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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반지 Dec 03. 2016

비닐꽃

2016년 12월 3일




씻지도 못하고 불 켠 채로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니 새벽 다섯시. 일이 바빠 2주도 넘게 열어 보지도 못했던 엄마가 보낸 총각김치로 하루를 연다. 

김치가 행여 샐까 꽁꽁 싸맨 비닐을 풀다가 웃음이 피식. 도대체 몇 겹이나 싼거야. 러시아의 마트로시카 인형처럼 이게 끝이겠지, 하는데도 계속 나온다. 물 샐 틈 없는 엄마의 사랑. 

어렸을 때 TV를 보면 늘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자기를 버린 엄마를 찾겠노라고 기어이 한국으로 와서는, 서툰 한국말로 더듬더듬 말을 잇다 끝내 말대신 눈물로 더듬더듬 보고픈 마음을 잇던 사람들. 
/ 지금 엄마한테 미안하지도 않나? 나같으면 나 버린 엄마는 절대 안 볼텐데. 미워 죽겠는데 왜 보고싶지. 

나는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그들의 마음을 겨우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을까. 그들은 확인하고 싶었을거야. 물 샐 틈 없는 사랑을. 자기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음을. 구멍난 빈 곳을 친절히 메워주는 사랑이 아니라, 애당초 구멍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그런 사랑을.

겨울 새벽. 빈 속에 연거푸 집어먹는 김치가 맵다. 속이 뜨끈해온다. 

사랑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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