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position. Music start.” 미국에서 온 심사위원 매튜의 말이 끝나면, 무용수들이 춤추기 시작한다.
남자 무용수들 간의 경연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 지난주 나의 시간도둑이었다. 집에 오면 1화부터 지금까지 방영한 6화까지 몰아보았다. 한 회당 3시간이라는 긴 분량인데 한 번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었다.
평소에 접하지 않았던 장르도 한 몫했다.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 이렇게 세 장르의 무용가들이 나온다. 처음에는 같은 장르 안에서 경쟁하여 퍼스트, 세컨드, 언더 세 그룹을 정했다. 이후 3화를 기점으로 모든 장르가 섞여 경쟁하고 있다.
퇴근하고 몰입할 만한 게 필요했을 수도 있다. 음악과 춤 그리고 경쟁을 합치면, 역시 ‘고자극’이다.
“제가 퍼스트 가야죠.” 모든 참가자들이 하는 말이다.
퍼스트만이 무대의 주인공을 맡고, 독무의 기회가 주어진다. 세컨드는 조연이다. 언더는 조연과 주연을 돋보일 군무를 춘다. 물론 계급은 계속 바뀐다. 출연자들은 심사위원들 눈에 하나라도 더 띄려고 악착같이 춤춘다. 누군가 올라오면 누군가는 내려간다. 자신의 한계를 마주했을 때, 누군가는 그걸 딛고 단기간에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누군가는 좌절한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출연자에게 더더 기량을 뽐내라고 프로그램, 심사위원, 시청자 모두 그들을 내모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들 스스로 더 자신에게.
왜 끌렸을까? 내가 아주 끌리는 일이나 혹은 아주 싫어하는 일에는 내 모습이 분명 숨어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심사위원에 이입하며 그들의 춤을 보았다. 각자의 장르의 기본기와 테크닉을 얼마나 잘 구사하는지, 무대에서 얼마나 에너지를 쏟아내는지, 상대에 비해 표현력은 얼마나 더 월등한 지, 독창적인 안무를 짰는지. 어떻게 단시간에 안무를 숙지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녹여 춤을 추는지. 표정과 몸은 더 돋보이는지. 심사의원의 말을 따라갔고, 서로 동료를 평가하는 말과 자막을 따라갔다.
그러다 출연자들이, 그들 각각의 캐릭터가 눈에 들어왔다.
현재 각 분야의 탑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앞에 있다. 재능도 있는데 노력까지 하고, 멘털도 세다. ‘와 저 사람은 늘 뭔가를 보여준다. 기대가 된다.’고 말하게 되는 늘 감탄을 안겨주는 독보적인 출연자가 있다. 전성기가 지났지만 연륜과 경험으로 승부하는 출연자에게도 마음이 갔다. ‘저 사람은 그래도 끝까지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멋졌다. 아주 영리한 출연자도 눈에 띄었다. 지는 싸움을 안 한다는 그는 자기가 어떻게 돋보여야 할지를 알고 있었다. 일부러 연습 때 제 실력을 안 보여주는 전략을 짜기도 했다. 이에 반해 몸을 늘 내던지는 출연자도 있다. 때론 그 에너지가 모든 걸 압도하기도 하지만 영리하지 않은 판단을 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는 게 재미있었다.
그들의 열정과 패기가 멋져 보였다. 한 분야의 장인이 되었고, 모두 자신의 춤에 자부심이 넘쳤다. 오랜 시간 만든 짱짱한 근육과 자신이 자신 있는 테크닉, 손놀림, 호흡에 대해 주저 없이 말했다. 그간 자신이 보낸 시간에 대한 믿음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떨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실수해도 끝까지 자기 무대를 하는 것. 늘 부상의 위험이 있지만 그럼에도 도전해 보는 것. 재능 있는 누군가의 기술에 지레 겁먹지 않고 자기 것을 하는 것. 자기의 길을 믿고 가는 것. 압도하는 에너지는 그런 것에서 나왔다.
그들이 자아내는 자연스럽고 힘 있는 몸의 움직임이 부러웠다. 한 번 보고 따라 추는 센스도. 그러다 나를 본다. 그간에 스스로 내몰았고 들들 볶았다. 상황을 좀 더 나아지게 해 보겠다며 이런저런 방법을 찾으러 다녔다. 간절했으니까. 이제 내가 지나온 시간을 믿어주고 싶다. ‘나는 좌절에도 한 발을 내딛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나는 한 발을 내딛기도 힘들 때는 멈추고 버틸 수 있는 힘이 있다.’ 시간 도둑에 관한 글을 정리하며, 잠시 멈추어 서 볼 수 있었다.
(2024.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