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사람들 (옛제자)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수요일 오후였다. 복도에 난 창밖에서 누군가 기웃거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문을 열어보니 키가 훤칠한 남자였다. '우리 반 아이의 형인가?' 곧 반사적으로 '우리 반 애가 밖에서 혹시 무슨 사고 쳤나?'란 생각이 스쳤다. 내가 누구신가요?라고 묻자, 그는 저…기억 안 나세요?라며 답했다. 자세히 얼굴을 살펴보았다. 떨리는 목소리, 안경 너머 바닥을 향하는 시선, 끊임없이 안경을 만지작거리는 손. 자세히 살펴보니 어릴 적 얼굴이 떠올랐다.
"너…혹시 준우(가명)니? 준우 맞니?"
그렇다. 나의 첫 제자가 우리 교실에 찾아왔다. 7년 만이었다. 내가 5학년 담임할 때 만났던 준우는 벌써 수능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놀랍고 또 반가웠다.
"선생님, 준우가 가위로 자해하려고 해서 남겨서 혼냈어요."
그 해 우리 반에 들어오셨던 전담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준우는 나를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내 눈에는 안쓰러운 아이였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고 똑똑한 아이였다. 그리고 생각을 깊게 하지만, 말로 표현하는 것은 서툰 학생이었다.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어울리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자기 감정을 못 이기거나 자존심이 상했다고 느끼면, 죽고 싶다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준우도 나름대로 애썼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음 해, 나는 전담 교사로 준우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첫 시간에 이런 행동은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때 준우가 작게 "왜 작년에는 이러지 않으셨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다. 그 말이 참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내가 많이 달라지고 힘이 생겼구나.'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첫해에 나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시달렸다.
오랜만에 교실로 찾아온 준우에게 일단 앉으라고 했다. 교실에 있던 간식을 주었다. 잘 지냈는지, 학교생활은 어떤지, 공부는 할 만한지 물었다. 준우는 성적이 잘 나온다고 했다. 친구들과는 조금 어렵다고 했다. 고민이 있는 것 같았다. 계속 과거를 돌아보다 초등학교를 찾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악의 근원’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너는 악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대화가 무르익었을 때, 나도 용기를 냈다.
"선생님이 처음이라서… 서툴러서, 힘들지 않았니? 혹시 그때 상처받지는 않았니?"
아이는 갑자기 고개를 떨구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투박하지만 이렇게 말했다.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죠?! 감사해요."
그 말을 듣고 내가 눈물이 나왔다. 준우는 자기도 울고 싶은데 요새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 애는 나에게 고맙다고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교사인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반을 이끈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웃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한다. 첫해 우리 반은 요즘 표현으로는 ‘교실 붕괴’였다. 내가 노오력하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끝내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버텼다. 그리고 연수중독자가 되었다. 다시는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학급경영, 놀이, 수업 등 연수란 연수는 다 쫓아다녔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를 발견했고, 좋은 동료들을 만났다.
그리고 몇 년후에 이렇게 우연히 첫 제자였던 준우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다. 이제 나도 그 기억에서 자유로워지라고 준우가 내게 온 것 같다. 덕분에 첫해 아이들에게 내가 가졌던 죄책감과 미안함에서 조금 내려놓게 되었다. 진심은 그래도 전해지는구나. 물론 늦게 전해지기도 하고, 느끼지 못 할 수도 있다.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나중에라도 그걸 알면 고마운 것이고, 평생 모를 수도 있다. 그건 그 아이의 몫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돌아보니 첫해는 이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열심히 살게 해준 동력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교실 안에서 힘든 일이 생길 때면 '그때도 버텼는데 이쯤은 뭐?!' 이런 막연한 용기를 주었다. 이제 더 이상 그 기억으로 아프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걸 알려주려고 다시 내게 찾아와 준 첫 제자 준우에게 고맙다. 나는 그때도 잘했고, 지금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