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스마트폰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는 부분은 터치스크린이다. 손가락만 갖다 대면 뭔가가 이루어 진다니, 신기하지만 달갑지 않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유리판. 실수로 스치기만 해도 뭔가가 입력된다. 아 짜증나.
나는 스마트폰이 등장한 십여 년 후까지도 MP3 플레이어를 들고 다녔다.
주머니 속에 넣어져 보이지 않아도, 손가락의 감촉만으로 음량을 올리고 다음 노래를 들을 수 있다. 화면에 흘러가는 제목을 쓰다듬으며 실수로 뭔가가 입력될 걱정도 없었다. 스마트폰 절반의 절반도 안 되는 그 작은 화면은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안타깝지만 기계에도 수명은 있는 법. 새로운 MP3를 구입해야 했던 나는 온라인 구매처 수십 곳을 찾아보았다. 나오는 건 커다란 화면에 터치 입력 방식만 지원하는, 스마트폰을 모방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세월의 흐름에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버튼이 달린 MP3가 존재는 하였지만 용량이 작거나 내가 가진 음악 형식을 지원하지 못하는 저렴한 것들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쇼핑몰과, 모든 음악기기 회사를 검색했다.
결국 날 구원해 준 건 소니였다. 워크맨의 첫 등장 이후 세계인의 마음을 휘잡았듯이, 내 마음 역시 휘몰아쳤다.
내가 가진 음원을 모두 읽을 수 있을 것, 그리고 터치가 아닌 버튼 방식일 것. 이 조건을 갖춘 건 워크맨 NW-A25라는 제품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음악 기기 전문 회사에서 나온 제품 중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버튼식 MP3 플레이어였다.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이십만 원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돈을 지불했다.
터치스크린 MP3를 다섯 개는 살 수 있는 금액이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난 이동할 때나 쉴 때나 잠잘 때까지 언제나 나의 워크맨을 들었다.
여름의 셔츠 주머니 속에서, 겨울의 두꺼운 바지 속에서, 손끝만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순간은 얼마를 줘도 메길 수 없는 가치가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낸 후, 나의 친구는 지금 서랍 속에 잠들어있다. 시대에 따라 점점 커지는 스마트폰은 주머니 속에서 나의 워크맨을 밀어냈다. 이어폰으로 귀를 닫으면 스마트폰의 알림을 놓칠 때가 많았다.
디지털 음원 제공 업체들은 이제 스트리밍이 대세가 되었다. 결국 나의 오랜 친구는 타의적이자 자의적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바뀌어가는 시대 속에서 나의 습관을 지키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신념도 있는 모양이다.
가끔 생각나 서랍 속에 있는 작은 워크맨을 꺼내본다. 배터리가 없어 눈뜰 수 없다고 외치는 화면은 다시 어두워진다. 그리고 나는 듣지도 않을 기기를 위해 충전기를 연결한다. 마치 아직 널 포기하지 않았다고 은근히 알려주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