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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나지행 Nov 02. 2019

#3. 인간은 철저하게 간사한 동물이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인 것이 다행일까 불행일까?

인간이 망각의 동물인 것이 다행인 걸까?

아니면 불행인 걸까?


연애가 끝난 후 사람을 잊는데 걸리는 시간 평균 3개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을 하늘로 보낸 후 마음을 추스르는데 걸리는 시간 3년

김기덕 감독의 결은 나와 맞지는 않지만, 내가 참 예술적으로 봤던 그 감독님의 영화가 있다.

불교의 윤회사상을 계절의 흐름으로 보여줬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인생사의 흐름이 바뀌는 이 계절과 같다. 추운 겨울이 가고 다시 따뜻한 봄이 오듯이..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중에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고 재활로 어느 정도의 몸을 쓸 수 있게 되자, 나는 욕심이 생겼다.

분명히 나의 소원은 평범하게 걷게만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이젠 하늘을 날듯이 점프를 뛰고 싶다. 다른 친구들처럼 연습을 오래 해도 체력이 달리지 않고 싶다. 다시 한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전의 욕망이 넘치던 그 어릴 때처럼 나는 다시 무대로 나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복용한 스테로이드 성분의 약으로 부은 몸이 미워졌다. 또다시 나를 미워한다.

나 자신에 대해 주인이 아닌 객이 되어 내 앞을 막아선 장애물에서 뒷걸음을 칠 탈출구를 지속적으로 찾는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작업을 할수록 외로워졌다.

'아플 때도 혼자서 하는 거였잖아...'


혼자 아플 때 느꼈던 그 외로움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지가 않다.


당시는 항상 사막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의 기복 속에 다시 한번 나의 도전들은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백 프로를 다하여 몰입할 수가 없다.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이 지독한 외로움의 공포였던 것 같다.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들은 친구들을 만나 모든 불안을 망각하고 즐기는 시간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헤어지기를 아쉬워하는...

그러므로 나에 대한 탐구와 설계의 시간들은 자연적으로 사라져 갔다. 내가 거의 2년을 몸이 아파 힘들어했던 시간들은 내 인생에 이미 지워진 듯 망각한 채 흘러가는 대로 다시 살기 시작했다. 아주 간사하게 말이다...

나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이 없어지자 당연히 내 인생에서 나는 빠져있었고 그 공허함에 기댈 곳을 찾다 보니 어느새 나는 금사빠가 되어 있었다.


요즘의 나는 코칭을 할 때도 자존감을 상실한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당신 인생에서 당신이 빠져있는데 어떻게 자존감이 튼튼할 수가 있나요?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찾으려 하면 당연히 자기 존중감은 점점 사라져 가죠."


하지만 안타까움에 이런 말들을 전하는 정작 나의 과거가 

지금 자존감 하락으로 힘들어 나를 찾아오는 친구들의 거울과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그때 끊임없이 나를 위한 몰입을 하며 지냈었더라면 지금 이렇게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을 조금은 단축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를 위해 몰입을 하는 대신 나는 사랑에 몰입을 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내리게 된 사랑의 정의에 비유를 하자면 당시 내가 하던 건 사랑도 아니었다. 그 상대방에게 나를 투영시키는 것이었다. 나를 아껴주고 있는 거였다.

내가 나 자신이 안타깝다고 생각을 했었는지 뭔가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에게 마음을 금방 오픈하곤 했다.

결핍이 보이는 친구들만 고르니 당연히 사람을 잃거나 이별을 하면 그 아픔이나 허무함은 배가되어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메조히즘의 성향도 아닌데 왜 유달리 아플만한 결말의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골라 빠져들었는지는 참 아이러니하다. 현재의 나로서 해석을 굳이 해보자면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격의 특징 중 하나인 '측은지심'이 그런 반복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요즘도 연애상담을 할 때 내담자들의 케이스 중 내가 안 겪어본 것이 없다.

그래서 공감과 최선책을 내주기가 내게는 참 수월하다

과거에 내가 겪어온 몰입의 사랑 중 약물중독자였던 분이 있다. 약물중독자라고 해서 거지꼴을 하고 있는 사람의 그림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그런 부류가 아니다. 그분은 약물중독으로 인해 집에서 쫓겨다니던 분이었다.

당시는 ADHD 약물을 과다복용을 하면 환각의 효과가 있다는 정도로만 그분의 증상을 들었는데 아마도 향정신성의약품인 메틸페니데이트로 추정된다.


"내 인생이 이 약으로 인해 모든 게 망가졌어. 끊고 싶지만 끊을 수가 없어" 

라며 눈물을 흘리는 그분에게

"내가 끊을 수 있도록 도와줄게"

라는 말을 한 것이 나의 당시 불행의 시발점이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분이 집에서 쫓겨다니는 동안 함께 전국 팔도를 다녔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때 모든 일을 잠시 접고 핸드폰부터 꺼놓았다. 핸드폰을 그렇게 오랫동안 신경 쓰지 않고 그 현재에만 집중한 기억은 그 이후로는 없는 것 같다.

집에서 몸만 나온 터라 그 사람은 돈이 아예 없었고 당시는 내가 돈도 쓰면서 급한일에 약간의 돈도 빌려주었다. 

아! 그분 에게는 헌신적인 의리의 친구 한 명이 있었다. 우리의 전국 팔도 여행에 함께한 멤버였다.

셋이서 참 재밌게 놀러 다녔다. 그 친구는 그분과 나를 도와주려고 참 노력했던 친구였던 것 같다.

함께 할 때는 그렇게 즐거웠는데 서울로 복귀한 후 그분은 시시때때로 나의 존재를 잊었다. 


약물중독의 증상 중에서 하나에 꽂히면 한 가지만 며칠 동안 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그분은 며칠 동안 낮밤으로 게임에 꽂혀서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은 나와 떨어져 있을 땐 나의 존재를 잊었다. 그리고 내게 정말 큰 죄들을 많이 저질렀다. 

그분의 친구가 힘들어하던 내게 보다 못해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나도 사업을 열심히 하고 너도 참 열심히 사업을 하지만 그 자식은 이 막장 인생에서 정신 차리는 순간 인생의 날개가 피기 시작해. 네가 힘들어할 가치가 있는 사람한테 힘들어해라”


그랬다. 후에 알게 된 그분은 너무나 탄탄한 집안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다. 언제든 정신 차리고 돌아가면 그 사람의 탄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그렇게 세상은 참 불공평했다.


그 몇 년 후에 내가 사업이 아주 힘들어졌을 때 그분한테 돈을 갚으라는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다. 당시는 내가 그분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도 듣지 못했을 때이다. 문자의 답은 어이가 없는 답이었지만...


“찌질이~찌질이!!”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말한 거였는데... 그 문자를 받았을 때는 매우 화가 났고 뭐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이 다 있나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문자를 받을 당시에도 그분은 약물치료가 다 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 같다.


내가 해외에 거주할 때 이메일로 8년 만에 사과를 받았다. 내가 어떤 고통을 겪었었는지 그 내용들은 다 잊은 것 같았다. 그냥 자신의 상태를 해명만 했을 뿐이었다.

"미안해 예전에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질러서 헤헤 1년 동안 지방에서 약물치료를 받았어. 지금은 건강해졌고 다시 한번 사과할게 미안"

무슨 잘못들을 저질렀는지 그분은 알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실수와 죄를 지었으니 그것들이 일일이 생각나면 본인이 다시 괴로울 테니 의도한 바는 아니나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본능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오히려 그분에게 감사한다.


그때의 상처들을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다시 일어섰고, 일에 몰입을 했고, 뭔가 몰입을 했어야 했다. 그래서 압구정에 종합예술아카데미를 오픈한다.

     


인간은 참 간사하다.


힘없이 쫓겨다닐 때 손을 내밀었었던 그리고, 세월이 훌쩍 흘러 단 한마디 '미안해'로 무마시키려는 그 사람도 참 간사하지만, 병원생활을 끝내고 걷게만 해달라고 신께 기도하던 나라는 아이가 신체의 자유를 얻자 고통의 시간들을 완전히 잊고 시간의 소중함도 내 인생의 소중함도 잊은 채 인생의 주인이 아닌 객이 되어 방황이라는 사치까지 즐겼던 게 말이다


인간은 참... 철저하게 간사한 동물이다


이전 03화 #2. 장애인도 춤을 출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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