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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준 Apr 13. 2022

미드나잇 블루스

피넛 버터와 오후의 코끼리

 머리가 복잡하거나 신경 쓰일 일이 생기면, 나는 항상 햄버거를 만든다. 햄버거를 만들 때는 음악이나 TV를 켜지 않고, 온전히 햄버거를 만드는 데만 집중한다. 쇠고기를 갈아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중간 불로 노릇하게 굽는다. 버터에 살짝 구운 햄버거 번 위에 패티를 올려 브라운소스를 뿌리고, 슬라이스 된 체더치즈, 토마토와 볶은 양파, 양상추를 순서대로 올린다. 모양을 잘 갖춰 잡아 접시 위에 올린 뒤 차가운 우유와 함께 먹는다. 

 햄버거를 만드는 행위 자체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적당한 몰입감을 준다, 따라서 종종 정육점에서 신선한 고기를 사다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것이다. 손이 많이 가는 콩나물 불고기나 갈비찜은 주의를 분산시키거나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한 요리로는 부적합하다. 오믈렛이나 팬케이크처럼 너무 손쉽게 요리가 끝나 버려도 곤란하다. 이런저런 음식을 해보다가 결국 햄버거가 가장 적당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어느 화창한 금요일 오후, 한가롭게 소파에 누워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 집 문 벨 소리가 들렸다. 현관의 외시 경에는 아무도 비치지 않았다. 현관문을 살며시 열었더니 길쭉하고 익숙한 회색 발이 현관문 틈 사이로 불쑥 들어왔다. 캥거루였다.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 불쑥 찾아온 것이다. 그가 말했다.

 “미안하군, 갑자기 찾아와서. 근처에 일이 있어서 잠깐 들렸네.”

 “아니, 뭐, 괜찮아. 마침 혼자 심심하던 참이었는데, 햄버거라도 먹고 가게.”

 내가 말했다.

 ‘평온한 금요일 오후는 다 지나갔군’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준비했다. 캥거루는 내가 햄버거를 만드는 동안 쉬지 않고 무언가를 말했다. 그는 잠시의 침묵을 두려워하기라도 하듯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1970년 이후 야생 생태계가 파괴되어 많은 동물이 서식지를 잃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노인 복지와 공정무역, 그리고 환율 상승과 올리버 스톤의 영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내가 만든 햄버거를 먹으며 저녁노을로 하늘이 붉게 물들 때까지 쉴 새 없이 뭔가를 떠들어 댔다. 그리고 완전히 해가 떨어져 거리의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거, 매번 미안하네, 어두워졌으니 잠깐 미드나잇 블루스를 춰도 될까? 요즘 도통 못 춰서 말이야. 늘 듣던 곡으로 부탁하네”

 나는 B.B. 킹의 CD를 찾아 ‘Every Day I Have the Blues’를 틀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더니 이내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익숙하게 블루스 스탭을 밟기 시작했다. 그는 B.B. 킹의 앨범이 모두 끝날 때까지 혼자 춤을 췄다. 

 캥거루가 말했다. 

 “오늘도 잘 먹고 돌아가네.”

 그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나는 캥거루가 돌아간 자리를 치우고, 냉장고에서 다시 햄버거 재료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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