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구백구십원

by 승현

갑자기 소세지가 먹고 싶었다. 열두 개 묶음에 이천오백원에 파는 그런 싸구려 소세지가 아닌, 제대로 포장되어 유럽 어느 나라의 이름 같은 브랜드명이 붙은 그런 소세지. 사실 제대로 된 소세지란 무엇인가도 알지 못할 정도로 그것을 탐구한 적이 없으니, 급작스런 욕망에 의한 충동인 셈이다.

돼지고기를 살 때도 무게 대비 가격을 십원짜리 까지 계산하여 구입하는 나에겐 소고기를 파는 매대는 쳐다볼 필요도 없는 곳이며, 쳐다볼 일도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내가 원하는 소세지라면 그곳에 있겠거니 싶은 마음으로 소고기 매대를 향해 걸어갔다.
역시나 그곳엔 두꺼운 소세지 여덟 개가 멋들어지게 검은색 통에 포장되어 있었다. 가격은 오천구백구십원. 난 적잖이 놀랐다. 나에겐 그런 건 사치품이라는 생각 따위를 하며 살았었고, 아마 만팔천원 정도 하지 않을까 멋대로 상상했었던 것이다. 살짝 이득 본 기분으로 나에게 전혀 부담되지 않는 육천원도 안되는 사치품을 품에 안고 집에 돌아왔다.

가장 좋아하는 맥주인 버드와이저를 냉장고에서 꺼내고, 소세지 세 개를 칼집 내어 따뜻하게 데웠다. 단언컨대 최근 십여 년 동안 먹은 소세지중 최고의 맛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그렇게 고급 진 음식을 먹어본 적은 없으니 이게 얼마나 맛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휴대폰 불빛만 남아있는 그 슬픈 저녁의 내방에서, 오천구백구십원짜리 소세지는 맵고, 고소하고, 담백하고, 그리고 즐거웠다.

누군가에겐 푼돈인 그 금액을 나는 애써 무시하고 살았다.
동시에 그럴 수밖에 없이 살아온 인생이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날 치고 들어온다. 하지만 그날의 오천구백구십원짜리 기름진 순간에 그런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 냉장고엔 아직도 소세지 두 개가 차가운 냉기를 막아서며 날 기다리고 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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