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

by 심루이

흰머리가 난다.


새치라고 강력하게믿고 싶지만 아무래도 흰머리다.
이제 흰머리가 난다고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는 게 참으로 이상하다.
‘마음만은 청춘’이라고 했던 어른들 말씀이이런 마음이었구나, 깨닫게 된다.
마음은 스물다섯 정도에머물러 있는데 어느새 서른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흰머리를 뽑는다.


믿을 수 없겠지만남편의 부재가 제일 아쉬운 순간이 흰머리를 뽑을 때다.
짧은 흰머리를 혼자뽑으려고 두 눈을 부릅뜨고 거울을 보고 있자면 머리가 띵하다.
자꾸만 머리카락이빠져나가는 통에 여러 번 시도하고 실패한다. 실패한 머리는 더 뻣뻣하게 곤두서 눈에 잘 띈다. 너무나 뽑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히고 포기하고를 반복한다.

40일 만에 만난 남편에게 흰머리를 뽑아 달라고 한다.


처음 만났을 때 스물넷이던아내의 흰머리를 뽑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오랜만에 만나서 별걸 다 시키네, 하는 황당함 끝에 이렇게 같이 잘 늙어가고 있다,는 안도감이 조금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어간다.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세상이 끝난 것만 같던 스물아홉을 지나,
남편을 닮은 아이를만난 서른하나를 지나, 이제 곧 마흔도 오겠지.

낯설다.
하지만 그 낯섬이 싫지는 않다.
나이를 먹어가며 나는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고 믿으니까.

나는 예전보다 더빨리 사람을 판단하지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는 조금 더 너그러울 수 있는 사람이되었다.
나는 예전보다 더과감하게 돈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절약하는 것의 가치를 조금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특별하지 않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조금 더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 흰머리가 아니라 새치야-라고 매번 먹히지도 않을 말을 앵무새처럼 해주는 남편과 함께 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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