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복불복이잖아요 : 다시, 면접

렛's 퇴사일기

by 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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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쉬면서 번역 수업을 듣고 터키 여행도 다녀오고 나니, 다다음 달이면 월세 낼 돈이 없었다. 좋든 싫든 이제는 두 번째 회사에 들어가야 했다. 원래 계획대로 하반기 공채를 준비하면서도 의문이 많았다. 지원할 회사를 고를 기준이 직무와 연봉 외에는 아직 모호했다. 나는 어떤 회사에 다니고 싶은 걸까?

1년여 만에 해보는 입사 지원은 사뭇 낯설었다. 이력서에는 경력 1년이 더해졌을 뿐이었지만 내 마음은 처음과 너무 달랐다. 갓 졸업했을 때는 그래도 호기로웠는데, 이젠 회사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다. 자기소개서 항목을 꾸역꾸역 채울 때마다 고갈된 나를 애써 포장하는 느낌이었다. 흔히들 중고 신입이라던데, 정말 중고가 되었구나.


"첫 직장을 너무 경솔하게 정한 것 아닙니까?"


한 면접에서 이 말을 듣는 순간까지, 나는 첫 직장을 선택한 데 대해 후회한 적이 없었다. 의구심에 가득 찬 그 눈빛을 보니 그제야 아차 싶었다. 면접관이 대놓고 얘기하지 않았던 질문들이 내 속에서 메아리치며 가슴을 두드렸다. '그 회사에 갔던 게 실수 아닙니까? 사실 지원자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거 아닙니까?'

그 회사는 하루 온종일 여러 면접 전형을 진행하는 곳이었고, 그 면접은 하필 사장님까지 앉아계신 임원 면접이었으며, 그때 시간은 저녁 여섯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런저런 면접에 불려 다니며 지칠 대로 지쳐있던 내 입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몇 해 안되어서, 빨리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싶었습니다."


그때까지 내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몰랐다. 그랬다. 나는 처음부터 구직 활동을 그리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하지 않았었다.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해서 이어지는 질문들에도 썩 똑똑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결국 "그래, 우리 회사가 적당히 돈 벌러 다니긴 좋지." 하는 사장님의 말을 듣고 직감했다. 아, 여긴 탈락이구나.

나는 정말 첫 단추부터 잘못 껴버린 걸까? 사실 형편이 그리 어렵지도 않았는데, 더 버티면서 다들 알만한 더 번듯한 회사에 처음부터 갔어야 했나? 면접관의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왜 업계를 바꾸는지, 왜 첫 회사에서는 홍보팀이었는지, 왜 6개월'이나' 쉬었는지 계속 설명해야 하는 현실은 피로하기 그지없었다.

면접비 대신 회사 상품 선물세트를 받아 들고서 겨우 건물을 빠져나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웠다. 진이 다 빠진 채 버스에 올라탔는데, 내가 좋아하는 운전석 뒷자리가 비어 있었다. 창가에 비치는 환한 밤거리가 참 예뻤다. 나는 금세 노곤하고 울적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이제는 정말 빈털터리가 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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