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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약속이 있어 나갈 준비를 마치고 막 나가려던 참이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려는데 동생의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인조가죽인데 오래 신어 군데군데 주름이 생기고,
뒷발목이 닿는 운동화 안쪽 부분이 다 헤져서 안의 조직이 다 보이는
낡은 하얀 운동화.
예전에도 똑같은 운동화를 보고 동생에게 잔소리를 했던 기억이 있다.
"운동화 발목 뒤쪽이 다 헤졌네. 운동화 좀 하나 새 걸로 사."
동생은 원래 돈을 잘 안 쓰는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돈 쓰기보단 모으기가 취미인 아이였다.
내가 꼬마시절, 동생은 꼬꼬마였을 때에
명절에 친척들로부터 용돈을 받으면 나는 쓰기 바빴지만
동생은 그 돈을 차곡차곡 모아 통장에 꽤 큰돈을 저축하기도 했었다.
그런 동생에 반해 있는 족족 돈을 써버리는 나에게 부모님은 핀잔을 하시기도 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돈 안 쓰고 모으기 좋아하는 동생이었으므로
동생이 자살시도를 하기 전,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를 동생의 우울증과 거짓말이 드러나기 전에는
동생이 낡은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건
단지 동생이 돈을 아끼는 성향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살시도 후 잠에서 깨어 그동안 가족들을 속여왔다고 얘기할 때,
동생은 자신의 통장에 이제 돈이 20만원도 채 없다고 말했었다.
동생은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운동화는 말하고 있었다. 동생의 상태는 마치 운동화의 상태였다.
예전에 내 눈에 들어온 동생의 운동화는 단지 돈 쓰기 싫어하는 동생의 낡고 헤진 운동화였다.
그러나 나는 똑같은 운동화를 보고, 그전에는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운동화의 의미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동생과 부모님 댁을 다녀오는 길에
동생에게 새 운동화를 사 주기로 했다.
KTX 기차에서 내려서 곧장 역사에 있는 쇼핑몰에 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발 중 편하다고 느낀 신발 브랜드의 매장으로 갔다.
동생에게 마음에 드는 디자인으로 고르라고 했다.
점원에게 맞는 사이즈를 요청했고, 세네 가지 다른 디자인의 신발을 신어보았다.
동생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한 신발은 아쉽게도 맞는 사이즈가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동생과 같이 신발을 사러 나온 김에 꼭 동생의 새 신발을 사고 싶었다.
그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신발을 구매하기로 했다.
나는 신고 있던 신발을 버리고 새 신발을 신고 가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다.
동생은 그러겠다고 했다.
동생에게 새로운 신발을 사 주며 마음이 복잡했다.
동생의 낡은 운동화를 버려서 속이 시원했고,
동생에게 선물을 주는 기쁨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다 큰 동생의 신발을 사 주어야 할지 가늠할 수 없어 막막했다.
또한, 동생과 관련되어, 지금 놓치고 있는 시그널이 있을까 불안하고 두려웠다.
당시에는 미처 몰랐지만
낡은 하얀 운동화는
벼랑 끝에 가까워지고 있는, 동생이 처한 상황의 시그널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