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두 번째 촬영을 위한 대본 작업을 했다. 다음부터는 대본이 있었으면 한다는 편집자의 요청 때문이었다. 뭣도 모르고 겁 없이 첫 번째 영상을 찍었지만, 촬영 시간만 길었지 명확한 사전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촬영된 영상 여러 개를 이리저리 쪼개고 붙이느라 편집자가 2주째 애를 먹고 있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혹시 3일을 더 줄 수 있냐고 물어왔지만, 더 이상 미뤄지면 안 될 것 같아 영상이 완성되지 않더라도 된 데까지 올리겠다는 답을 했다. 어제가 첫 번째 영상을 올리기로 한 약속한 날이었다. 새벽까지 작업했을 편집자에게 아침에 전화를 걸어 영상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업로드를 요청했다. 그리고 영상이 올라갔다.
좋아요를 원하지만
내가 운영하는 SNS 채널 몇 곳에 유튜브 운영 소식을 알리며 좋아요와 구독을 부탁한다는 다소 쑥스럽고 어색한 말을 덧붙였다. 물론 브런치에도 같은 내용의 짧은 글을 올렸고 글을 올리자마자 구독자 두 명이 사라졌다. 개인의 호불호야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일이기에 어쩔 수 없다 쳐도 이번은 지난번과 결이 다른 듯 느껴졌다. 나의 유튜브 운영 소식이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걸까. 요새 통 글이 안 올라온다 싶더니 글 안 쓰고 딴짓하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싶었다. 평소처럼 브런치에 글은 많이 올리지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원고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고 출판사 대표님들과 하루에도 수차례 대화를 주고받으며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이 와중에 유튜브 콘텐츠를 위한 기획도 틈틈이 하고 있고 새벽부터 일어나 대본까지 쓰고 있다고, 이 모든 것을 홀로 해내기엔 시간도 체력도 너무 달려서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어필하면 되는 걸까. 어필하고 싶었다. 나를 싫어하지 말아 달라고.
세상에 자신이 만든 무언가를 내보이는 일은 몹시 고통스럽다. 낭중지추라는 말처럼 굳이 내보이려 하지 않아도 가진 재능이 반짝반짝 빛나서 세상이 절로 알아주는 천재들도 있지만, 평범한 나는 무언가를 하나씩 내보일 때마다 눈을 질끈 감고 백 미터 전력질주를 하는 느낌이 든다. 힘껏 달리고 있지만 두렵다. 내가 최선을 다해 만든 것이 별로일까 봐, 만들지 않음만 못할까 봐, 결국엔 사람들이 좋아해 주지 않을까 봐. 이것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다. 타인의 인정을 통해 나의 존재가치와 내 행동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싶은 욕망이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없고 좋아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쿨하게 인정하는 척하면서도 실은 쿨하지 못하다. 세간의 평가에 신경을 쓰지 않는 대단한 용기와 배짱이라면 자신이 만든 것을 얼마든지 내보일 수 있을 것 같지만,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마는 소심한 나는 세상에 무언가를 슬쩍 디밀어놓고는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첫 번째 영상 업로드 후, 편집자와 보완할 점들을 의논하다가 그런 얘기를 꺼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유튜브 하는 게 싫은 것 같다고, 작가로서 글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그는 내게 그런 사소한 것들까지 일일이 맘에 담지 말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역시 첫 번째 영상의 아쉬운 부분들을 오래 곱씹는 걸 보면 나와 비슷한 성격인 것 같아 그냥 웃어버렸다.
이쯤에서 밝히자면 편집자는 나와 몇 년간 알던 전 직장 동료이며 친구이다. 디자이너이지만 내가 작년 겨울 즈음 유튜브를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본인이 영상 편집을 해보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촬영에 필요한 카메라와 주방 집기 몇몇을 사들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유튜브를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색을 맞춰야 한다는 이유로 화이트톤의 냄비며 가스버너를 사들이는 그의 행동을 반대했다(첫 번째 영상을 찍자마자 그의 선택이 얼마나 현명했는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영상 첫 촬영 날, 유튜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를 위해 아는 동생이 제 키보다 큰 조명을 두 개나 짊어지고 와서 밤늦게까지 촬영을 도와주었다. 열심히 만들고 편집 딱딱해서 올리면 되지, 싶어 시작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촬영도 촬영이었지만, 영상편집이 처음인 데다 촬영 스케치도 없이 무작정 만든 촬영본을 가지고 편집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닐 테니까. 영상 작업 시간이 자꾸 길어지자 편집자와 몇 번 다투고는 자괴감에 머리를 싸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무슨 부귀영화를 보자고 알지도 못하는 유튜브까지 기웃거리나. 당장 한 달 안에 봐야 할 원고가 원고지 600장인데, 글이나 쓸 것이지 잘 지내던 사람마저 잃을까 겁났다.
진정한 나로 살기
내가 유튜브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단순했다. 잘하는 걸 찾고 싶으니까. 이 몸으로 일만 하다 끝날 것 같아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던 누군가의 말이, 십 년이 다 되도록 내 가슴에 남아있는 까닭과 비슷할 것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기꺼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다. 세상에 나의 것을 내보이기 두렵지만 이왕 내보이기로 결심했다면, 그것으로 나의 가능성을 가늠하는 동시에 나아가 먹고사는 문제까지 해결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면, 나는 세상에 이런저런 것을 디밀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만든 것으로 먹고살려면 '1)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마침 '2)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1)을 지키면서 2)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그런 일을 하고 있다. 나라는 사람은.
어젯밤 편집자와 나 모두 퉁퉁 부어 피곤한 얼굴로 간신히 시간을 쪼개 두 번째 촬영을 마치고는-각자의 생업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일정을 이야기하다편집자가 말을 꺼냈다. 원래 본인은 자기 선에서 만족할 수 없으면 내보이지 않는 성격이라고, 그렇지만 나를 믿고 간다고. 내가 있어 든든하다며 그가 덧붙인 말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구독취소에도 하루 종일 신경 쓸 만큼 소심한 내가 든든한 존재일 수도 있구나 싶어서. 든든하다, 는 말을 입안에서 굴리며 잠들기 전 오랜만에 인스타그램에 내 책을 검색했다. 감사하게도 여전히 내 책을 좋아해 주는 분들이 계셨다. 누군가에게 선물했다고 혹은 선물을 받았다고,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고. 볼펜으로 밑줄을 긋고 책장 한 귀퉁이를 접은 흔적들, 한 문장 한 문장이 좋아서 읽고 또 읽었다, 는 감상평을 엿보며 간신히 감각할 뿐이다. 내가 만든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서 만든 것을 나처럼, 혹은 나보다 더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밑줄을 긋고 책장은 접은 대목은,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푸념하는 오늘의 내가 옮기기엔 겸연쩍지만 '진정한 나로서 살기'에 대한 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삶을 살려고 애쓰지 말고, 나라는 사람이 나로서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들여다보고 궁금해하자. 남들이 말하는 것 말고 이 순간 나에게 좋은 것들을 선택하자. <스님과의 브런치> 중
삶이 고정값이 아닌 것처럼 나라는 사람 역시 고정값이 아니다. 어떤 날은 마이웨이를 부르짖다가도 어떤 날은 하염없이 작아진다. 앞으로도 나는 커졌다 작아졌다 당당해졌다 소심 해졌다를 반복하면서 너울너울 파도를 타겠지만, 그 파도를 타고 조금씩 조금씩 나 자신에게로 나아갔으면 한다. 여전히 1)과 2)의 밸런스를 고민할 테지만 세상의 눈치를 덜보고 나의 마음이 기쁜 쪽으로 마음의 추를 기꺼이 옮기는 사람이 되어가고 싶다. 마침내 스스로가 기댈 만큼 든든한 나 자신이기를 바란다. 세간의 평가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이 글을 마무리하려는 즈음에 다시 구독자 두 명이 생겨서 남몰래 기뻐하며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