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실감

by 심루이

내가 일을 관뒀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은 다름 아닌 장을 보고 처음 마트 영수증을 마주했을 때였다.
나는 곧 내가 영수증을 지나치게 오래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고, 비슷한 속도로 지난 3년간 영수증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마트에서 장을 봐 오면 냉장고와 수납 장에 제대로 채워 넣어두면 다행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나는 아주 오래, 오래 영수증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새삼 물가가 참으로 비싸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싸다, 이제 아껴 써야지, 라고 스스로에게 되 내이며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워킹맘이었던 나와 월급의 관계를 생각해보자면 돈 때문에 일한 것은 아닌데 돈 때문에 일을 안 한 것도 아니다, 라는 애매한 결론에 이른다.

어느 날에는 장난을 치며 양말을 신는 아이에게 참으로 관대한 나를 발견했다. 바쁜 출근길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엉덩이춤을 추면서 양말을 던지는 심이의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심이의 등원 시간은 갈수록 늦춰졌다.

다음 날 오후에는 하원한 아이와 나란히 앉아 연필을 깎았다. 몇 년 만이지, 연필을 칼로 직접 깎는 것이. 아이는 날카롭게 변하는 연필을 보며 참으로 신기해했다. 그리고 심이와 경쟁하며 아주 세심하게 무지개를 그렸다.

핸드폰을 통해 도착하는 각종 이벤트 소식에 날렵하게 반응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육아 휴직 때도 사진 공모전에 응모하거나 잡지에 사연을 구구절절 쓰기도 했었지. 사소한 관심이 생겨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설거지,라는 놀라운 세계를 알게 되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계속 쌓인다. 하루 종일 설거지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역시 일보다 집안일이 힘들다.

오늘 뭐 해 먹이지,가 가장 큰 걱정거리가 되었다. 고민의 크기에 비해 결과는 늘 소박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일상들이 모여서 백수라는 이름으로 완성되었다.

하루가 아주 느리게, 동시에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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