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여름 : 분노, 무기력, 슬픔 그다음... 내 일상 그리고 연대
지난 토요일 (7.29.)에 집회에 갔다. 집 근처 지하철 역안부터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속으로 '혹시 저분도?'라는 생각을 하면서 핸드폰에 집중했다. 작년 동학년 카톡방에 (오늘 처음 가는 데 떨려요)라고 보냈다. 내 메시지 뒤로, 부장님도 다른 선생님들도 가신다고 했다. 살짝 코끝이 시렸다. 한 분이 (우리 우연히 만나면 인사해요)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그 뒤로 엄지 스티커들이 달렸다.
5호선으로 갈아타니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더 많이 보였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검은 무리들은 일제히 광화문 역에 내렸다. 지정된 장소로 가는 동안 형광색 조끼를 입은 선생님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분들이 피켓과 추모배지, 폭염에 대비한 얼음물과 선캡을 나눠주었다. 덕분에 헤매지 않고 앉을 수 있었다. 나는 친한 동료언니와 2구역 끝트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가기 전엔 맨바닥에 두 시간 앉아있는 게 엄두가 안 났다. 함께 간 동료언니와도 너무 힘들면 나와 서 있자고 약속했다. 가져갔던 얼음물 두 통 모두 어느새 아스팔트 열기에 다 녹았다. 나도 언니도 두 시간을 채우고 나서야 일어섰다.
진행을 맡은 선생님은 군더더기 없이 내가 원했고 말하고 싶던 것을 명확하게 전달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지만, 그러면서도 어디로 가야 할지 분명한 방향을 아는 듯했다. 그녀의 외침을 따라 나와 내 주변의 목소리들이 모였다. 침묵과 기다림 그리고 다시 한 방향으로 모이는 소리. 나도 그날의 구호를 함께 외쳤다. 용기 내어 단상에 올라 자유발언을 해주신 선생님들의 말에도 공감이 되었고, 함께 지지해 주신 교대 교수님과 학생들에게도 고마웠다.
사실 한동안 심난했다. 밖에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면 화가 났다. 어디서부터 올라왔는지, 어디를 향해 흘러갈지 모르는 나와 내 주변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한참을 씩씩대며 말하고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집 안에 고요히 혼자 앉아있으면 활활 타오르던 마음은 자꾸만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디가 '바닥'일지 모르게 한없이. 그 침묵이 싫어 괜히 뉴스 소리를 채웠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과 기사도 찾아다녔다. 이런 상황들이 슬프고 안타까웠다. 이대로 안 되겠다 싶어 본가에 내려간 게 지난주 화요일이었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친한 동료들이 있는 단톡방에 긴 글을 올렸다. 그들에게 먼저 내가 느꼈던 무기력을 솔직히 털어놓고 싶었다. 내 말을 시작으로 카톡 안에 물꼬가 터지듯 요새의 소회를 하나 둘 풀어냈다.
"장기전이야. 다들 체력관리 잘하자. 무력해지지 말자."
8년 전 당시 학년부장이었던, 단톡방의 길잡이 같은 A언니. 이번에도 그녀가 깔끔하게 정리했다. 덕분에 나는 본가에 잘 쉬었고 금방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23년 7월 29일 토요일은 무더웠다. 집회에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 자발적으로 찾아온 수많은 개인들을 보았다. 교육현장이 더 나아지기를, 지금 가지고 있는 시스템들의 문제가 개선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치지 않고,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려고 한다.
아니 이렇게 내뱉다가도 또다시 지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내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겪었던 것들을 기억해 본다. 그리고 그러니까 더 일상도 잘 살아보려고 한다.
P.S.
물방울처럼, 유리처럼 (김연수-지지 않는다는 말)
그렇다면 젖지 않는 방법은, 쓰러지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믿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나 자신이 너무나 투명해지는 일이었다. 물방울처럼, 유리처럼 투명해지는 일이었다. 스스로 속이지 않는 마음의 상태.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봐 겁내지 않는 상태. 아닌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말하는 상태.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건 대단히 가슴이 떨린다. 왜냐하면 거기까지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이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했는데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정말 안 되는 일이니까. 그제야 나는 용기란 한없이 떨리는 몸에서 나오는 힘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게 바로 세상의 모든 영웅들이 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