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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준 Apr 22. 2022

핫도그

피넛 버터와 오후의 코끼리

 그러니까, 제가 스무 살 때였어요. 막대기에 꽂고 튀겨낸 한국식 핫도그가 아니라, 푹신한 번에 소시지를 넣고 머스터드 소스를 바른 전통 아메리칸 핫도그를 먹게 된 것이. 

 비바람이 거칠게 몰아치는 어느 목요일 저녁이었죠. 3년간 만나던 남자 친구하고 헤어지고 오는 길이었어요. 우산은 고장 났고, 제가 입고 있던 베이지 면바지와 흰색 셔츠는 빗물에 흠뻑 젖어 버렸어요. 학교 프로젝트는 엉망으로 치닫고 있었고, 10년간 알고 지낸 친구와의 관계마저 틀어져 버렸죠. 삶에 중요한 나사 같은 것이 빠진 혼란한 상태였어요. 그때 저는 학교 옆 골목에서 우연히 이 핫도그 노점을 보게 된 거예요.

 핫도그 노점의 주인은 얼핏 봐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 흑인이었어요. 그는 이제 막 삶아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시지를 핫도그 번에 끼워 넣고 있었어요. 전 노점에서 흘러나오는 존 레넌의 노래에 이끌려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다가갔고, 핫도그 한 개를 달라고 했죠. 아니, 저는 흑인 주인과 마주친 그 순간 핫도그를 먹어야겠다고 작정했는지도 몰라요. 노점 주인은 저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이렇게 말했어요.

 “핫도그 한 개 이천 원, 두 개 삼천 원.”

 저는 처음에 이 말을 알아듣지 못했어요. 강세의 다름이라던가 어색한 발음 같은 것들이 문장의 본질을 가려버렸죠. 제가 멀뚱멀뚱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으니 그는 조금 큰 소리로 천천히 다시 말했죠.

 “핫도그 한 개 이천 원, 두 개 삼천 원. 오케이?”

 저는 집게손가락을 그에게 내보이며 한 개를 달라고 했죠. 그는 그 자리에서 핫도그를 만들어 제게 건넸어요. 저는 무엇에 홀린 듯 그 자리에서 핫도그를 한입 크게 베어 먹었어요. 입안에서 두툼한 소시지가 머금고 있던 육즙이 터지고 시큼한 머스터드 소스와 어우러지면서 청량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났어요. 대단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니고, 대단한 조리법이 있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길거리 핫도그에서 뭔가 특별함이 느꼈어요.

 저는 눈을 감고 천천히 핫도그를 음미하며 먹었어요. 전혀 알지 못했던 맛의 신세계를 경험했죠. 이 핫도그를 먹지 않았더라면 세상의 절반은 모르고 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저는 그 자리에서 핫도그 한 개를 다 먹고, 두 개를 더 시켜 먹었어요. 

 저는 이 핫도그를 먹으며 내면의 자유로움과 풍요로움을 느꼈어요. 적어도 핫도그를 먹고 있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죠. 핫도그를 다 먹고 나서야 왜 핫도그 주인이 ‘두 개 삼천 원’을 말했는지 이해가 갔어요. 저는 이 핫도그에 이름까지 붙였답니다. 

 ‘기쁨을 주는 핫도그’ 

 저는 일주일간 계속, 이 핫도그 노점을 찾아갔습니다. 정확히 같은 시간에 핫도그 두 개를 사 먹었죠. 기쁨을 주는 핫도그는 매일 먹어도 동일한 수준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자, 내게 평온함을 주는 영혼의 음식이었죠. 그런데 정확히 8일째 되는 날, 그 핫도그 노점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노점에 걸린 현수막, 수북이 쌓여있던 핫도그 번, 소시지를 삶던 흑인 주인, 모든 게 한순간에 소멸해 버린 거예요. 저는 꿈속에서 헤매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건 꿈이 아니었어요. 제 혀는 따뜻한 핫도그의 온기를 아직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 이후로 저는 전국의 핫도그 집을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100군데가 넘는 핫도그 노점을 찾아 헤맸죠.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이와 같은 맛을 내는 핫도그 가게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길쭉한 번을 갈라 따뜻한 소시지를 넣고 그 위에 머스터드 소스를 뿌린 아주 간단한 플레인 핫도그였지만, 이 맛을 낼 수 있는 가게가 없었어요. 

 그때 저는 깨달았죠. 어눌한 발음으로 핫도그 두 개를 외치던 흑인 주인의 존재, 가게를 감싸고 있던 대기의 흐름, 어스름한 노을이 만들어 내는 아련한 분위기, 노점에서 흘러나오는 존 레넌의 노래가 어우러져 특별함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네, 그래서 당신이 여기에 있나 봅니다. 숙자 씨, 소시지를 너무 많이 드셔서 콜레스테롤이 심각한 수준이에요. 소시지 섭취를 줄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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