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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달릴까?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by 윤슬

9월의 무지개 주제도서는 무라카미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하루키 작품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의 대부분의 소설과 수필을 읽었음에도, 이 책을 읽은 적이 없으니 9월의 주제도서로 책도 읽고 겸사겸사 좋아하는 작가의 책도 읽으니 일거양득이었다. 한 편으로는 작가가 수년 전에 발간한 책을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 러닝 열기가 꺼지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주변의 문우들이 러닝화를 사며 달리기를 시작하고, 직장 동료의 아버지는 매 번 마라톤 대회를 참가한다.

나만 빼고 다 달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어렸을 때는 마라톤을 보고 저 재미없고 지루한 운동을 왜 할까 의문을 가졌다.

그냥 쭉 뛰기만 하는 거 같은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뛰는 황영조, 이봉주 선수의 금메달 소식에만 기뻐하고 한동안을 마라톤에 관심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선수들이 마라톤을 뛰는 속도가 사실 꽤나 빠르다는 사실이었다.

100m 달리기도 20초 전후로 뛰는 나로서는 42.195km를 계속 이 속도로 사람이 뛴다는 거에 매우 놀라게 되었다. 이렇게나 힘든 운동인데 사람들은 왜 마라톤에 열광하는 걸까?


하루키의 책을 읽고 그 이유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소설가로 데뷔하고 전업 소설가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건강 관리는 필수였던 그.

성격상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운동보다는 혼자 하는 운동이 적성에 맞았고

그중 러닝이 가장 맞아서 하게 되었다는...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삶에 러닝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되고 여러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하지만 달리면서 느끼는 것들은 분명 많았다.

그래도 참고 끝까지 달리고 나면, 몸의 중심에서 모든 걸 깡그리 쥐어짜 내 버린 것 같은, 어쩌면 모든 걸 다 털어내 버린 듯한 상쾌함이 거기에 우러난다. p22
그러나 다리는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55킬로 휴식 지점에서 75킬로 지점까지는 엄청나게 고통스러웠다. 느슨하게 돌아가는 육류 다지는 기계 속을 빠져 넘어가는 쇠고기와 같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은 있지만, 아무튼 몸 전체가 말을 듣지 않는다. 자동차의 사이드브레이크를 힘껏 당긴 채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는 거 같았다. 몸이 뿔뿔이 흩어져 당장이라도 해체되어 버릴 것 같다. 기름이 다 떨어지고 볼트가 풀리고 톱니바퀴의 아귀가 안 맞는 것이다. p169

작가의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는 운동이야기이지만 인생에 관한 태도의 이야기라고 하도 어색함이 없다.


두 달 전부터, 몸치인 나는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수영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물론 작가처럼 첫 번째 이유는 건강이다.

두 번째 이유는 물에서 자유롭게 뜨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다.

하지만 몸치인 내 몸은 머리의 명령을 듣지 않고, 제 멋대로 움직인다.

그동안 나는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힘들지 않게 쉽게 쉽게", "노력은 적당히, 결과는 최대로"라는 모토로 살았던 나로서는

몸의 중심을 깡그리 쥐어 짜내거나, 육류 다지는 기계 속을 빠져나가는 듯한 한계를 내 육체에 준 적이 없다.

당연히 내 몸은 조금만 힘들어도 발차기를 멈추고 두 발로 물속을 걷고 있다.

내가 가진 습관이 그대로 내 몸에 쌓이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소름이 확 끼쳤다.

나이 들수록 얼굴에 인성이 드러난다는 말처럼, 나의 습관과 행동도 나이 들수록 몸에 드러나고 있다.

유명 마라토너도 "운동은 늘 빠지고 싶다"라는데, 내가 뭐라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내버려두었던 걸까?

내 몸의 근육을 위해 그리고 인생을 위해 오늘도 쥐어짜보고 싶다.


근육은 붙기 어렵고 빠지기는 쉽다. 군살은 붙기 쉽고 빠지기는 어렵다.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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