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세상, 이해의 틈
나는 비둘기를 싫어한다. 길을 가다 비둘기가 보이면 반경 2m 이상 거리를 두고 피한다. 같은 새여도 참새는 작아서 귀여워 보인다. 까치는 뭔가 친근하다. 전래동화에도 자주 나오고, 까치 까치설날 노래도 있으니까. 비둘기는 몸집이 크다. 그리고 88 올림픽 때 인위적으로 들어왔다는 이미지가 남아있다.
도시에는 비둘기가 너무 많다. 밖에 나가면 안 보고 지나칠 수가 없다. 사람이 지나가도 비둘기는 피하지 않는다. 뒤뚱뒤뚱 걸으면서 자기 먹이를 먹느라 바쁘다. 먹는 것은 사람들이 흘린 과자 부스러기, 음식 쓰레기, 누가 술 마시고 길가에 토한 잔해들이다. 비둘기 몸에는 세균이나 기생충도 많다고 들었다. 저 크고, 날아다니고, 더러워 보이는 생명체가 언제 갑자기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내 머리 위를 지나갈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만 해도 꺼림칙하다. 나는 비둘기를 피했고, 무서워했고, 혐오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이 있으면 그 이유를 찾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유조차 사라진다. 그냥 싫은 혐오의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국어사전에서 ‘혐오’의 뜻을 찾으면 싫어하고 미워하다고 나온다. 나는 ‘미움’은 그래도 정이 남아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혐오는 논리가 아니라 그냥 싫은 거다. 이유를 찾으며 에너지를 쏟고 싶지도 않다. 나에게는 비둘기가 그랬다.
비둘기가 싫은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닭둘기라는 단어를 만들기도 했고, 다른 나라에서도 쥐에 빗대면서 싫어한다고 했다. 어느 도시든 비둘기가 문제처럼 보였다. (나만 유별난 게 아니었어.)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우연히 (유튜브가 혼자 넘어가서) 비둘기가 왜 도시를 점령했는지에 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내가 몰랐던 내용이 많았다.
비둘기는 원래 절벽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높은 도시의 빌딩들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실외기, 베란다, 튀어나온 간판은 비둘기에게는 바위틈과 비슷하여 둥지를 트기에도 좋은 환경이었다. 또한 비둘기는 잡식이라 인간이 먹는 것들도 잘 먹을 수 있었다. 먹고 자는 것이 해결되니 남는 시간에 더욱 번식에 집중하여 개체 수를 늘릴 수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도시에는 비둘기의 천적 (독수리, 황조롱이, 매 등)도 적다. 그나마 쥐가 비둘기의 천적이라고 하지만 비둘기는 귀가 밝다고 한다. 그랬다. 비둘기는 머리도 좋았다. 아무리 복잡한 곳이어도 먹이가 있는 곳을 기억한다고 했다. 머리나 눈에 자성을 띈 물질이 있어서 방향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에게 호의적인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을 구분한다고 했다.
영상은 도시에 사는 이상 비둘기와 공존해야 한다며 끝이 난다. 이미 비둘기는 도시에 적응을 했고,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똑똑했다. 강신주의 책 <감정수업>에서는 ‘경멸’이라는 감정을 다루면서, 경멸하는 대상과 함께 있지 않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얘기한다. 비둘기는 이미 도시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가 도시를 떠나는 게 빠를 것 같았다.
글을 쓰려고 일부러 비둘기에 관한 자료를 더 찾아보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는 비둘기를 반려조로 많이 키웠다고 한다. (우리나라 토종은 멧비둘기다. 길가에 보이는 것은 대부분 바위비둘기라는 외래종이다. 토종인 멧비둘기도 이제 닭둘기화되어 많이 돌아다닌다고 한다.) 비둘기는 영리하고 길들이기도 쉽고 길 찾기에 능숙해서, 과거에는 인간에게 사랑받는 새였다고 했다.
도시의 비둘기는 2009년 유해동물로 선정이 되었다. 악취와 배설물 등으로 시민과 건물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었다. 비둘기는 인간의 토사물과 각종오물 오폐수를 섭취하고 매연과 먼지에도 시달려서, 중금속과 기생충이 잔뜩 축적되었다. 절대 식용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한 대상에 대해 찾아보면서, 내가 믿었던 것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미 알고 있던 것도 있었지만, 몰랐던 것들이 훨씬 많았다.
비.둘.기 단어만 들어도 고개를 내두르고, 사진만 봐도 소스라쳤던 나였다. 우연이든, 억지로든 관심을 가지고 알고 나니 조금, 정말 정말 조금... 덜 무서워졌다고 해야 하나. 약간의 이해의 여지가 생긴 것 같다.
그래, 모든 생명이 존재의 이유가 있고, 인간의 입장에서만 보면 안 되겠지. 어떻게 보면 쟤들도 도시 생존 경쟁에서 승리했지만, 그 부작용으로 도시의 각종 오염 물질에 쩔었구나. 좀 안쓰럽단 생각까지 살짝 들었다. 비둘기를 혐오했던 굳건한 내 성벽에 약간의 틈이 생긴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앞으로도 비둘기를 보면 피할 것이다. 조금 덜 무서워졌다는 것뿐이지 친근해진 것은 아니다. 굳이 반기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나의 혐오가 증오로 커지지 않도록 하고 싶다. 증오는 싫어하는 마음에서 더 나아가 해를 가하는 행동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뉴스에 나오는 큰 범죄가 아니더라도, 편을 나누고 공격하고 응징하는 문화에 나도 쩔어있는 것 같다. 어쩌면 서로를 알고 싶지도 않고, 알려는 노력조차도 싫으니까, 혐오까지 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