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한테는 뒤통수에도 눈이 있다

어른들은 잊고 있나 보다. 어른들도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by 기록친구리니






엘리베이터 안에서 두 아이를 다그치는 엄마의 모습을 오은영 박사님이 보았다면 "잠깐만요. 잠깐만요."라고 다급하게 외치셨을지도 모르겠다. 마스크로 가려지긴 했지만 엄마의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랐고, 말로도 모자라 눈빛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너희들 이따가 내려서 두고 보자.'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은 엄마가 끝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나 말고도 세 명의 어른이 타고 있었는데 한 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쉬고, 다른 한 분은 엄마보다 더 매서운 눈빛으로 아이들을 째려보고 있었다. 엄마와 두 아이, 함께 타고 있던 다른 어른들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친한 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거 알아?
엄마들한테는 뒤통수에도 눈이 있어.



'뒤통수에도 눈이 있다고? 엄마가 되면 아이들의 모든 상황을 사방으로 지켜볼 수 있는 초인적인 능력이 생긴다는 이야기겠지?' 유치원 교사, 어린이집 교사 경력을 가진 이로서 감히 추측하고 확신해 보는 엄마들의 세계였다. 언니의 답장을 기다리며 내 추측이 틀리지 않을 거라 확신했는데, 역시 한국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안다. 엄마들의 뒤통수에 달린 눈은 아이를 향한 눈이 아니라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을 의식하는 눈이었다. 밖에 아이를 데리고 나갈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던 언니의 카톡이 마음을 시리게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 버튼을 누른 두 아이 엄마의 마음도 친한 언니의 마음과 같았겠지? 엄마는 분명 뒤통수에 달린 눈으로 엘리베이터에 탄 다른 어른들의 눈빛을 바라봤을 거다. 내 눈빛도 그렇게 느껴지진 않았을까 갑자기 처음 본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우연히 유튜브를 시청하다가 노키즈존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담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어른들이 가는 장소에 가보고 싶기도 하지만, 조용히 있고 싶어하는 어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도 한다는 한 아이의 대답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베개 끝에 아이들의 표정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생각의 끝엔 엘리베이터에서, 카페에서, 길에서 본 수많은 아이들과 교실에서 만났던 나의 제자들이 있었다. 아이다운 모습일 때 가장 빛나는 예쁜 아이들이.





어른들은 잊고 있나 보다.
어른들도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이수의 일기 中, 전이수)




사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두 아이의 대화는 그저 일상적인 대화였다. 킥보드를 탔는데 너무 재미있었고, 엘리베이터를 놓치지 않으려고 뒤뚱뒤뚱 뛰어가는 동생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던. 그래서 그 이야기를 동생과 엄마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7살 어린아이의 아이다운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섞인 대화를 잠시도 들어줄 여유가 없는 어른들의 마음이 아닐까. 나는 카페에서, 비행기 안에서, 식당에서, 내가 즐기고 누리러 가는 거의 모든 장소들에서 뒤통수에 눈이 달린 엄마들의 모습을 본다. 아이들이 외출할 때마다 엄마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쉿!' 아니면 '이렇게 하면 우리 나가야 돼.'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너무 서글퍼진다.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역할 갈등 등 우리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세상에 던져지는 갈등의 이슈들을 접한다. 그중에서도 '맘충'에 관한 이슈는 갑론을박하기 딱 좋은 주제다. 내가 엄마가 되고 싶은 사람이어서, 아이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교사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이 주제에 관한 이슈를 접할 때면 퍽퍽한 밤고구마를 입 안 가득 채운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이슈가 되는 상황의 엄마는 '엄마'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세상 모든 엄마를 싸잡아 '맘충'으로 몰아가는 상황이 가슴 아프다. 난 엄마도 아닌데 기분이 좋지가 않다. 잘못된 행동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엄마'라는 존재를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요즘 내 삶의 화두는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이면의 모습을 한 번쯤은 헤아려보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아이들을 아이들답게 바라보는 어른이 되려는 노력을 가장 많이 한다. 어른인 나도 세상을 살아가며 이리저리 부딪히고 깨지며 배운다. 옳다 여겼던 판단과 선택들에 대해 반성하고 후회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하물며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하는 규범들, 타인을 배려해야 하는 상황들, 세상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알아야 하는 수많은 것들을 어른들로부터 배운다. 배움의 대상이 되는 어른은 1차적으로 부모이지만, 나처럼 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어른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아이들에겐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부모보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어른들이 건네는 배려와 친절로부터 더 큰 가르침을 배울지도 모른다.




나부터도 아이들과 부모들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우리들이 어릴 때 너그러운 어른들을 만나 본 경험이 많이 없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더 노력하고 싶다. 사랑받아 본 사람이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배려를 받아 본 사람이 배려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니까. 어른인 내가 아이들을 기다려주고 싶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엄마들을 기다려주고 싶다. 시간이 지나 언젠가 엄마가 되었을 때 나의 아이와, 엄마인 나를 너그럽게 바라봐주는 어른들이 많아지길 바라면서. 어른들도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어른들이 많아지길 바라면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