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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은 May 11. 2023

끝내고 오는 발걸음

 “나, 운동에 재미 붙였어.” 

요새 친한 지인을 만나면 불쑥 입 밖으로 이 말이 튀어나온다. 듣는 이도 놀란 표정이지만, 말하는 나도 좀 당황스럽다.


9년 전 나는 척추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았다. 그 이후 오랫동안 운동 유목민이었다. 재활을 위해 자세교정 발레를 배웠고, 할머니들 속에서 홀로 젊은 처자로 불리면서 아쿠아로빅센터도 다녔다. 사람들은 몸에 무리가 안 가는 운동으로 수영을 추천했다. 난 킥판을 벗어나질 못했다. 의지할 곳 없이 맨 몸으로 물에 뜬다는 것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후에도 요가, 필라테스, 헬스, 줌바댄스를 기웃거렸다. 운동센터에 상담을 하러 가면 대게 인바디를 측정해 보라고 권한다. 내 점수는 늘 낮았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척추의 회전과 굴곡에 한계가 있으니까. 강사들은 결과지를 보면서 왜 이제야 왔냐는 눈빛으로 근육량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술 이후, 나에게 운동이란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평생 지고 갈 숙제였다. 


3년 전에 집과 가까운 헬스장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매주 2번의 P.T를 받는다. 나의 운동 선생님은 빡세게 시키는 스타일이다. 데드리프트를 10번 하고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15번까지 밀어붙였다. “쉬지 말고 해요! 남은 다섯 번 하려고 지금까지 한 거예요. 스트레스 줘야 해요!” 왜 내 돈 내고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스칠 새도 없이 수업 내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숨이 차고 온몸이 욱신거렸다. 수업이 끝나면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며 도망가기 바빴다. 운동 선생님은 트레드밀에서 2km를 뛰고 가라, 나와서 개인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한 귀로 흘렸다. 나는 선생님이 자세를 잡아주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회원이다. 3대 기본 동작이라는 스쿼트, 런지, 데드리프트도 할 때마다 버벅거렸다. 선생님 없이 혼자 괜히 무리하다가 다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 주에 50분 수업 두 번,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그랬던 내가 올해 2월부터 운동이 끝나면 집으로 곧장 가지 않았다. 심경의 변화라면 돈이다. 휴직 중이라 돈을 아껴야 했다. 남은 P.T 횟수가 끝나면 6:1그룹 운동을 해보겠다는 이유가 생겼다. 그룹운동은 선생님이 나만 볼 수도, 내게 맞춰서 기다릴 수도 없을 것이다. 수업 후에 그날 배웠던 동작을 다시 해보았다. 바벨대신 가벼운 나무봉을 들고 스쿼트와 런지를 했다. 철봉에도 몇 초 매달려 보았다. 출근하지 않으니 시간은 여유로웠다. 운동이 없는 날에도 몇 번 나와보았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무게를 들고, 자세를 반복하는 훈련이다. 같은 동작을 여전히 헤매는 나를 보며 한숨이 나올 때도 있었다. 뻔한 말이지만, 조금씩 계속하다 보니 자세도 나아지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올바른 자세보다는 스스로 무언가를 했다는 사실에 중독이 되었다. 헬스장에 들어서면 빠른 비트의 음악이 울리고 특유의 쇠냄새가 났다. 오래 다녔어도 낯설었던 이 냄새가 몇 달 사이에 친숙해졌다.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다 보면 시간도 잘 갔다.

  

혼자 헬스장에 가서 한 시간을 채우고 오면 뿌듯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충전되는 것 같다. 누가 하길래 따라 하고, 시켜서 억지로 한 게 아니었다. 그냥 내 발로 나왔다. 선생님의 도움이나 지시 없이 나 혼자 하고 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마다 산뜻함이 묻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선생님으로부터 자세가 더 좋아졌다는 칭찬도 부록처럼 덤으로 받았다.



수술을 하고 오랫동안 ‘부족하니 어쩔 수 없어’라는 보호막을 만들어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또다시 다칠까 봐 겁도 났다. 남들보다 더 노력해도 안 될 거라는 걸 굳이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다. 누군가는 3대 몇 kg의 수치, 인바디의 점수, 힘든 과정을 이겨낸 짜릿함, 멋진 몸매, 새로운 도전 등에서 운동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나에게는 스스로 헬스장에 다녀온 시간이 쌓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번 달 중순부터 나는 그룹운동을 시작할 것이다. 그룹운동에 잘 적응하고 나면 수영에도 한번 도전하고 싶다. 킥판의 벽을 넘지 못하고 포기하고 돌아온데도 괜찮을 것 같다. 새로운 목표를 꿈꾸는 모습도 좋고, 오늘 헬스장에서 돌아와서 샤워를 하는 내 모습도 충분히 멋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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