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사람들 (학생)
아이들이 떠난 교실은 고요했다. 나는 의자에 등허리를 최대한 기대고 앉았다. 시끄러운 소리를 견디고 나서 얻은 이 정적이 반가웠다. 그제야 들여다본 핸드폰에는 엄마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있었다. ‘돌아오는 기차표 9시 30분으로 다시 바꿔줄 수 있을까?’ 보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곧장 전화를 걸었다. 반갑게 사랑하는 딸~이라고 받는 엄마의 말을 뚝 잘랐다. 나는 건조하게 바꿨다고 말한 뒤, "퇴근 전에는 연락하지 마!"라며 짜증을 내고 끊었다. 나는 몸을 세워 똑바로 앉았다. 그리고 평소처럼 해야 할 업무들을 끝내기 위해 모니터를 쳐다봤다. 마음 한구석에 피어난 찜찜한 기분은 '모른 척'했다. 그러나 무시하려고 애쓸수록 내 마음은 더 소란스러워졌다.
11월 말, 이맘때가 되면 이미 아이들과 나, 그리고 아이들끼리도 서로에 대한 판단이 끝난다. 서로 익숙하기에 편했지만, 선을 자꾸 넘기도 했다. 이런 학기 말 분위기를 잘 알기에, 내 목표는 지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터와 일상을 분리하고, 내 에너지를 지키려고 했다. 신경 써서 먹었고, 제시간에 잠자려고 했다. 명상 유튜브를 보면서 마음이 너무 들뜨지도 가라앉지도 않도록 하려고 애썼다.
교실 속에서 나는 수문장이었다. 선생님으로 나는 두꺼운 갑옷을 입고 방패를 결연하게 든 채, 똑바로 서 있으려고 했다. 아이들에게 온 정신을 쏟아서 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던 탓이었을까? 만만한 엄마에게 결국 성을 냈다. 화나는 대상은 엄마가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괜찮은 척'했는데 하나도 괜찮지 않았었다.
그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6학년 전체가 외부 활동을 했던 날이었다. 우리는 단체버스를 타고 공연장에 갔다. 우리 학교 말고도 다섯 학교가 더 온다고 했다. 나는 우리 반을 지정된 좌석에 일렬로 쭉 앉히고 선생님들이 모여있는 자리로 가서 공연을 기다렸다.
갑자기 남자아이들 몇 명이 손을 들면서 나를 찾았다. 아이들의 시선과 손가락은 한 아이를 향했다. 애들은 수현(가명)이가 몰래 핸드폰을 가져왔다고 내게 일렀다. 내가 다가오자 수현이는 건너편 자리에 앉아 핸드폰 하는 학생을 가리켰다. “쟤는 다른 학교야. 우리 학교는 핸드폰 가져오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줘.”
“씨발”
아이는 나지막이 말하곤 뽀글이 자켓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렸다. 공연이 곧 시작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수현이와 내 주위는 관객들이 가득했다. 나는 이따 이야기하자고 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공연은 다채로웠고, 관중들의 호응도 좋았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쟤를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만 가득 찼다.
공연이 끝났을 때도, 버스에 타기 전 줄을 설 때도 수현이는 나를 졸졸 따라왔다. 핸드폰을 언제 주실 거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학교 가서 이야기하자고 답했다. 나는 아까의 일을 짚고 넘어가야 했다. 버스는 예상했던 시간을 넘겨 학교에 도착했다. 내 속을 모르는 아이들은 ‘배고프다.’ ‘점심시간이 짧아졌다.’며 아우성쳤다. 교실에 도착하자 수현이는 핸드폰을 달라고 했다. “끝나고 이야기하고 줄 거야.”
내 말을 듣자마자 수현이는 “절도범이네, 절도범이었어.”라고 중얼거렸다. 생각지도 않았던 단어에 기분이 더러웠다. 나는 아이들 없이 둘이 따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배려라고 여겼다. 수현이를 애들 앞에서 더 이상 낙인찍히지 않도록 해주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연장에서 정색하고 ‘다시 말해봐’를 시전 하거나 소리를 꽥 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참은 것이었다.
여러 아이들이 수현이를 피한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당사자는 그것을 문제 삼거나 따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현이와 어울리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나는 모른 척했다.
언젠가 쉬는 시간에 남자애들이 나에게 와서 말했다. 여자애들이 배구할 때 수현이가 만진 공을 맨손으로 만지기 싫어서 일부러 옷소매를 길게 늘인다는 것이었다. 학기 초부터 나는 누군가가 싫고 미울 수는 있지만, 그걸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하는 여자애들을 따로 불러 물었다.
여자애들은 억울하다는 듯이 자신들은 게임에 참여했고 싫다는 말은 안 했다고 항변했다. 여자애들에게 싫어하는 이유를 물으니, ‘쟤 옛날에는 연필심도 먹고 그랬어요’부터 줄줄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모르는 미움과 혐오는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가진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내가 뿌리를 파서 해결할 수 없다면, 지금 수면 위로 떠오른 문제가 아니라면, 나는 흐린 눈을 하고 넘어갔다.
“핸드폰 주세요.”
그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수현이는 내게 달려왔다. 나는 사과받고 싶다고 했다. 수현이는 내 눈을 마주치지 않고 눈을 깜빡깜빡거렸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나자마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는 내가 붙잡을 새도 없이 재빠르게 뛰쳐나갔다. 수현이의 뒷모습 뒤로 예의 없다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교실에 남아있었던 여자애들이었다. 관객이 다 나갔는지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고민하다가 수현이 어머니께 전화해서 정황을 말하고, 수현이를 교실로 다시 불렀다. 아이는 아까보다 차분했다. 나는 아이들이 오해한 채로 간 것이 걸렸다. 그래서 네가 다시 와서 사과를 한 걸 아까 남아있던 여자애들에게 말해줘도 되냐고 물었다. 수현이는 고개를 저었다. 오해하면 오해하게 두라고. 자기를 싫어하는 거 하루 이틀이 아니라고 답했다. 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그날 나는 수현이에게 교육적으로 대처했었을 수도 있으나, 정작 내 마음에는 소홀했다. 아이에게 사과받기 전까지, 남은 5~6교시 내내 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괜찮은 척했다. 둘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건 수많은 학생 앞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사과받고도 개운하지 않았던 건 교실에 남았던 여자아이들의 반응 때문이기도 했다.
하루에도 많은 사건이 쏟아지는 전쟁터 같은 학교에서 나도 아이들도 상처받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억누르고, 애써 미소 짓고, 화를 참고, 괜찮은 척했던 갑옷과 방패는 그 누구도 지키지 못했다. 오히려 그때그때 선을 긋지 않았던 것들이, 때로는 모른 척 눈 감았던 것들은 차곡차곡 쌓였다. 잔뜩 부푼 풍선이 바늘 한 방에 터지듯이, 쌓이고 쌓였던 내 마음의 찌꺼기들은 괜한 나의 엄마에게 터졌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풀이했다는 건 내가 지금 괜찮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도 우리 교실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일어났다. 나는 내 감정에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사태를 진압해야 할 때는 튼튼한 방패와 갑옷으로 아이들과 나를 지키려고 했다. 가끔은 내 감정을 보여주고 서로 농담도 주고받았다. 그렇게 아이들과 나는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며 나아갔다.
수현이를 보는 내 시선도 조금은 더 편안해졌다. 졸업식에서 수현이와 수현이 어머니가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했다. 나도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그렇게 아이는 내 손을 떠났다.
당시에는 내 마음만 보였다. 글을 쓰면서 수현이의 마음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수현이도 어쩌면 애써 괜찮은 척하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자신을 싫어하는 아이들의 눈빛과 제스처를 모르는 척 외면하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쌓였던 마음이 부딪혀서 모진 말이 나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 반은 매일 아침 두 줄 공책을 썼다. 오늘 있었던 일 한 줄, 자기 기분 한 줄을 적는 것이다. 수현이는 늘 ‘특별한 일 없음. 느낀 점 없음.’으로 공책을 채웠다. 다른 아이라면 불러서 다시 쓰게 했을 것이다. 나는 문제 삼지 않았다. 앞서 말한 배려였다. 어쩌면 수현이는 매일 두 줄 공책에 나에게 SOS를 보냈던 건 아니었을까? 모른 척하고 괜찮은 척했지만, 실은 끊임없이 알아달라는 외침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한편 무겁다.
나의 일이라는 게 그렇다. 작년을 거울삼아 올해를 나아간다. 수현이는 갔고, 새로 만나는 아이들에게 집중할 시간이다. 수현이와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면서 혹여 무엇인가를 지키려 괜찮은 척, 모른 척 갑옷을 두른 아이가 있다면 조금 더 따뜻한 눈빛과 관심을 주고 싶다. 때때로 학생들의 뾰족한 말과 행동을 지도할 때도, 그 아이의 사정을 한 번 더 헤아려보려 한다. 그렇게 매해 나도 조금씩 성장한다. 그리고 나를 떠난 아이들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