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고민들 (2023년 여름 이전)
내 지인 대부분은 교사다. 6월 중순 전까지 동료들을 만나서 듣고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올 여름 전이니까 학교와 교사에 대한 관심이 퍼지기 전이었다. 이미 우리끼리는 곪아왔던 문제였다. 친애하는 내 동료들의 고민을 조심스럽게 적어본다.
A언니는 올해 학교를 옮겼다. 언니 반에는 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힘든 아이가 있었다. 몇 가지 일화만 들어도 그 반에 몰렸구나 싶었다. 그 아이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이모와 살고 있다고 했다. 감정이 조금만 상해도 주먹과 발이 먼저 나간다고 들었다. 지금은 4학년이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내 반의 이야기를 남 앞에 털어놓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 나는 마치 내 치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내가 경영을 못해서 벌어진 것처럼 느꼈다. 친한 친구나 동료에게 얘기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자꾸 내가 힘든 이야기만 꺼내는 것 같아 그마저도 미안해졌다. 그래서 나를 믿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 A언니에게 고마웠다.
“언니, 나라면 그 아이 미울 것 같아요."
힘든 아이가 교실에 있었을 때 그 아이가 미웠던 적이 있다. 아무리 지도를 하고,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도움을 구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들을 괴롭히고 수업을 방해하며 피해를 주니까, 너만 우리 교실에 없었으면,,,이런 생각이 든 적도 있다. 한편으로는 교사로서 학생을 미워한다는 게 괴로웠다. 이래도 되나, 죄책감이 들었다. 그때가 생각나서 언니에게 미워할 수도 있다고. 미운 행동을 하는 걸 어떡하냐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언니 탓이 아니라고 말했다.
몇 달 후, A언니와 다시 만났다. 그 사이 아이는 여러 가지 사고를 쳤나 보다. “가위로 친구를 위협했어.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사고가 났어.”라고 언니가 말했다. 사고는 예고 없이 재해처럼 찾아오는 것 같다. 교사인 우리는 사고가 일어나라고 고사를 지내기는커녕, 매일 예방교육을 하고 지도를 한다. 그런데도 꼭 찾아온다. 그렇다고 화장실도 안 가고 쉬지도 않고 그 아이만 감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왠지 A언니가 담임이라는 책임감으로 혼자 감당하려고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괜히 더 흥분하며 부장님이랑 관리자한테 계속 말하고 시스템을 찾아보자고 말했다. (그게 학교 여건 상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그 날, A언니에게 문득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 아이 운이 참 좋네요. 언니 같은 선생님을 만나서요. 언니처럼 계속 고민하고 걱정해 주는 분 만났잖아요. 그 아이 사정을 제가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 더 잘 살아갈 거라고 믿어줘요. 지금 언니를 만나서, 그리고 앞으로 또 좋은 선생님들 만나서 잘 될 거예요.”
돌아보면, 내가 만났던 힘든 아이의 학부모님은 (운 좋게도) 협조적이셨다. 어느 날 지도문제로 전화상담을 하다가 어머니께 “그래도 우리 00이 앞으로 더 잘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냥 그 순간 그 말이 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울면서 감사하다고 했다. 아마 듣고 싶으셨던 문장이었나 보다. 그런데 신기하게 말을 뱉고 나니, 이 후 나도 00 이를 조금은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쓰고 보니 지금 떨어져 있는 내가 전하는 배부른 소리인 것 같다. 내 딴에는 위로를 전하려고 했으나 언니에게 진심이 닿았는지는 모르겠다. A언니 입장에서는 털어놓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다. 근데 내 경험상 털고 나야 또 나아갈 힘이 생겼다.
힘든 해에 나역시 동료들에게 하소연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방법을 구했다. 전문가를 찾아 병원에도 가고 연극치료도 받았다. 그렇게 한 해를 버텼다.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억울하고 짜증도 났다. 그래도 내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건 “선생님 탓이 아니에요.”라는 말이었다. 교실 문제 상황 속에는 교사 말고도 학생, 학부모, 동료, 관리자, 학교 안 분위기, 학교 밖의 분위기 등 여러 가지의 요소들이 뒤섞여있다. 선생님만이 기여한 게 아니라는 말이 그때 참 위로가 되었다.
그 해가 지나고, 개인적으로는 나름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이 생겼다. 긍정회로를 돌린다던지, 운동을 했고, 맛있는 것을 먹거나, 내게 작은 선물을 주었다. 공부모임에 참여하고 연수도 따라다니고 심리극모임도 하면서 전보다 내 감정을 알아챌 수 있었다. 정 힘들면 도움을 요청하거나 내 마음을 돌보는 기술이 생겼다.
그러나 학교가 당면한 환경적인, 제도적인, 개선은 멀어 보였다. 객관적으로 봐도 치료가 필요한 아이가 한 명만 교실에 있어도, 그걸 담임교사 혼자 감당하기는 힘들다. 내가 그 아이만 보고 있을 수도 없다. 그 사이 나머지 아이들도 피해를 받거나 문제 행동을 학습한다.
유니콘으로 비유되는 좋은 관리자를 만났다 해도 매번 아이를 교무실로, 교장실로 내려보낼 수도 없다. 교무실도 여건이 안 된다. 교사를 도와주거나 지킬 수 있는 제도적인 것들이 미비했다. 문제 학생의 보호자가 협조적이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면 교사 개인이 대응할 방도가 없었다. 그런 학교의 현실을 알고 있기에, A언니의 말에 더 안타깝고 걱정도 되고 화가 났다.
(지난 여름, 문제행동 학생의 교실 밖 분리와 관련해서 교사의 의견을 반영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의 설문조사결과, 문제행동 학생의 교실 밖 분리를 담당할 별도의 전문인력과 별도의 전용분리공간이 있어야한다고 교원 대다수가 요구했다고 한다. 예산도 인력도 없는 과도기인 지금 시점에서는 분리의 주체 및 공간을 교장 및 교장실로 하여 관리자의 책무성을 강화한다고 보는 응답 역시 많았다고 했다.)
B동생은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업무부장을 맡고 있다. 승진을 원하는 동생도 아니다. 결혼 안 한 젊은 교사라 찍힌 거였다. 작년에 부장을 했으니 올해는 뗄 거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올 초 자신이 맡지 않으면 저연차에게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부장을 연이어 맡았다. 동생은 업무부장을 하면서 느낀 고충을 털어놓았다.
“언니, 방과 후 부장을 할 때는 내가 무슨 학원 원장 같았어 (단, 아무 권한은 없는). 애들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에게 기본적인 시간 약속 같은 걸 내가 지도하고 있어야 하나 싶었어. 물론 대부분 상식적인데 일부 그렇지 않았던 강사들에게 말이야. 방과 후 코디선생님과 내 업무사이의 경계도 불명확해.”
“올해 학폭인성부장은 형사더라. 역시 아무 말도 못 해. 양측 말을 듣고 조서를 작성하는 형사야. 올해 3호 사건은 학원에서 서로 싸웠던 일이었어. 이미 아이들끼리는 감정이 풀렸어. 근데 보호자들끼리 자존심싸움이 돼버린 거야. ‘뭐 이걸로 학폭을 걸었다고? 그럼 나도 걸게.’ 이렇게 말이야. 일단 절차대로 진행하는 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
“얼마 전에 있었던 학폭 5호에서 가해학생 학부모에게 이런 사유로 조사 중이다라고 말하니, ‘그래서 뭐요?’라고 하는 거야. 솔직히 기분 나빴어. 피해학생 학부모가 왜 화가 났는지 이해는 해. 그런데 나에게 억울한 감정을 막 쏟아내는 거야. 우리 반 아이들도 아니고,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업무 담당자라는 이유로. 나는 그 말을 끊지도 못하고 듣고만 있어야 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어.”
“무엇보다 우리 반은? 그렇게 한 번 일이 터지면, 우리 반 애들한테 쏟을 에너지가 없더라고. 그래서 현타가 왔어.”
(많이 순화했지만) B동생의 말을 들으며 현재 학교의 업무나 시스템의 현실이었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서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적나라한 요즘 상항에 씁쓸했다.
오랜만에 C언니를 만났다. 언니가 들려준 ‘학교규칙’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작년에 언니는 1학년부장이었다. 동학년 반 중에 힘든 아이로 어려움을 겪은 교실이 있었다고 했다.
“복도에서 잠깐 봐도 통제가 어려워 보였어. 보호자도 힘들게 했나 봐. 나도 교실붕괴가 되는 걸 본 건 처음이었어. 학년 부장으로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어. 담임도 여러 번 교체가 되었어.”
“그래서 올해 내가 작정을 하고 학교에 건의했어. 수업방해, 교권침해에 대해 강하게 규칙을 만들자고. 물론 그 틈을 파고드는 사람들도 또 생길 거야. 생떼 부려서 한, 두 명 들어주면 다시 둑이 무너질 수도 있겠지. 그래도 학기 초부터 전 학년에 교육하고 지도해서 아이들도 규칙에 동의하고 납득하고 있어.”
학교내부의 문제들이 공론화되기 이전이었다. 학교차원이더라도 나서서 하기 힘든데 잘했다고, C언니는 역시 행동력 있다고 말했다. 올해 여름을 기점으로 세상 밖으로 학교의 문제들이 알려졌다. 전보다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는 더 커졌다. 부디 이 목소리들이 닿아서, 실제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그 외에 올해 '경계인'신분으로 자주 현장의 동료들을 만났다. 모두들 내게 왜 쉬려고 했는지 이해한다고, 그리고 잘 쉬고 오라고 말해주었다. 지금 내 표정과 모습이 좋아 보여서 부럽다고 했던 동료도 있었다. 쉬는 동안은 자신들이 밥과 커피를 사겠다고 언제든 연락하라고 말해줘서 든든했다.
내가 힘들 때 위로가 되어준, 나 역시 작은 힘이 되고 싶은 나의 동료들이다. 모두들 올해도 끝까지 건투하기를, 잘 마무리하기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