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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준 Apr 10. 2022

정육점을 털다

피넛 버터와 오후의 코끼리

 우리가 1주일간 입에 댄 음식이라곤 500mL짜리 우유 한 팩과 호밀 바게트 한 덩이, 그리고 하드롤 2개가 전부였다. 바람 한 점 없는 서부의 건조한 날씨는 우리의 이성적 사고를 소멸 직전까지 몰고 갔다. 데카르트가 자연의 빛이라고 불렀던 이성의 존재는 이미 어둠에 갇혔고, 우리의 존재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우리는 죽은 목숨이야. 무슨 수를 쓰지 않으면 우리는 끝장이라고.”

 제프가 말했다.

 “은행을 털자. 은행을 털어 그 돈으로 뭐든 사 먹으면 되잖아. 곧 경찰에 체포되겠지만 그래도 죽음은 면하겠지.” 

 내가 말했다.

 “돈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어차피 강도질할 거면 정육점을 털겠어. 고기라도 실컷 먹고 싶다고. 게다나 나는 경찰에 쏜 총에 맞아 죽고 싶진 않아. 배도 고픈데 총까지 맞다니 정말 생각만 해도 최악이야.” 

 제프가 말했다.

 우리는 결단을 해야 했다. 1969년형 폰티악 GTO에는 아직 약 20리터가량의 휘발유가 남아 있었다. 국경까지는 불과 15km에 불과하다. 차 트렁크에는 멍키 스패너와 래칫 핸들, 스패어 타이어, 드라이버 세트, 그리고 찢어진 담요가 들어 있었다. 

 우리는 정육점을 털기로 했다. 트렁크에서 담요를 꺼내 반으로 잘라 서로의 머리에 둘러 감았다. 제프는 몽키스패너를 들었고, 나는 십자드라이버를 들었다. 창문 너머로 거대한 소를 매달고 해체하는 정육점 주인이 보였다. 그의 손에는 30 Cm 가량으로 보이는 날카로운 칼이 들려 있었다. 그가 성 나보이는 우람한 팔뚝으로 칼을 내리치자 갈비뼈에 달라붙은 살덩이는 ‘쩍’ 소리를 내며 반으로 갈라졌다. 그는 거대한 고깃덩어리를 마치 따스한 나이프로 버터를 가르듯 부드럽게 썰어 냈다. 그는 전기톱으로 뼈를 자르고 칼로 능숙하게 살점을 발라내 용기에 담았다. 그의 온몸에 덮여있던 소의 혈흔이 검붉은 조명 사이로 선명히 비쳤다. 마치 B급 스릴러 영화에나 어울릴 법한 분위기가 정육점에서 연출되고 있었다.

 “젠장, 지금 들어갔다가는 저 터프한 주인장한테 걸려 고깃덩어리가 되어 버릴 거야. 우리를 토막 내고 다진 고기로 만들어 버리겠지.” 

 제프가 말했다.

 “하지만, 더 물러설 수 없어. 이곳에 온 순간 우린 이미 강을 건넌 거라고. 정신 똑바로 차려. 고기를 들고 문밖을 나오는 거야. 그리고 그걸 차에 싣고 국경을 넘으면 돼. 그게 다야. 핫도그를 조립하는 것만큼 간단한 거라고.”

 내가 말했다.

 “젠장, 모르겠다. 하나, 둘, 셋 하면 들어간다.”

 그가 말했다.

 “하나, 둘….”

 그가 먼저 가게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바로 그의 뒤를 쫓아갔다. 

 “뭐요? 고기 사시게?” 

 문소리를 들은 주인장은 작업하던 칼을 내려놓고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주인장은 거대했다. 창밖에서 본모습보다 더욱 거대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티탄이 존재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물끄러미 위아래로 쳐다봤다. 우리는 2m가 훌쩍 넘어 보이는 주인장의 거대한 키에 순간 기선을 제압당하고 말았다. 나는 순간 드라이버를 뒷주머니에 넣고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아, 저, 가장 싼 부위로 조금만 주세요.”

 뜻밖에 나온 이 말이 내가 그를 바라보며 꺼낼 수 있는 최선의 용기였다.

 “음, 그럼 우둔살로 가져가쇼, 잠시만 기다리시오.”

 주인장이 말했다.

 주인장이 뒤를 도는 순간 제프는 순식간에 정육점에 걸려있던 고기 한 덩이를 빼냈다. 그리고 나에게 윙크를 하며 재빨리 폰티악으로 달려가 시동을 걸었다. 나도 제프를 뒤따라 빠르게 뛰었다. 우리는 폰티악에 안착했고, 제프는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폰티악은 우렁찬 엔진 소리와 함께 검은 매연을 내뿜으며 앞으로 돌진했다. 나는 뒤를 돌아 정육점을 보았다. 

 주인장은 뒤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젠장, 무슨 정육점 주인이 45 구경 리볼버를 가지고 있어? 빨리 밟아!”

 내가 다급하게 외쳤다.

 뒤에서 여러 발의 총성이 들렸다. 총탄은 우리를 비켜나갔고, 우리는 고속도로 진입에 성공했다. 우리는 국경까지 연결되는 해안도로를 달렸다. 야자수가 아름답게 펼쳐진 도로였고, 짙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젠장, 우리가 해냈다. 해냈다고! 이제 느긋하게 고기나 뜯는 거야!”

 제프가 말했다.

 나는 FM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는 레드 제플린의 Going to California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어떻게 고기를 요리할까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때였다.

 윙-윙-

 뒤돌아보니 경찰차 2대가 따라붙었다. 

 “이런!, 경찰이 붙었다. 달려!”

 내가 소리쳤다.

 하늘은 푸르렀고, 햇살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으며 살며시 불어오는 해안의 바람은 선선했다. 

국경까지 3km라는 표지판이 스쳐 지나갔다. 뒷좌석에는 고기 한 덩이가 놓여있고, 우리는 지금 경찰의 추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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