 개썅 마이웨이 해." (내가 다른 이의 삶을 가타부타할 자격은 없으, 내가 보기에 친구가 걷는 길이 개썅 마이웨이는 아니다). 삶에 대해 부쩍 무덤덤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요즘, (주위 상황에 휘둘리지 말고) 항상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라는 은사님의 가르침이 마침내 체화된 건가, 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은사님이 이야기하신 것과 요즘 나의 상태와는 아예 다르다. 사람의 마음을 물이라고 한다면, 은사님은 들끓지도 얼어붙지도 말고 그저 고요히 찰랑이라고 말씀하시는 거고, 나는 어차피 마음 따위 고요하기 어려우니 아예 마음이 없는 것처럼 물을 엎지른 셈 치는 것이다. 어이쿠, 마음을 엎질러버렸네요! 그래서  마음이 없답니다, 하하하!


신이 나서 붕어빵을 품에 안은 나를 보고 사무실의 누군가가 "그렇게 좋냐"며 웃기에, "하긴 나이가 몇 살인데, 붕어빵 사야겠다고 집에 있는 동전 챙겨놓고 설레면서 잠들었잖아요."하고 (조금 머쓱해하며) 답했더니 "그렇게 매일 설렐 수 있는 작은 기대가 있는 게 좋다고 들었어요. 좋은 거죠"라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무엇에 설레나.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하나. 오늘은 붕어빵이지만, 내일은 무엇인가. 한때 나를 기쁨의 벼랑으로 떠미는 것처럼 들뜨고 벅찬 마음으로 이끌었던 것들은 여전히 내 곁에 있지만, 이제 나는 그들을 향해서도 좀처럼 웃지 않는다(물론 그 대상들을 향한 애호는 여전하지만). 인생의 꽤 오랜 시간 동안, 어쩌면 대부분 나는 나를 들뜨고 벅차게 하는 것들을 갈망하고 그것들을 향해 있는 힘껏 손을 뻗었다. 되도록 많은 새로움을 내 삶으로 초대하기 위해서, 어쩌면 처절하다 싶을 만큼 안간힘을 썼다. 일상의 대부분을 버젓이 차지하고 있는 권태와 반복을 밀어내고 지워버리기 위해서, 기껏해야 찰나뿐인 새로움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새로움이 필요해, 더 큰 새로움이 필요해, 이것보다 더더더!


한 입으로 두말하기

요즘의 나는 어떤 새로움도 추구하지 않고, 그 어떤 기대도 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별 기대가 없다. 내일이 금요일이어도 기쁘지 않고, 다가올 월요일에도 예전만큼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저 날들이 지나갈 뿐. 그래도 요즘의 무덤덤한 내가 생각하는 것은, 끊임없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시기를 건너 내가 어느 다른 시기로 건너가려 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 신문에서 이현아 작가가 쓴 글쓰기에 대한 짧은 칼럼을 읽었는데 이런 말이 있었다. "... 그런 글도 작가의 '시절'이다. 그걸 부정해서는 안된다. 서툴더라도 내가 건너야 하는 다리다. 그래야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비단 글쓰기뿐 아니라 인생에 해당하는 말일터. 이것도 인생의 시절이니, 그냥 건너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너가는 것 밖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긴 하지만. 어쩌면 오직 한 가지만이 나를 기쁘게 하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이 심드렁하게 느껴지는 걸까.

일기


이틀 전의 일기를 들여다보면,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았지만 무슨 일생씩이나 거나 싶다. 최근에 글쓰기에 대해 '세상 무식한 행위'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요즘 별로 기대되는 것도 없고 삶이 즐겁지 않다"라고 딱 한 줄 쓰면 될 걸,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회사 옆 스타벅스 2층 구석 소파에 몸을 파묻고는 한 줄짜리 분량을 이렇게 길게 길게 (괴로워하며) 쓰고 있는 행위가 결코 생산적이라고 할 순 없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이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하니, 이 순간에 기꺼이 '완벽'이라는 제목을 붙여주고 싶으니 어쩔 도리가 있나. 점심시간을 끝내고 자리로 돌아왔더니 옆자리 과장님이 점심 뭐 먹었냐며, "얼굴에 '행! 복!'이라고 쓰여있네요"라고 웃으셨다. 핫초코 한 잔에 행복해진 건지, 한 줄짜리 문장을 길게 길게 늘이는 '무식한' 행위에 행복해진 건지 알 수 없지만, 말로는 삶에 대한 기대가 하나도 없다면서 지금 이 순간 세상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라는 사람.

매거진의 이전글 야, 나두 소설 쓰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