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 교점
지난 주말, 동생과 만나 밥을 먹었다. 동생과 나는 각자 독립해 따로 살고 있다. 우리는 중간 지점인 신도림역에서 보기로 했다. 동생은 흰 모자를 푹 눌러쓰고 등장했다. 모자와 마스크 사이로 거칠거칠해진 피부와 작은 여드름 같은 게 보였다. 안 본 사이에 얼굴이 좀 상한 것 같았다.
“무슨 일인데?” 나를 보자마자 동생은 물었다.
꼭 무슨 일 있어야 보니? 그냥 얼굴 보자고 부른 거야, 나는 답했다. 우리는 근처 고깃집에 들어갔다.
우리는 두 살 차이 남매다. 내 남동생을 4글자로 표현하자면 까칠하고, 냉정하고, 무심하다. 동생은 누군가 자신을 간섭하는 것을 싫어했다. 명절에 식구들이 오랜만에 모여도 동생은 밥만 먹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본인도 가족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와 동생은 MBTI에서 한 글자도 겹치는 것이 없다. 나는 INFP, 남동생은 ESTJ. 동생은 현실적이고, 논리적이며, 말을 유창하게 잘한다. 집에서는 방에 쏙 들어가는 것과 달리 밖에서는 무슨 장을 맡는 인싸였다. 나는 반대였다. 우리 사이는 마치 어느 한 점도 만나지 않고 나아가는 평행선처럼 보였다.
얼마 전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소설에서 ‘어릴 시절은 다른 밀도의 시간 같다.’는 문장을 읽었다. 생각해 보면 내게도 동생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남아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욕실 안을 비누 거품으로 칠하고 놀았다. 손에 거품을 한가득 묻히고 서로의 헤어스타일을 바꿔주면서 미용실 놀이를 하고, 거품 범벅이 된 바닥에서 미끄러지는 걸 스케이트를 탄다고 하면서 놀았다. 책상 밑은 우리의 탐험선이었다. 의자와 이불을 가져다 놓고 모험을 떠날 우리만의 근사한 배를 만들었다. 우리는 해적과 싸우고, 조난을 버티고, 항해를 하는 선장과 선원이었다.
엄마가 퇴근할 시간이 되면, 우리는 함께 아빠 차를 타고 엄마를 데리러 갔다. 그리고 오지 않은 척 숨어 있다가 엄마를 놀라게 해 주었다. 어떨 때는 뒷좌석 밑에 내내 숨어 있다가 집에 거의 다 와서야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 더 깜짝 선물이 될지 궁리하면서 작전을 짰다. 그때만 해도 내 동생은 누나 바라기였다. 나역시 어디든 동생을 데리고 다니며 챙겼다.
가까웠던 만큼, 어린 시절엔 싸우는 일도 많았다. 머리가 커진 동생은 언젠가부터 박치기 기술을 선보이며 내게 대들었다.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기억조차 없는 사소한 일들로 싸웠고, 혼났고, 또 화해했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여느 때처럼 싸우다, 동생이 나를 발로 찼다. 순간 이제 동생을 물리적인 힘으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러웠다. 나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러 방문을 잠그고 들어갔다. 아마 그날 이후로 우리는 더 이상 몸싸움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와 동생은 각자의 친구들 사이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나는 언니나 여동생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주위의 자매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돈독해지는, 세상 유일한 친구처럼 보였다. 쇼핑도, 여행도 함께 다니고, 무슨 일이든 공유하는 사이.
관계에 있어, 한쪽이 무심하면 다른 한쪽이 간절해지는 것 같다. 동생의 방문을 두드리는 쪽은 대부분 나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엄마랑 같이 백화점 가자고 해도 동생은 게임하느라 바쁘고, 귀찮다며 짜증을 냈다.
언젠가부터 나는 남동생을 언급할 때 이름보다는 그 시키 또는 걔로 불렀다. 더는 그 시키가 궁금하지 않았다. 어쩌다 만나도 이야기는 뚝뚝 끊겼다. 대화를 이어갈 의지도, 싸울 에너지도 없었다. 이제 나와 동생의 카톡방은 울리는 일도 드물었고, 짧은 안부와 oo만 오갔다.
음식점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 나와 남동생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생네 회사에 새로 온 수습직원이 실수를 많이 해서 바쁘다고 했다. 일도 많은 데 그 직원까지 신경 써야 해서 힘들다고 했다. (뭔 일은 내가 아니라 동생에게 있는 것 같았다.)
고기가 다 구워지자, 동생은 사진을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갔다가 싸운 이야기를 꺼냈다. 엊그제 엄마가 내게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했다며 알고 있냐고 물었다. 동생은 아빠에게 전화가 왔었다고 했다. (동생 덕분에 아빠도 기분이 좀 풀리셨겠다 싶었다.)
아빠는 갑자기 우리에게 전화를 해서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배달 어플이 어려우니 시켜달라는 요청이었다. 가끔은 아빠의 통보 같은 부탁이 귀찮지 않냐? 는 내 물음에 동생은 괜찮다며, “그렇게라도 아빠가 우리에게 연락하고 싶은 거겠지.”라고 답했다. (뭐야, 짜식 좀 철들었네.)
나는 이 날 동생이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는 것을, 그리고 최근에 헤어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자연스레 동생과 서로의 전 연애와 X에 대해 주고받았다. 나는 동생 주변에 괜찮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말했다. 동생은 친누나를 어떻게 소개해 주냐며, 더욱이 자신은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고 답했다.
“너 인싸 아니었냐?”는 내 물음에 동생은 아니라며, 자신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소중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게 동생이 전 여친과 헤어진 이유라고 했다. “MBTI 다시 해보니, 바뀌었던데, ISTP?”
동생의 MBTI 고백에, 나는 “바뀔 수도 있지. 사람이 어떻게 일관 돼.”라고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나부터 동생을 단어와 틀에 가두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는 동생이 계산했다. 잘 먹었다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이 샀으니, 대신 바로 헤어지자고 동생은 말했다. 우리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무슨 일인데?”라고 내뱉은 동생의 첫마디는 바쁜 사람을 왜 불러냈냐는 짜증도 있겠지만, 그보다 누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는 동생만의 방식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K-장녀라는 타이틀 아래 가족의 무게를 나 혼자 더 많이 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남동생도 나름의 책임을 지고 살아왔겠구나 싶었다.
나는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까? 동생에 대해서도 얼마나 알까? 내가 잘 알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규정하는 것들은 얼마나 많을까? 나도 동생도 변했다. 그리고 우리 사이도, 우리의 대화주제도 달라졌다. 그렇지만 어릴 때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서로에게 누나이고 남동생이라는 건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제 동생과 서로의 일과 연애 그리고 남들에게는 말하기 힘든 부모님의 이야기를 나눈다. 가족 이야기를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서 새삼 고마웠다. 나는 이제 우리가 일이 있어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 없이도 만나는 사이. 평행선이 아니라, 교점이 많은 각자의 선으로 뻗어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