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iro Feb 19. 2024

늦은 밤의 상해 땅콩 빙수

남이 해준 건 늘 맛있어 03



  친구가 상해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주말을 껴서 2박 3일의 짧은 상해 여행을 갔었다. 그렇게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는 않았지만 친구가 상해에서 살고 있으니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저런 일정을 짜서 알차게 다닐 수 있었다. 


 이 날은 상해에서 버스를 타고 미션 임파서블 촬영지인 시탕에 다녀왔었다. 서울에서 남양주 어드메에 슬쩍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다 가듯이 시탕에 다녀오고 저녁을 먹고 나니 시간은 벌써 늦은 저녁이었다. 이제 숙소에 들어가서 잘 시간이라고 얘기했더니 친구는 디저트로 땅콩 빙수를 먹으러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니 이 밤에 무슨 빙수야라고 되물었지만 상해는 땅콩 빙수라며 밤늦게까지도 빙수집은 한다고 나를 데려갔다. 그렇게 아마도 밤 10시쯤 우리는 벨라지오에 갔다. 그런데 가서 보니 벨라지오는 사실 빙수집은 아니고 식당으로 땅콩 빙수는 디저트 메뉴 중에 하나였다. 우리 둘이는 저녁을 이미 먹었기 때문에 땅콩 빙수만 시켜서 같이 먹었다. 

 

 유리 디저트 컵에 연한 갈색의 고운 크림 같은 얼음이 높고 투박하게 쌓여 있고 그 위에 작은 땅콩 알갱이가 "나는 땅콩 빙수입니다"라고 알리고 있었다. 처음 먹어보는 땅콩 빙수는 생각보다 부드럽고 고소했다. 약간 땅콩잼의 아이스크림 같은 버전의 맛이었다. 한국 빙수는 팥과 아이스크림 같은 토핑이 들어있는데 이 땅콩 빙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땅콩 얼음으로만 되어있었다. 


 나는 상해에 가벼운 옷만 챙겨갔는데 예상치 못한 비도 오고 날이 흐려서 날씨가 쌀쌀했다. 그런데 밤에 차가운 빙수를 먹고 있자니 온몸이 빙수가 되는 것 같이 추워졌다. 그래도 여행 와서 먹어보는 첫 땅콩 빙수인데 남길 수는 없다며 오들오들 떨면서도 계속 퍼 먹으면서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양이 너무 많아서 끝내는 다 먹지 못하고 포기를 하고 말았다. 


 벨라지오를 나와 숙소를 돌아가는 길에 추워서 후드티의 후드를 뒤집어쓰고는 그래도 추워도 먹으러 올만 한 맛이네라고 말했다. 후로는 나는 땅콩 빙수를 먹어본 적은 없다. 한국이 어딘가에서도 아마도 팔고 있겠지만 번도 적이 없어서 상해의 땅콩 빙수는 인생의 유일한 땅콩 빙수가 되었다. 땅콩 빙수하면 누가 이 밤에 땅콩 빙수를 먹나 했더니 그게 나였네라고 키득 거리면서 상해 밤거리를 걸어가던 기억이 난다. 






작가의 이전글 고등어와 빵을 같이 먹는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