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올해 휴직 중이다. 작년 11월, 문득 그동안 애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직 10년 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글로 정리하고 싶었다. 그렇게 매듭짓듯 엮어봐야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핑계라 해도) 근무하면서 글 쓰는 시간을 따로 내기는 어려웠다. 학기 중에는 교실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혹여나 큰 사고로 번지지 않을까 예방하고, 지도하고, 해결하고. 때로는 흐린 눈으로 무시하면서... 그렇게 매일 내 몸에 찌꺼기들이 쌓였다. 집에 오면 그 쌓인 떼를 어떻게든 벗겨내려고 했다. 일기를 썼고, 친구를 만났고, 이럴수록 더 잘 챙겨 먹으려고 했고, 운동을 갔고, 명상 유튜브를 틀고 따라 했다. 그 밖의 다른 것을 할 여유는 없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그동안 애쓴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신규로 현장에 던져졌을 때, 혹은 지금보다 교직 경험이 적었을 때, 나는 교실의 일로 힘들었다.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것밖에 없었다. 맡겨진 한 해를 어떻게든 매듭은 짓자 싶어 정신건강의학과도 다녀보고 연극치료도 받았다. 그때는 정작 휴직을 생각하지 않았다. 병가나 연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학기 중에 쓴다는 건 엄두도 못 냈다. 휴직 역시 두려웠다. 그 사유가 학생, 학부모, 관리자, 동료 등 오직 학교가 이유였다면, 나중에 다시 교실로 돌아왔을 때가 걱정되었다. 그때의 나는 그건 도망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돈내산 도움을 받고, 연수를 다니며 한 해 한 해 버텨보았다. 이 일에 적응을 해보려 노오력을 해보고 그래도 안 맞으면 그때는 다른 길을 찾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안 맞는 일을 붙잡고 있는 건 내게도, 만난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어쨌든 시간이 흘렀고 이 일에 나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내 감정을 빨리 알아챌 수 있었고, 조금 떨어져 볼 수도 있었다.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는 요령도 생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초기 판타지 수준이었던 학교, 아이들, 나 자신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선배들이 말하던 '경력이 쌓이고 이전보다 능숙해질거야.'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현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들을 때마다 입이 떡 벌어지는 건너 듣는 민원, 힘들어하는 동료들을 마주했다. 조직문화든, 사회적 분위기든, 잘 못 걸린 진상 민원이든, 학교는 내가 할 수 없는 게 더 많다는 현타가 밀려왔다. 그 와중에 휴학했던 대학원이 다시 생각난 건 실은 '내가 쉬고 싶구나, 잠시 교실에서 떨어져 있고 싶던 마음이구나'를 깨달았다.
누군가에겐 일을 쉰다는 결정이 사치스러울 수 있겠다. 일단, 월급이 달라진다. 근데 (결정을 했고 졸업식까지 마친 내게) 막상 '지금부터 쉬어도 돼!' 가 주어졌지만, 온전히 푹 쉬는 게 어려웠다. '이상하다? 왜 불안하고 어색하지?!'라는 질문을 타고 들어가 보았다. 이게 어릴 때부터 경쟁 사회에 내몰린 우리나라 사람의 특성일 수도 있지만, 내 안에 성장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 쉽게 주어지지 않는 시간인데 1년 안에 무언가 끝장을 봐야 된다는 조급함도 함께 엉켜 붙어서.
일찍 발견한 게 다행이었다. 이 시간 동안 꼭 무언가 이루지 않아도, 매듭짓지 않아도 괜찮다고. 좋은 경험을 했던 시간으로 남겨두자며 스스로에게 했던 말은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성장'의 의미가 꼭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2023년은 내 땅을 공고하게 다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경계인'으로 만난 사람들
그동안 다른 직종을 만날 기회는 적었다. 교대 졸업과 동시에 학교라는 현장. 연수들도 대부분 교사 연수니까 내 지인은 거의 선생님들이었다. 올해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을 만났다.
올여름 이후, 교사라는 걸 밝히면 '많이 힘드시죠?'라는 위로를 받았다. 다른 직종들도 내가 밖에서 바라본 이미지들과 달랐다. 모두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다. 진로에 대해서,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대해서 불안해하는 20-30대 모습을 보았다. 잠시 떨어져 있다 보니 나 역시 외부의 시선으로도 교사라는 내 직업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발길이 이끄는 대로 경험했던 활동들
가만있으면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사람이라 '이거 재밌어 보인다' 싶으면 신청했다. 누군가의 말속에서, 우연히 본 영상에서 힌트를 발견한 것처럼 끌리는 것을 찾았다. 발길이 닿는 대로 이 활동에서 저 활동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좋아서 신청했으면서도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늘어져 누워있던 날도 많았다. 아무것도 안 하기 스탠스를 질릴 정도로 취하다 보면 다시 일어나는 힘이 생겼다. 또 이것저것 너무 많은 일을 벌이면 몸이 아프면서 탈이 났다. '적당히', '밸런스', '완급조절' 같은 단어를 나름 부딪치며 알아갔다.
'쉬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부제를 붙였지만, 나란 사람은 또 쉬지 않고 이것저것 한 것 같다. 물론 그 속에 찰나의 기쁨이 있었고, 늘어지는 시간도 만끽했다. 그리고 쉰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지는 않았다. 여러 사건들을 마주했고 그때마다 감정도 함께 요동쳤다. 그러나 담임으로 있을 때만큼 매 순간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들의 사소한 말이나 문제 행동들도 촘촘히 쌓이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힘을 빼고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붙잡고 싶은 내 일의 가치
저 연차였을 때 나는 선배들이 ‘노잼 시기’라고 말하는 게 참 부러웠다. 노잼이 올 수 있다는 건 익숙해졌다는 말인데?! 하루하루 버티는 내겐 여유로운 선배들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랬던 내게도 몇 년 전 노잼시기가 찾아왔다. 막상 겪어보니 그럼에도 교사란 일을 붙들고 갈 만한 좋은 점을 찾아보고 싶었다.
내가 교대를 계속 다녔던 건 '수업 준비'에 매력을 느껴서였다. 마치 하나의 작품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것 같았다. 경력이 쌓인 후에 이 일은 내게 '수련'같았다. 덕분에 단련되고 성장되었다고나 할까. 그래, 덕분에 나 쫌 많이 컸다. 좋은 동료도 만났지 하며 자위했다. 그 시기에 다른 동료들에게 그럼에도 이 직업을 붙잡고 있는 나름의 이유를 묻기도 했다. 올해 나는 이런 쉼이라는 '시간'을 더 찾았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도 새삼 감사했다.
"언니, 그럼 휴직하면 뭐 하고 싶어?" 동료가 내게 물었다. 그 질문을 듣고 하고 싶은 걸 술술 대답했나 보다. 내 말이 끝나자, "지금 말할 때 눈빛이 달라졌어. 휴직 써."라는 응원이 돌아왔다. 그 말에 힘을 얻고 결정할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오면 어떻게든 되겠지란 믿음이 생겼다. 다시 돌아올 때의 두려움보다는 휴직이라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 1년의 시간을 잘 보내고 싶었다.
언제부턴가 교사 커뮤니티에 ‘탈출은 지능순’이란 글이 자주 보였다. 실제로 다른 직종으로 이직을 준비하는 교사들이 많았다. 전문직 시험, 자격증, 수능을 다시 보는 등 건너 건너에서 사례들을 들었다. 몇 해전 옆 반 동료가 피트를 준비한다는 걸 들었을 때, 나도 딴 길을 가야 하나 흔들렸다(물론 이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나는 임고 정말 열심히 준비해 교직에 왔다. 그러나 현장은 내 생각과 달랐다. 몇 해전 합격한 대학원도 나와 맞지 않는 게 많았다. 자격증이나 다른 길을 준비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합격이 끝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오죽하면 동료들이 후배들이 그동안의 경력이고, 임용자격증이고 다 내려놓고 가겠는가. 얼마나 사력으로 다른 길을 준비하겠는가. 이런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어쨌든 지금 나는, 미래가 불안하니까 상황을 벗어나려고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 늘 재밌을 수는 없어도 끈질기게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고 싶었다. 그게 나에게는 글쓰기였다. 매일 일기를 썼다. 하루 중 그 시간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작년 5월 우연히 교사 커뮤니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교직에서 느낀 소회를 한 편의 글로 정리한 것처럼, 독자를 고려해 이런 글을 20개 정도 만들고 싶었다.
작년 아이들과 졸업식을 끝으로 휴직이 시작되었다. 곧장 에세이 강좌를 수강했다. 1월 에세이 강좌를 시작으로 글을 잘 쓰고 싶은 끓어오르는 열망을 따라 여러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또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지금까지 왔다. 처음에는 쉴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니까까 성과를 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글쓰기를 배우면서 오히려 쓰는 게 더 신중해지고 어려워졌다. 이건 좋은 점이기도 하고 나쁜 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도 매일 30분이라도 꾸준히 쓰고 싶다. 미래형 다짐이다. 그리고 이 꾸준히라는 것도 참 힘들다는 거 잘 안다. 하지만 1년 안에 끝장을 봐야지란 조급함을 내려놓자, 이 시간을 조금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내 글은 어디를 향해서?!
원래는 교직은 영 적성이 안 맞는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떻게 10년을 버텼는지, 그 사이의 마음가짐의 변화에 대해 쓰려고 했다. 연수 중독자로 경험한 여정들, 좋은 선배들을 보며 느꼈던 생각들, 내 나름의 통찰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내용은 없고 제목만 지은 한글 파일들만 줄줄이 폴더 한켠에 쌓여있다.
그런데 막상 몇 개월 떨어져 쉬어보니, 교실의 일들을 잊어버렸다. 일상을 즐겁게 보내기 바빴다. (이건 그동안 마음 편하게 쉬지 못했던 내게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올여름 교사 집단에 일어났던 여러 사건들을 함께 애도했고, 집회에 참여했다. 쉬고 있다는 부채감감이 올라왔다. 그래서 원래 내가 쓰려던 글을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쉬는 입장에서 이런 걸 쓰는 게 맞는지 스스로 검열했다. 그러다 내가 지금 쓸 수 있는 건 "올해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1월부터 지금까지 내가 밟아온 땅을 다시 살펴봐야겠다. 나는 두 가지 시선으로 바라보며 걸었다.
첫 번째, 글 쓰고 싶은 나 : 어떻게 하면 더 잘 쓰지? 하며 욕망으로 불타던 나.
두 번째는, 교사로의 나 : 배우는 학생의 입장으로 돌아갔다. 자연스럽게 강사들의 가르치는 태도, 방식, 내용, 나아가 묻어날 수밖에 없는 그들이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관찰했다.
그러니까 내가 했던 활동, 만난 사람들, 그 사이 느낀 감정들을 모아보려 한다. 글을 잘 쓰려는 내 욕망 그리고 외부의 입장에서 '교사로의 나'를 바라본 한 해에 관한 정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