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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Oct 05. 2023

쓰지 않던 근육을 발견했다

추석 연휴를 맞이하여 고향에 내려갔다. 요즘 다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마침 보디빌딩 대회까지 나갔던 친구들을 만나서 운동을 배우기로 했다. 저녁에 일정이 있어서 헬스장에 못 가는 날에는 간단하게 홈트만 하고 자곤 한다. 이때 하는 운동 중 AB 롤아웃이 있는데 혼자 유튜브 보고 맞는 자세인지 알기 어려워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 봐달라고 했다. 거울을 보고 코칭을 들으며 자세를 교정해 봤지만 아무리 해도 제대로 된 모양이 잘 나오지 않았다. 허리를 말아 올린다는 게 어디에 어떤 느낌으로 힘을 줘서 만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결국 구경하던 관장님까지 붙고 AB 롤아웃의 이전 단계인 플랭크도 해보면서 진단을 했다. 아주 기초적인 자세부터 단계별로 나아가며 제대로 된 모양을 만들자 잘 안되었던 이유를 찾았다. 그동안 살면서 한 번도 힘을 줘본 적 없던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자극이 오는 게 느껴졌다.


이 몸뚱이를 가지고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왔는데 아직도 내 몸에 대해 내가 잘 모르고 조절할 수 없다는 게 재밌었다. 전혀 발달이 안 되었을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거의 쓰지도 않는 근육이 이렇게 태어났을 때부터 붙어있었고, 심지어 그 근육이 운동을 제대로 하려면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는 게 신기했다. 어쩌면 운동은 육체적 고찰이지 않을까. 나도 내 생각과 마음을 잘 모르기에 끊임없이 되묻고, 그 과정에서 일상에서는 지나쳤을 의문점과 특이점을 탐구하며 자아를 발달시키는 과정이, 생각을 근육으로 바꾸고 정신을 육체로 바꾸면 운동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에 생각을 쌓아나가는 건 정말 재밌는데 운동은 고통 그 자체일 뿐이라는 아주 큰 차이점이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굉장히 기뻤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다가 구조선을 만난 기분이랄까. 문제점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정확히 목표해야 될 지점까지 알게 되어 너무 좋았다. 부족함을 인지했는데 나아질 방법을 모르겠을 때, 혹은 나아질 방법이 없을 때 급속도로 무기력해진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거나 힘들다고 해도 방법만 존재한다면 괜찮다. 올바른 마음인진 모르겠지만 나아졌다는 결과보다는 나아지고 있는 과정에 있다는 것 자체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편이다. 방법이 존재만 한다면, 조금씩이라도 나아간다는 확신만 있다면 해나갈 수 있다. 방법을 모른 채 가만히 있으면 지나가는 시간을 땅에 버리는 느낌이다. 계속 오물을 손에 쥔 채 나도 같이 썩어들어가는 것 같다. 아직도 무한 경쟁 시절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일까. 가만히 있으면 뒤처진다고 느껴진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방향으로 달리면서 누군가와 비교하고 경쟁한다는 느낌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어떤 방향이던 나아가기는 해야 한다는 마음은 남아있는 것 같다.


가장 무서운 건 내가 부족하거나 잘못한 지 모르는 상황이다. 방법을 아직 모른다 해도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고 있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도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인지조차 못해서 그 부분을 끝까지 들고 살아간다는 게 가장 끔찍하다.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것도, 내 생각에 갇히지 않아 언제든 틀린 부분을 발견하고 고치기 위함이다.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나눴던 이야기 중에 다음 문장의 빈칸을 채우는 것이 있었다.


나는 ... 을(를)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빈칸을 '지적'이라고 채웠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들 그냥 좋게좋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무던한 관계를 위해 굳이 누군가의 안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된다. 나는 내 단점을 알고 싶다. 내 문제점을 알고 고치고 싶다. 싫은 소리를 듣는 것보다 모르는 채 그대로 살아가는 게 더 싫다. 그래서 지적을 함께 나누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깎아내리거나 기분을 나쁘게 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정말로 상대방을 위해 고쳐야 될 점을 알려주는 말이라고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사람이기에 상처를 받기는 할 것이다. 나 자신에게 내 부족함을 자각하는 과정에서 오는 상처이지 상대에게 '너 미워'하는 상처는 절대로 아닐 것이다. 상처는 잠깐이지만 고치고 나아진 나 자신은 평생 갈 것이기에, 당연히 고마워할 것이다. 부정적인 단어가 마음에 걸린다면 개선점이라고 해볼까. 주변 사람들에게 내 개선점을 발견했다면 언제든 말해줘도 괜찮다고 얘기하고 싶다. 해결 방안까지 같이 제시해 준다면 더없이 감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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