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베이징] 20분의 법칙 (하얼빈 맥주)

해피 해피, 哈啤哈啤

by 심루이

예전에 엄마는 “우리 예삐는 정리 빼고는 다 잘하지”라는 말을 종종 하셨었다. 뭐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나는 문장의 마지막 부분인 ‘다 잘하지’라는 말에 집중해 이 말은 칭찬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더랬다. 최근에서야 마지막 ‘다 잘하지’에 방점이 찍힌 것이 아니라 ‘이제 그만 정리 좀 해라’라는 설득과 회유의 말씀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살까지 내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나의 친오빠, 앤드류 커플이 책을 냈었다. 레시피와 여행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지만 혹시 내 이야기가 있는지 책을 받자마자 신나서 물어봤었는데 기쁘게도 있다고 했다. 황급히 책 내부를 찾아보니 나는 ‘더럽게 방을 안 치웠던 여동생’으로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었다. 일견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나는 정말 모든 물건을 끌어안은 ‘holder’로 징하게 방을 안 치우고 살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청소기를 열심히 돌리는 앤드류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에 “내 방은 청소기 안 해줘도 돼”라고 상냥하게 말해 보았는데 앤드류는 1초 만에 “응, 난 중학교 이후 니 방을 우리 집의 일부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라고 대답했다.




‘아주 사소한 변화가 큰 변화를 만들어준다’는 자기 계발서에나 나올법한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요즘 실감하고 있다. 시작은 김교석 작가의 ‘아무튼, 계속’이라는 책이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모토로 일상을 ‘계속’ 유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김 작가에게는 <20분의 법칙>이라는 정리 루틴이 있었다.


나에게도 일상을 유지하는 루틴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20분의 법칙’이다. 이름까지 붙였다는 건 꼭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별다른 건 없다. 긴 시간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최소 20분은 옷만 갈아입고 무조건 집안 정리를 하는 거다. 밤샘 근무를 하고 왔든, 어쩔 수 업이 모임에 나갔다가 술을 마시고 새벽 2시에 왔든, 격한 운동을 하고 녹초가 돼서 돌아왔든 예외는 없다. 예외는 방심하면 금방 퍼지는 잡초와 같다. 피곤하다고, 귀찮다고, 일단 쉬고 보자고 한 번 두 번 몸을 그냥 누이기 시작하면 그게 얼마 후 새로운 루틴이 되고 만다.


집에 들어서면 옷만 갈아입고 20분간 집안일을 한다. 전날 널어놓은 빨래를 갤 수도 있고, 일찍 퇴근한 날이면 흰 빨래를 돌릴 수도 있고, 조명 펜던트같이 먼지가 잘 쌓이는 물건들의 먼지를 털 수도, 수요일 저녁 일과처럼 진공청소기를 돌릴 수도 있다. 설거지해놓은 그릇과 조리도구를 제자리에 정리해놓거나, 분리수거를 하거나 가습기 필터 청소 또는 화장실 욕조 및 타일 청소를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최소 20분 동안 요일별로 정해놓은 일을 하고, 그 일이 일찍 끝나면 다른 일을 찾아서 뭐라도 한다.

아무튼, 계속 중


이 루틴에 대한 작가의 확고한 믿음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정언명령 같은 힘이 있어서 쉬이 무시할 수가 없었다. ‘정리 DNA 실종’이라는 의심의 눈초리의 고통 속에서 이미 청소와 정리에 관한 대부분의 책을 섭렵한 나로서는 사실 별다른 비법이랄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타이머를 쓰는 정리법도 신박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플라이 레이디’라고 불리는 미국인 말리 실라가 ‘5분 방 구출법’에서도 시도했었다. 5분 방 구출법은 집안 가장 엉망인 장소에 가서 타이머로 5분을 맞춘 후 타이머가 울릴 때까지 격렬한 부기 춤을 추듯 최대한 몸을 움직여 물건을 치우는 것이다. 5분의 댄스로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설득이다. 그래서 타이머의 효능에 대해서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WeChat Image_20201230044618.jpg 관심 분야가 생기면 무조건 관련 책을 파는 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 그리하여 정리와 살림도 책으로만 배움. -_-


하지만 20분 정리 법칙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있었는데 바로 ‘집에 돌아오자마자’라는 지점이었다. 약간의 긴장감이 내 몸에 아직 남아 있을 때, 피곤과 귀찮음이 잡초처럼 퍼지기 전, 바로 그때가 정리의 골든 타임인 것이다. 행동력과 추진력에 있어서 만큼은 뒤지지 않는 나는 이 루틴을 따라 해 보기로 결정하고 다음 날부터 실천해보았다. 심이를 스쿨버스에 태워 보내고 집에 오면 7시 25분 정도. 이때부터 20분 타이머를 맞추고 부기 춤을 추듯 미친 듯이 정리를 하는 것이다. 정리할 것이 별로 없다고 시간을 줄이지도, 많다고 늘리지도 않는다.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딱 20분. 이불을 개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넌다. 줄어드는 시간을 볼 수 있는 구글 타이머를 눈으로 확인하며 집중력을 끌어올린다. 아직까지는 꽤 결과가 좋은 편이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20분이 생각보다 긴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말에는 춘과 심이도 부기춤 대열에 합류시킨다. “20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아?”라고 신나서 심이에게 얘기했더니, “엄마 그 얘기 열 번째야”라는 그녀의 쿨한 대답.


2020-12-04-07-28-33.jpg 심이 이 러닝용으로 산 구글 타이머, 줄어드는 시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효과가 좋다. #구글타이머




깨끗한 책상에서 책을 읽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면 맥주가 생각난다. 즐거운 기분으로 맥주를 마시며 생각해 본다. 만약 정말 이 방법으로 나의 지난했던 과거와 조금 멀어질 수 있다면 김교석 작가님께 꼭 감사 메일을 보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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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해피, 哈啤哈啤/주력 상품은 알코올 도수 4.8%의 페일 라거


우리는 정말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이거 꿀맛!’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하지만 하얼빈 맥주(哈尔滨 啤酒)는 진짜 꿀을 섞은 듯한 맛이 난다. 처음 먹었을 때 “이 맥주, 꿀 맛인데?”라고 했다며. 게다가 칭따오보다 더 싸다. 한 캔에 한국 돈 500원 남짓? 그러니까, 물보다 싸다. 만세!


대중들에게 더 알려진 칭다오보다 훨씬 더 오래된 역사(1900년에 시작)를 가진 하얼빈 맥주. 중국에서는 ‘하얼빈 피지우’를 앞 글자만 따서 ‘하피(哈啤)’라고 줄여 부르는데 ‘happy’와 음역이 비슷해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맥주와 해피는 정말이지 찰떡궁합 단어!


그나저나 하얼빈 맥주 축제는 중국에 있을 때 갈 수 있으려나?


#베이징도시산책자 #생활탐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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