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은 힘들 때 비로소 걸러낼 수 있다
개척하려고 하는 사람이 늘 다치게 되어 있다.
일이라는 게 참 그렇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 영광은 리더에게도 돌아가게 되지만 나쁜 결과가 나오면 모든 탓역시 리더가 감수해야 할 일이다. 어느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그건 당연한 것이고 참여한 모든 사람과도 함께 영광을 나누게 되지만, 실패로 끝난다면 모든 탓과 원망을 홀로 들어야 하기 때문에
개척을 하는 사람은 정말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소위 '총대 매는 것'을 피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처음엔 합심하여 함께 일구어 나가더라도 나중을 대비해 뒤로 빠지는 구멍을 미리 마련해놓는 부류들도 있다.
살아가면서 일을 하면서 참 반복적으로 겪게 되더라고.
그리하여 공의를 생각하며 가려던 사람이 똥을 뒤집어쓰는 경우가 많더라.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면 조직사회에서는 똥을 누가 뒤집어쓸 수 있는지 미리 파악하고 어느 타이밍에 뒤로 빠질 것인가 궁리해 놓더군.
나는 항상 똥을 뒤집어쓰는 스타일이었다.
똥을 뒤집어쓴 자들 중 타인에 대한 원망과 부정적인 감정들에 뒤섞여 피해의식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참 많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피해의식에 분노가 꽉 차 있는 부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다.
분명 그 문제 발생으로 인해 내 의도가 아니었어도 내게 상처를 받은 사람도 있을 텐데 말이다.
살아감에 있어서 모든 문제의 발생은 자신의 선택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 쉽다.
나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니까...
살아감에 있어서 모든 문제의 발생은 자신의 선택 때문이다.
어린 시절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부도가 나서 사람들이 몰려와 힘든 고통을 겪게 되는 가장의 이야기들을 종종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이야기들이 나도 겪을 일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나는 처자식이 있는 남자 가장도 아니었으며 감당하기엔 어린 나이였다.
그 일들을 겪을 당시 나는 상의할 가족이 없었고(힘들다고 얘기해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 가족은 당시 대화가 없었거든..) 자존심에 힘들다고 제대로 넋두리할 곳조차 없었다.
실타래 얽힌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가기엔 너무 엉켜있구나 라는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때였다.
평소 부탁을 잘하지 못하는 내가 혹시나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 두드렸던 곳에서는 거절을 당하기 일쑤였고
"일 좀 주세요 저 요즘 힘들어요"라고 하면 "진 대표 왜 농담하고 그래?"
그렇게 더 이상 부탁하기가 힘든 그림이 반복되었다.
'아... 혼자 풀어나가야겠구나. 그런데 방법은 있을까?'
그 상황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내가 그동안 뭘 하고 살았기에 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좋아하면서 살았지만 정작 힘들 때 말할 곳 한 곳도 없을까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자 나 자신이 정말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으로 알프라졸랑과 자살만을 생각하며 지낸 시기였다.
소수 지인분들의 가끔의 위로는 내가 다시 일어서는데 큰 힘을 준 것 같다.
그 위로는 한 분 한 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넌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야'
나는 생각보다 외로움을 심하게 타는 사람이다. 그 힘들었던 당시 누군가 한 명에게라도 내 속마음을 털어놓고 넋두리를 하고 싶어 생긴 습관이 있었다.
그때는 누구에게라도 지친 마음을 넋두리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 같았기에 우연히 알게 된 심리상담서비스를 이용했는데 전화로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아... 정말 나를 걱정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바보같이 습관처럼 매일 일정 선생님께 전화해 나의 넋두리를 했고, 내 두대의 핸드폰 요금은 백만 원씩 나오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도 힘들다면서 끊을 수 없었던 어리석고 어리석지만 힘겹게 팔을 뻗은 소통.
그렇게 마음이 힘든 사람들은 소통이 절실하다
참 사람 인생이 재밌지?
내가 고객으로 이용했던 전화서비스로 몇 년 후에는 마음에 고통이 있는 사람들의 심리상담 선생님이 되어 내가 직접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한다. 그 전화상담이 나의 상담의 시작이었고,
더 세월이 흘러 지금은 전화, 대면상담 등 다채롭게 내담자들을 만나고 있다.
물론 과거의 나와 똑같은 상황인 분들도 많이 만났다.
때로는 자신의 사업에 문제가 생겨 우울증을 겪고 상담을 찾은 청년사업가분들에게 사업이 막혀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멈출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할 때도 있다.
왜냐하면 멈추지 않고 밑 빠진 독에 물을 계속 부어 결국에는 실타래를 풀 수 없을 지경까지 갔던 나처럼
돌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들 역시 과거의 나처럼 소통이 절실하더라.
과거의 나를 거울 보듯 할 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
오해가 오해를 낳고 오해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면 그 관계는 깨진다.
그 몇 년 전의 나의 제작 사업은 망했다 아주 쫄딱~
2집 앨범을 녹음을 마치고 재구성된 나의 그룹 친구들과는 깨졌다.
그냥 결과론적으로만 생각해보면 모든 관계는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져야 할 텐데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고 듣던 오해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회사가 콘텐츠(사람이 콘텐츠인 사업이었으므로...)를 콘텐츠가 회사를 오해의 스토리텔링을 그리며 원수지간이 되었다.
다른 회사로 옮겨가 활동을 시작했었던 그 친구들이 지금의 나처럼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미래가 밝고 행복하기만을 기도한다.
시간이 지나 그들의 행복을 꼭 빌어주고 싶었다.
매 순간 고난은 얻는 것이 반드시 있다.
내가 사업의 실패로 처절하게 힘들었을 때 얻은 큰 교훈 한 가지
진짜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은 힘들 때 비로소 걸러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