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넛 버터와 오후의 코끼리
나는 그녀와 함께했던 추억을 영구히 보존하고 싶었다. 사랑은 시간을 잊게 했지만, 이제 시간이 그녀를 잊게 하려 했다. 추억 속에 영원히 그녀를 박제하기란 불가능했다. 마치 폭포수가 불가항력적으로 흘러내리는 것처럼, 그녀가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는 방도는 없었다. 그저 시간이라는 조류에 쓸려 그녀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때부터였다. 내가 통조림을 먹기 시작한 것이. 통조림을 먹으면, 통조림의 방부제가 그녀에 대한 기억을 보존해 주리라 생각했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통조림을 먹었다. 모든 음식을 통조림으로 대체했다. 아침에는 갈치 통조림과 스위트콘을 먹었다. 점심에는 앤초비 통조림과 함께 복숭아 통조림을, 저녁으로는 스팸과 콘비프, 그리고 무가 첨가된 고등어 양념 통조림을 먹었다. 캔 커피를 마셨고, 망고 퓌레를 먹었다.
내 삶은 마치 스탬프를 찍어대듯 정확하고 규칙적이며 반복적으로 흘러갔다. 매일 3,000자 분량의 원고를 번역했고, 영화 두 편을 봤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메뉴로 식사했다. 하지만, 시간이란 존재는 스탬프의 잉크마저 희미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그녀에 관한 추억도, 기억도 희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 통조림 뚜껑을 따는 습관만이 그녀가 존재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나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갔고, 그녀는 다른 시간대에 존재했다.
5월 햇살이 쏟아지는 화창한 오후, 나는 환기를 위해 창을 활짝 열고, 커피 캔을 마시며 거리 밖을 살폈다. 그리고 이내 점심으로 먹을 앤초비 통조림을 꺼냈다. 나는 통조림을 따다가 뚜껑의 날에 손을 베었다. 집게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슬며시 흘러 땅에 떨어졌다. 나는 휴지로 피를 닦고 파인애플 통조림과 스파게티 통조림을 먹었다. 척 베리와 글렌 캠벨의 음악을 들으며 알베르 카뮈나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읽었다. 나는 식사를 하며 더 이상 그녀를 떠올리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캔 커피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후배였다.
“선배, 아직도 통조림만 먹어요? 인제 그만 드실 때도 됐잖아요, 아! 그리고, 통조림에는 방부제 안 들어 있었데요. 그냥 살균하고 밀봉해서 오래 먹는 거라네요. 방부제 때문에 그런 거라면 차라리 냉동식품을 드세요. 오늘 저녁에 한번 봐요. 클림베리 수제 버거집 알죠? 거기서 맥주나 한잔해요.”
그렇다. 문제는 통조림이었다. 이 모든 것이 통조림 때문이었다. 통조림으로 인해 그녀를 잃었다. 나는 천장까지 쌓여있는 통조림들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집안에는 칼 퍼킨스의 All I really want to do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문득 정신이 들었고, 상처 난 손가락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 에이드를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